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런던의 사설탐정 버니와 동업 중이던 22살의 코델리아 그레이는

버니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탐정사무소 대표를 맡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 사설탐정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한 마디씩 거든다.

그러나 코델리아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고 드디어 첫 번째 의뢰가 들어온다.

한 유명한 과학자로부터 아들의 갑작스런 자살 원인과 배경을 밝혀 달라고 의뢰받은 것.

코델리아는 버니에게 물려받은 유무형의 자산을 장착하고 첫 의뢰자에게 달려간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소개글에 따르면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추리작가라는데,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작품으로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검색해보니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몇 편 되지도 않았고,

그나마 대부분은 90년대에 출판됐다가 지금은 절판 상태입니다.

그녀의 대표 캐릭터는 런던 최고의 형사 아담 달글리시인데,

이 작품은 달글리시 시리즈가 아니라 스핀오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업자 버니가 달글리시의 부하였고, 또 막판에 달글리시가 카메오로 등장하기 때문인데,

시리즈 자체는 읽어보지 못했어도 그가 꽤 매력적인 캐릭터란 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모두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며 코델리아의 탐정으로서의 진로를 만류하지만

그녀는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예리한 추리와 강철 같은 담력으로 첫 사건을 해결합니다.

과학자의 아들이 자살한 오두막에 머물며 그의 지인들을 탐문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탐정의 정석대로 조사를 진행하던 코델리아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단서에서 아들의 비밀스런 과거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

지인들의 사소한 언행에서 아들의 사망 직전의 정황을 포착해냅니다.

결정적 단서를 찾아낼 즈음에는 괴한의 습격을 받지만

22살의 초보 탐정이라고는 볼 수 없는 강한 멘탈을 기반으로 위기를 벗어났고,

드디어 추악하기 짝이 없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칩니다.

 

1972년 작품이라 부지불식간에 (아날로그&올드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게 사실이고,

작품 전반적으로 보면 이 선입견이 그리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재미와 속도감을 겸비한 멋진 고전이라는 생각입니다.

지독한 영국식 유머나 풍자 없이도, 또 슈퍼히어로 같은 주인공 없이도

P.D. 제임스는 페이지를 술술 넘어가게 하는 매력적인 필력을 자랑했고,

22살의 코델리아는 당황과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초짜처럼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동업자로부터 물려받은 탐정으로서의 재능과 돌직구 같은 과감성을 통해

장래 명탐정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선보입니다.

특히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난 엔딩은 자신만의 정의에 충실한 코델리아의 매력은 물론

탐정으로서의 그녀의 이후 행보에 대해서도 꽤 큰 기대감을 갖게 만든 대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소 단선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실망감보다는 재능 있는 신인작가의 작품을 만난 듯한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풍경이나 사람에 대한 지나치게 세밀하고 장황한 묘사가 잦아서

책읽기의 흐름을 뚝뚝 끊게 만드는 경우가 적잖았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케일이나 무게감 면에서 제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별 1개를 뺀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책읽기였습니다.

후속작 소식이 궁금해서 소개글을 더 살펴보니 코델리아 시리즈는 두 편밖에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도 이 작품 이후 10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출간됐다고 합니다.

코델리아의 탐정으로서의 성장기가 궁금했던 입장에서 무척 아쉬운 소식이지만

나머지 한 편이라도 한국에 꼭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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