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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레인 ㅣ 데이브 로비쇼 시리즈
제임스 리 버크, 박진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무죄를 주장하는 사형수를 찾아간 뉴올리언스 경찰서의 데이브 로비쇼 경위는
그에게서 라틴계 조직이 자신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과 라틴계 조직과의 접점을 찾던 데이브 로비쇼는
몇 주 전, 늪에서 낚시를 하다 우연히 흑인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 사실을 떠올린다.
관할 지역의 보안관이 시체 부검을 하지 않은 채 단순 익사로 처리했지만
그 사건을 쉽게 넘기고 싶지 않았던 데이브 로비쇼는 독자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일개 형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에 발을 담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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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미시시피’, ‘기울어진 세상’, ‘액스맨의 재즈’ 등
미국 남부를 무대로 한 장르물들은 항상 제 시선을 끌곤 했습니다.
미국이지만 미국 같지 않은 곳, 프랑스의 유산이 화석처럼 남은 곳, 그리고 재즈의 고향 등
다양한 지리적, 역사적 관심거리가 많은 곳인데다 항상 불온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곳이라서
그곳을 무대로 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란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 읽은 뒤의 만족도는 조금씩 다르긴 했어도
여전히 미국 남부라는 무대는 제겐 호기심을 자극하는 배경임에 틀림없습니다.
‘네온 레인’은 루이지애나 주와 뉴올리온스라는 도시의 색채가 무척 진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이 지닌 남부 특유의 이미지 설명에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 거리와 건물과 식물들,
직업과 인종을 불문하고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긴장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
그리고 달콤한 재즈가 흐르는 가운데 살인과 폭력과 마약이 난무하는 정글 같은 분위기 등
작품 전반에 걸쳐 ‘불온한 미국 남부’가 상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데이브 로비쇼는 베트남 참전 이력이 있는 거친 뉴올리온스 경찰입니다.
케이준(주로 루이지애나주에 거주하는 강제 이주당한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그는
무척 거칠고 다혈질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원칙과 법을 믿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연히 발견한 흑인 여자의 시신 때문에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에 휘말립니다.
라틴계 폭력배와 이탈리아 마피아는 물론 CIA, 재무부 수사관과도 충돌하는 사태에 이르지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흑인 여자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의 목표는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뿐입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지나치게 돌직구처럼 좌충우돌한 나머지
징계를 받거나 유치장에 갇히거나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읽은 건 맞지만 나름 아쉬운 점도 꽤 많은 작품입니다.
우선 ‘거칠지만 시적 은유로 가득한 걸작 누아르’라는 홍보카피처럼 은유적 표현이 꽤 많은데,
때론 그 은유가 너무 지나쳐 좀처럼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각주’도 꽤 많은 편인데, 그중에는 은유를 설명하기 위한 각주가 적잖은 편이라
스토리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도 했습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사건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누가 적인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발단은 흑인 여자의 죽음인데 뒤로 갈수록 이런저런 거물들이 계속 개입하면서
주인공 데이브 로비쇼가 추적하는 ‘최종목표’가 누군지 점차 애매해지기 시작합니다.
다 읽고도 결국 누가 응징된 것인지, 어떤 정의가 구현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꽤 많은 죽음이 등장하지만 그 죽음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대신 그 자리는 데이브 로비쇼의 ‘베트남 참전 트라우마’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리즈 첫 편이라 그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려는 의도라는 건 충분히 알겠지만,
때론 주객이 전도된 듯 보일 정도로 ‘베트남 트라우마’가 장황하게 설명된 게 사실입니다.
데이브 로비쇼는 여러 면에서 마이클 코넬리가 창조한 해리 보슈를 떠올리게 합니다.
해체된 가족, 돌직구 같은 정의감, 베트남 참전이 남긴 트라우마 등이 둘의 공통점인데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종종 해리 보슈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확실한 차이라면 데이브 로비쇼의 지독한 알코올중독증과 거침없는 폭력적 성향이랄까요?
작가의 이력을 보니 지금까지 이 이름을 몰랐다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2018년 현재까지 38권의 작품을 발표한 것은 물론
‘범죄소설 작가들 중 전설로 불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찬사까지 받았으니
꽤 많은 스릴러를 읽었거나 읽진 않았어도 이런저런 소문을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제 입장에선
‘내가 왜 이 작가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래서 ‘데이브 로비쇼 시리즈’가 더 궁금해진 것도 사실이지만요.
이후 작품도 네버모어에서 계속 출간된다고 하니
뉴올리언스 경찰 데이브 로비쇼가 어떤 사건을 맡고 어떻게 성장할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아쉬움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