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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 1 ㅣ 브론크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스테판 툰베리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완전무장한 강도단이 현금수송 차량을 털고 경비원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난다.
스톡홀름 시경의 브론스키 형사는 유례없는 잔인함에 경악하며 수사에 착수한다.
경찰을 비웃듯 강도단이 연이어 은행을 터는 동안 그저 제자리만 맴돌던 브론크스 형사는
군이 관리하던 무기고가 6개월 전 털렸다는 소식을 듣곤 강도단의 소행임을 직감한다.
CCTV 속 강도단의 행적을 면밀히 주시하던 브론크스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추리한 끝에
강도단 멤버들이 어린 시절 학대당하며 자랐고, 친형제로 구성됐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한편 가정폭력사건 이후 아내와 아들들에게 절연 당하다시피 고립된 채 홀로 살던 이반은
텔레비전 뉴스 속에 등장한 복면 강도단에게 미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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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슈 루슬룬드는 전작인 ‘비스트’, ‘쓰리세컨즈’에서 버리에 헬스트럼과 호흡을 맞췄다가
이번에는 시나리오 작가 스테판 툰베리와 함께 이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공동집필임에도 안데슈 루슬룬드가 모든 작품에서 메인 작가 역할을 맡은 걸로 보이는 이유는
세 작품 모두 비슷한 톤인 것은 물론 아쉬움과 미흡한 점까지 꼭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더 파더’의 메인 코드는 ‘가족의 폭력’과 ‘희대의 연쇄 은행강도사건’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잔혹한 폭력성을 물려받은 레오 형제들은 희대의 연쇄 은행강도단이 됩니다.
군대의 무기를 탈취하여 스웨덴 전역의 은행을 터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살인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또,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족이 해체된 탓에 폭력을 지독히도 혐오하는 형사 브론크스는
상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폭력덩어리로 보이는 은행강도단 수사에 전력을 쏟습니다.
범인의 아버지와 형사의 아버지 모두 폭력의 화신이었고 결과적으로 가족을 붕괴시켰는데,
한쪽의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진화시켰고,
다른 한쪽의 아들은 폭력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발판으로 폭력을 막는 형사가 된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더 파더’는 가족폭력의 상반되는 양면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됩니다.
어린 레오가 존경과 증오의 대상인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전수받는 과거 이야기와,
스톡홀름 경찰 브론크스가 레오 형제의 은행강도사건을 수사하는 현재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3형제 중 맏아들인 레오가 어떻게 아버지로부터 폭력성을 전수받았으며
어떻게 두 동생에게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연쇄강도단으로 진화하는지 설명합니다.
동시에, 폭력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이 자아낸 ‘특별한 촉’을 지닌 형사 브론크스가
어떤 방식으로 은행강도단의 정체와 그들간의 특별한 유대감을 밝히는가를 설명합니다.
안데슈 루슬룬드가 버리에 헬스트럼과 호흡을 맞췄던 ‘쓰리세컨즈’도 그랬지만,
‘더 파더’ 역시 분권이 필요할 정도로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툼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분량에 비해 주제, 서사, 캐릭터는 다소 허약한 편입니다.
우선 두 주인공(레오 VS 브론크스)의 기계적 설정은 그다지 감흥이 강하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폭력이 낳은 상반된 캐릭터라는 점 자체는 인상적이지만,
‘너무 완벽할 정도’로 대조된 점은 읽는 내내 위화감만 불러일으켰습니다.
100% 대척점에 선 인물들을 그리기 위해 마치 자로 재고 설계한 듯한 느낌이랄까요?
또, 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의 동기와 목표가 부실하다는 것도 문제로 보이는데,
레오와 두 동생이 왜 하필 이 시점에 와서 연이어 은행을 털려는 건지,
그 많은 돈을 훔쳐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얼마만큼의 돈을 훔쳐야 범행을 그치려는 건지 등
레오의 범행 전반에 대한 설정이 다 읽은 뒤에도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브론크스의 경우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촉’으로 범인들의 윤곽만 포착할 뿐 구체적인 수사 모습은 별로 없는데,
대신 그 자리엔 아버지의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에 대한 한없는 고찰과 회한,
그리고 (등장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연인과의 불화에 대한 자책만 가득합니다.
폭력 자체에 관한 설정도 모호한 편인데,
레오 일당은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이긴 해도 가능하면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씁니다.
이 ‘배려’가 뭘 뜻하는지, 보통의 폭력성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더 문제는 독자 입장에선 꽤나 인간적으로 보이는 레오의 이 ‘배려 깊은 폭력’이
유독 형사 브론크스에게만은 ‘용서할 수 없는 지독한 폭력’으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레오의 ‘배려 깊은 폭력’도, 브론크스의 ‘뜬금없는 폭주수사’도 이해불가입니다.
결국, 범인도 형사도 ‘왜?’라는 질문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오로지 작가에 의해 부여받은 경로를 따라 그저 직진만 할 뿐입니다.
그 외에도,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는 조연들(주로 여자 캐릭터),
묵인하고 넘어가기엔 꽤 자주 눈에 띄는 오타들, 불필요해 보이는 사족 같은 분량 등
장점이나 미덕보다는 아쉬움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전작들과 비슷한 부분에서 비슷한 종류의 아쉬움을 느꼈기에 실망감이 더 컸습니다.
2013년에 쓴 ‘비스트’ 서평에 “안데슈 루슬룬드의 후속작 한 편쯤은 더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후에도 그가 참여한 작품을 계속 찾아 읽게 될지는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