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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문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인터넷 정보관리회사, 일명 ‘사이버패트롤’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대학생 고타로는
같이 일하던 선배가 노숙자들의 연쇄실종사건을 조사하다 실종되자 직접 그를 찾아 나선다.
선배가 실종된 장소로 추정되는 한 유령 빌딩에 숨어든 고타로는
그곳에서 옥상의 조각상이 움직인다는 괴소문을 확인하러 온 전직 형사 쓰즈키와 마주친다.
도시의 어둠 속, 거대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은
현재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과 연결되고,
고타로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의 힘을 빌려 직접 진상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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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의 작품은 현대물과 시대물을 가리지 않고 믿고 읽는 편입니다.
특히 ‘모방범’으로 일본 미스터리에 입문한 저로서는
그녀의 사회성 짙은 서사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지금껏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책읽기를 경험했습니다.
인상적인 표지와 제목으로 유명한 ‘에도 시리즈’를 비롯한 시대물 미스터리는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매력까지 잘 배합돼서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별미 같은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소(솔직히... 아주 많이) 낯설고 당황스런 느낌을 피할 수 없었는데,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에도 시리즈에서나 볼 법한 판타지가 현대물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미 여사라고 해서 현대물 판타지를 쓰지 말란 법은 없지만,
예상치도 못한 뜻밖의 전개에 제가 생각해도 과할 정도의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일단 초반부터 여러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집니다.
교살 후 희생자의 발가락이나 손가락을 절단하는 연쇄살인사건,
주인공 고타로의 이웃집 여학생이 연루된 학교 내 왕따사건,
그리고 고타로가 소속된 ‘사이버패트롤’에서 감지한 노숙자 연쇄실종사건 등이 그것입니다.
고타로는 노숙자 연쇄실종사건을 조사하던 선배가 실종되자 그의 흔적을 뒤쫓게 되고
오래전부터 방치돼온 한 유령빌딩 인근에서 유력한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 고타로와 함께 투톱 주인공을 맡은 전직형사 쓰즈키는
유령빌딩 옥상의 괴물 조각상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이웃 노파의 진술을 듣곤
형사로서의 촉을 발동하여 남몰래 조사를 진행하던 중 심상치 않은 상황을 목격합니다.
두 사람은 운명처럼 유령빌딩에서 조우하게 되고,
그곳에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비현실적인 존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사실, 초반에 그 ‘비현실적 존재’를 목격한 소녀와 노파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뭔가 지극히 현실적인 트릭이 깔려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미야베 미유키니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는데,
진짜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또다른 비현실적 존재까지 고타로 앞에 나타나자
그때부터 마치 어울리지도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 ‘정령’, ‘다른 영역(세계)’, ‘테두리’, ‘시원(始原)의 대종루를 수호하는 전사’ 등
명백한 판타지 아이템들이 등장하면서 난독의 증세까지 겪게 됐는데,
그런 탓에 1권은 어찌어찌 다 읽었지만 2권은 계속 읽을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2권에서는 (1권의 엔딩으로 미뤄보아) 고타로와 쓰즈키가 비현실적인 존재의 힘을 빌려
연쇄살인사건, 인터넷의 폐해 등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데,
비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소화불량 상태에서 더는 몰입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다른 세계의 존재가 등장하는 판타지와 현대물 사회파 미스터리의 조합’이
제겐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서사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은 (제가 못 읽은) ‘영웅의 서’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인 듯한데
그 작품의 소개글을 찾아보니 역시 저와는 인연이 아닌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 서평은 혹평이 아니라 ‘취향이 달라 소화하지 못한 사연’입니다.
‘영웅의 서’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또 미미 여사 특유의 판타지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비탄의 문’ 역시 충분히 열광하며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막 출간된 작품이라 한두 달 쯤 지난 뒤에 다른 분들의 서평을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그 서평들 속에서 제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미덕을 발견한다면
그때라도 ‘비탄의 문’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