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쳐다보지 마 스토리콜렉터 67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모녀가 살해당했다. 어머니는 난도질당했고, 딸은 침대에 고이 누워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별거 이후 6년 만에 가족들과 여름을 보내게 된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은 경찰의 수사협조 요청을 거부하지만 수상쩍은 심리학자가 자신의 이름을 팔아 수사에 혼선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된다. 광기와 연민이 공존하는 두 살인은 큰 온도 차를 보였고, 조는 살인자에게 딸과 어머니가 표상하는 바가 분명 달랐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해낸다. 모녀의 주변 인물들을 살피기 시작하면서 깊숙이 감춰져 있던 비밀들도 서서히 드러나고, 수사선상에 오른 용의자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널 지켜보고 있어에 이어 올해에만 두 편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출간된 건 마이클 로보텀의 팬들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 전작인 미안하다고 말해에서 조는 심리학자보다는 탐정에 가까워 보였고, ‘널 지켜보고 있어에선 자신의 환자를 도우면서 심리학자의 카리스마를 회복했다면, 이번 작품에서 조는 두 가지 캐릭터를 모두 발산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하긴 했어도 사건 자체는 소소해 보입니다. 연쇄살인마의 행각으로 보이지도 않고, 면식범일 가능성이 무척 높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는 여러 면에서 당혹스런 처지에 놓입니다. 주변 인물들을 꼼꼼히 탐문해도 단서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고, 악질적인 사이비 심리학자까지 나서서 무능한 경찰을 공격하자 수사는 방향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무척 느린 편이었습니다. 사건 못잖게 비중을 차지한 조의 가족 이야기가 무겁고 처연한 톤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아내 줄리안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데다, 딸 찰리가 범죄심리를 전공하겠다고 선언하자 조는 크게 놀랍니다. 거기다가 가족의 문제가 사건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조는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 겪었던 끔찍한 가족해체의 비극이 재생될까 전전긍긍합니다. 이런 서사가 작품 전반을 지배하다 보니 스릴감 넘치는 책읽기보다는 돌덩이를 가슴에 얹어놓은 듯한 묵지근한 책읽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수시로 튀어나와 웃음을 자아냈던 조 특유의 블랙유머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개성 강한 단골 조연들의 매력 역시 이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마이클 로보텀만의 스릴러로서의 미덕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명탐정이자 뛰어난 임상심리학자인 조 올로클린이 진실을 향해 분투하는 과정이라든가 하나같이 수상한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경찰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매서운 탐문은 언제나 그랬듯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휘어잡고 있습니다. , 끔찍한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려는 찰리는 자신만의 확고한 주장을 통해 아버지 조의 반대와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은 물론 오리무중에 빠진 수사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해서 색다른 기대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다만, 다소 아쉬운 대목들도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띈 점은 조가 사건에 말려들게 된 계기와 조의 단독수사처럼 느껴진 전반적인 수사 과정입니다. 간곡하게 조를 수사에 초빙한 베로니카 총경은 그 뒤론 조의 후방지원에 무관심한 것은 물론 심지어 귀찮아하기도 합니다. , 피해자 주변을 이 잡듯 탐문하고 다니는 조에 비해 런던의 그 어느 경찰도 수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조 혼자 모든 관련 인물들을 다 만나고, 사건 현장을 반복해서 조사합니다. 조의 수사방식 역시 용의선상에 오른 자들의 심리상태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것 외엔 딱히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어서 재미를 반감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막판에 드러난 범인의 정체나 범행 동기는 이야기 전체에 녹아들지 못한 채 약간은 뜬금없는 반전의 느낌마저 주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묵직한 서사가 깃든 작품이지만 재미라든가 개연성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많이 묻어났습니다. 물론 여전히 마이클 로보텀의 문장은 한눈 팔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사건은 끔찍한 외형과 함께 내밀한 심리서사를 겸비하고 있어서 매번 독특하고 특별한 사건 설정을 자랑하는 시리즈의 힘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매력과 힘 때문에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다음 이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올해 또다시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출간될 것 같진 않지만,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조가 이후 어떤 사건과 맞닥뜨릴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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