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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 ㅣ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미리 고백하자면 ‘악스’는 중도 포기한 작품입니다.
원래 중도 포기한 작품은 서평 자체를 쓰지 않는데,
왠지 ‘악스’는 이것저것 좀 할 말이 생각나서 짧게나마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알라딘에서 ‘이사카 고타로’를 검색하면 처음에 68편의 리스트가 뜨지만,
만화, 편집본, 개정판 등을 제외하고 나면 30편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세어보니 이 작품까지 겨우 6편밖에 읽지 않았더군요.
그나마 대표작 중 한 편인 ‘골든 슬럼버’는 읽지도 못했구요.
그런데, 왜 늘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이라면 호감 또는 호기심을 가져왔을까, 따져보니
결정적인 한 작품, 즉 ‘사신 치바’가 제게 너무 강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사신 치바’ 전에 읽은 작품이 ‘그래스호퍼’였으니 연이어 두 작품에서 호감을 느낀 셈이고,
그 결과 이사카 고타로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뒤로 만난 ‘사신의 7일’부터 가장 최근에 읽은 ‘화이트 래빗’에 이르기까지
매번 “왜 내가 이사카 고타로를 좋아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갖곤 했는데,
이번 작품 ‘악스’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골든 슬럼버’를 비롯, 읽지 않은 그의 대표작들이 워낙 많은 상태에서
함부로 그런 의문을 가져선 안 되겠지만 ‘악스’는 제법 기대했던 작품이라 실망감이 더 컸고
그런 탓에 그의 작품을 중도 포기한 것은 물론 이런 서평까지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스’는 겉으론 평범한 영업사원이자 세 식구의 가장이지만
실은 업계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유명한 20여년 경력의 살인청부업자 미야케가 주인공입니다.
당연히 ‘그래스호퍼’가 떠올랐고, 최근 재미있게 읽은 청부살인 작품들이 생각났는데,
제가 책장을 접은 2/3쯤까지는 청부살인 이야기는 잠깐씩 스쳐 지나듯 등장하기만 했고,
대부분은 ‘아내에게 구박 받고 쩔쩔 매는 공처가 미야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는 의뢰를 처리하고 늦게 돌아온 밤이면 아내를 깨울까봐 소리 나지 않게 야식을 먹고,
아내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릴만한 이야기는 아예 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내의 발소리만 들으면 위가 오그라드는, 좀 과도한 공처가 캐릭터입니다.
물론 그는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고, 그를 위해 업계에서 은퇴하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가족이 다칠까봐 걱정하는 충실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청부살인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로 분류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고 평범한 샐러리맨의 친구 만들기, 마당에 자리 잡은 말벌 집 없애는 이야기,
아내가 각인시킨 트라우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공처가 이야기가 (거의) 전부라는 점입니다.
다음 챕터엔 뭔가 나오겠지, 기대하다가도 계속 이런 식의 이야기가 전개되자
(가족을 지키기 위한 킬러의 분투를 다뤘을 것으로 보이는) 마지막 챕터를 남겨둔 지점에서
더는 버틸 힘이 없어 중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톡 쏘는 유머와 한껏 비튼 은유는 언제 봐도 매력적입니다.
‘악스’에서도 이런 그의 매력은 여전했지만
읽는 내내 인물, 사건, 감정 가운데 몰입해야 할 것을 전혀 찾지 못했기에
어떤 때는 그 매력적인 유머와 은유가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 별점을 찾아보니 대부분 호평 일색이더군요.
그의 매력적인 유머와 은유 때문일 수도 있고, ‘악스’ 자체의 완성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쫓아가야 할 알맹이’가 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에도 없는 호평을 하긴 어려웠습니다.
앞으로도 이사카 고타로를 포기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예전처럼 근거 없는 호감에 휘둘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신작보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분류되는 작품들부터 마음을 비우고 도전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