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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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완벽주의와 자기애로 똘똘 뭉친 에드워드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 건축가입니다.

에드워드가 지은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의 주택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소위 사물인터넷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별한 주택입니다.

이야기는 이 특별한 주택의 과거 세입자 에마와 현재 세입자 제인이 이끌어갑니다.

그녀들은 각각 큰 상처를 입고 안전한 주택을 찾던 중 원 폴게이트 스트리트에 머물게 되는데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까다로운 세입자 규칙에 놀라면서도 점차 적응해가는 것은 물론

주택의 설계자이자 주인인 에드워드와 특별한 관계에 이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마와 제인은 에드워드와 이 주택의 치명적인 비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름대로의 조사를 진행하지만 그녀들 앞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닥쳐오기 시작합니다.

 

● ● ●

 

사고인지, 살인인지, 자살인지 불명확한 몇 건의 죽음이 등장하고

과거와 현재의 세입자인 에마와 제인이 그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주된 스토리이긴 하지만,

사건 자체보다는 각 인물들의 불안정하고 강박적인 심리 묘사가 핵심인 작품입니다.

에마와 제인은 서로 만난 적도 없는 과거와 현재의 세입자지만 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자매로 보일 만큼 꼭 닮았고, 에드워드와 판박이 같은 사랑을 나누며,

이 기이한 주택에서 벌어진 기이한 죽음에 관해 관심을 갖고 조사에 나선다는 점입니다.

그녀들은 에드워드는 물론 그의 분신과도 같은 주택이 내뿜는 압도적 분위기에 굴복하면서도

에드워드와 주택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일단 설정 자체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미니멀리즘과 빅브라더의 혼합물 같은 기이한 저택과 그곳에 자리 잡은 상처투성이 인물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심리전과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 등

흥미를 자극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내재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별 세 개밖에 줄 수 없었던 것은

뒤로 갈수록 점점 이야기가 사실감과 방향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자연스레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위해 편의적으로 변질됩니다.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세입자 규칙에 동의해가면서 이상한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이유도,

모든 걸 통제당하는 이상한 집의 시스템에 큰 거부감 없이 순응하는 이유도,

빛나는 외모와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누구 봐도 비정상인 집주인에게 반하는 이유도,

(아무리 심리적 서사가 강한 스릴러라 해도) 딱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습니다.

깊은 상처를 지녔던 인물은 점차 거짓말쟁이로 포장되기 시작하더니 전혀 딴사람이 돼버렸고,

집주인에게 철저한 이던 인물은 나중에 알고 보니 실은 이었던 것으로 밝혀집니다.

순도 100%의 완벽주의자이자 통제권을 잃지 않던 인물은 막판에 갑자기 순정파로 변하고,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여러 죽음의 진실은 엉뚱하고 개연성 없는 인물이 진범으로 지목된 탓에

아무리 봐도 반전을 위한 반전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심리스릴러임에도 독자의 눈길을 끌었던 사건들이 너무 어이없이 마감된 느낌이랄까요?

 

이런 일관성 없는 전개 덕분에 마지막 챕터를 읽을 쯤엔 좀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인물들이 중후반부터 실은 이런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캐릭터가 변한 점은

앞서 꽤 거창하고 장황했던 내용들이 굳이 필요했나, 싶은 회의까지 들게 만들었습니다.

엔딩 지점의 주요 인물들은 초반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이름이 낯설어서 찾아보니 과거 베스트셀러를 썼던 작가의 새 필명이라고 돼있는데,

첫 페이지를 읽기 전만 해도 작가의 본명이 무척 궁금했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다른 이유에서 작가의 본명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시작과 끝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이는 이 작품이

아무래도 과거 베스트셀러를 썼던 작가의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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