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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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내리는 밤, 부동산 업자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용의자로 지목된 구스노키는 강압적인 수사로 인해 자백하고 사형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교도소에서 자살하고 만다.

그러다 5년 후 와타세 경부는 강도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야 밝혀지는 무리한 수사, 증거 날조, 원죄, 경찰과 사법의 어두운 그늘.

과연 구스노키는 무죄였을까? 그렇다면 진범은 누구인가?

와타세는 경찰의 조작으로 인한 원죄 사건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직을 고발해야 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들을 통해 와타세라는 이름에 익숙해진 독자에겐

무척이나 반갑고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는 신참 고테가와를 성장시키는 괴짜 반장으로,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인 속죄의 소나타에서는 조연이지만 감초 같은 역할을 맡았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등극합니다.

특히 와타세가 신참 시절이던 1984년부터 28년에 걸친 이야기가 전개돼서

그야말로 와타세의 프리퀄이라 할 만한 매력적인 서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작가형사 부스지마살인마 잭의 고백에 등장했던 이누카이는 물론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히어로인 고테가와도 잠깐이지만 얼굴을 비추기도 합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이 작품의 화두는 원죄(冤罪, 억울하게 덮어쓴 죄)’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이나 오리하라 이치의 원죄자등 원죄를 다룬 걸작이 많아서

소재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신선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더구나 절반쯤까지는 규모도 작고 특별한 설정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고 그런 원죄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경찰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백을 얻어내고 증거를 날조했고,

검찰과 법원은 경찰의 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곤 용의자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후 5년 뒤에야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와타세는 조직의 갖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평소 존경하는 검사를 통해 원죄의 전모를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5년 전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 검찰, 법원 등은 그야말로 숙청의 피바다를 이뤘지만

정작 폭로자인 와타세만은 그 숙청에서 비껴난 채 경찰로서의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속죄하며 23년을 보낸 어느 날, 이젠 현경 수사1과 반장이 된 와타세 앞에

과거 원죄 사건이 아직 제대로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이 대목이 중반부를 살짝 넘은 지점인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진짜 매력은 여기서부터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밋밋한 원죄 이야기처럼 보이던 서사는 돌직구 같은 전개와 반전으로 무장한 채 달려갑니다.

조직을 팔아넘겼다는 낙인이 찍힌 채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와타세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지만

오히려 그것은 와타세를 분투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작은 단서, 스쳐 지났던 목격자 등을 다시 되짚어가던 와타세는

막판에 이르러 생각지도 못한 인물,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마주하며 충격에 빠집니다.

 

다소 억지스러울 정도로 시의적절한 단서와 증언이 와타세에게 제공되기도 하고

미스터리의 종결점 역시 와타세만이 알아낼 수 있는 특별한 반전이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20년도 훌쩍 넘은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와타세의 진정어린 노력은

독자의 눈길을 한시도 다른 곳에 팔 여지를 주지 않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됩니다.

 

아무래도 원죄라는, 한없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

괴짜 반장으로 등장했던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속죄의 소나타때의 와타세와는

분명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나카야마 시치리가 창조한 캐릭터 가운데 꽤 매력적이라 여겼던 와타세의 프리퀄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여운을 남겨줬습니다.

더불어, 경찰, 검찰, 법원, 언론, 유족 등 원죄 관련자들의 태도나 입장도 묵직하게 그려졌고,

단 한 건의 원죄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 벗어버릴 수 없는 형벌이란 점도 충분히 어필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엄청난 작품을 쏟아낸 나카야마 시치리가

테미스의 검을 통해 와타세를 주인공으로 한 새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번역하신 이연승 님에 따르면 후속작 제목이 네메시스의 사자라고 합니다.

이 작품 역시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고 하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묵묵히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해온 와타세의 새로운 활약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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