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김나연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 본인 말대로 반쯤은 에세이로, 반쯤은 소설로 읽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픽션이 아니라 직접 겪은 일들을 글로 표현했으니 에세이임에 분명하지만,

다분히 극적인데다 픽션 못잖은 굴곡과 감정을 지녔으니 소설이라 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에세이라고 하면 그동안 질릴 정도로 자주 들어온 힐링이란 단어가 즉각 떠오르겠지만

이 작품은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독자를 향한 근거 없고 무책임한 가식적 위로와 달리

유년기부터 30대까지 롤러코스터처럼 살아온 한 사람의 희로애락에 대한 고백을 통해

때론 공감을, 때론 웃음을, 때론 , 왜 이래?’라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마치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야릇함을 선사함으로써

착하고 예쁘기만 한 힐링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쾌감(?)을 만끽하게 합니다.

 

세 개로 나뉜 챕터의 주제는 각각 가족, 연애, 그리고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고 후기에 따르면, 이 주제들은 작가를 그렇게 서럽게 만든원인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세 개의 주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날 서럽게 만든 것들이라고 지목할만한,

그러니까 무척이나 보편적인 개념들입니다.

내게 너무 가까이 존재하지만 때론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하기 힘든 가족,

행동, 표정, 말 한마디의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절정과 파국으로 갈리는 연애의 속성,

그리고 굳이 설명 안 해도 내 인생 최고의 애증의 대상인 자기 자신...

 

일기장이든 블로그든 자신의 감정과 일상을 글로 남겨놓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누구나 가장 많이 활용할 주제들이지만,

그렇다 해도 일기장에조차 솔직해지지 못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란 점을 감안하면

가족, 연애, 자신에 대한 소회를 도발적이라 할 정도로 민낯 그대로 드러낸 작가의 고백은

(그것이 공감이든 못마땅함이든 간에) 타인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일기장이나 싸이월드에 갖가지 감정을 쏟아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저 역시 작가처럼 우울할 때 쓴 글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꺼내 읽어보면 문장과 단어는 너무 투박하거나 유치하거나 날것처럼 거칠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문장과 단어들을 자기검열하기 시작했고

명목은 정제와 세련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남의 이야기처럼 밋밋해진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욕설과 민망한 표현과 돌직구 같은 고백들로 채워진 이 작품을 보면서

오래 전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솔직했던 일기장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특히 세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로 읽힐 것 같은데,

어느 세대가 됐든 한 10년쯤 지난 후에 이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아마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유치했어?”부터 이제야 이 감정을 알 것 같네.”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그것이 성장의 결과인지, 노화의 결과인지, 사회화의 결과인지는 개인마다 다를 테니

혹시 궁금하다면 책장에 푹 묵혀놓았다가 다시 한 번 꺼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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