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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평점 :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남자 에이머스 데커의 활약을 그린 세 번째 작품입니다. 전도유망한 미식축구선수였지만 경기 중 과격한 충돌 이후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을 얻었고, 운동을 접고 형사가 된 후에는 그 능력 덕분에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게 됐지만, 참혹하게 가족이 살해당한 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기억 능력을 발휘하여 가족 살해범을 체포한 것을 계기로 FBI와 인연을 맺은 데커는 미제사건 전담반에 소속되어 전작인 ‘괴물이라 불린 남자’에서 맹활약을 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워싱턴으로 무대를 옮겨 현재 진행 중인 사건까지 맡게 됩니다.
이번에 데커가 맡은 사건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저격 사건입니다. FBI 빌딩 앞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저격하곤 자살한 사건인데, 둘 사이엔 아무리 봐도 접점이 전혀 없고 살인 동기 역시 유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DIA(국방정보국) 소속 하퍼 브라운이 수사에 개입하면서 데커 팀은 두 남녀가 국가기밀 유출과 연관됐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오히려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정체불명의 가해자와 피해자, 단순살인사건에서 국가 간 스파이 대결로 확장되는 서사, 정보기관 간의 미묘한 힘 대결, 거기에 덧붙여 비극적인 가족사와 아슬아슬한 멜로 등 특별한 능력자 데커를 중심으로 600페이지에 걸쳐 다채로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데이비드 발다치의 필력과 에이머스 데커의 캐릭터는 역시나 매력적입니다. 데커와 묘한 케미를 발휘하는 전직 기자 출신의 동료 알렉스 재미슨도 돋보였고, 카메오 이상의 비중과 분량을 차지한 전작의 주인공 멜빈 마스의 활약도 눈에 띄었습니다. 무엇보다 데커 팀을 괴롭히는 것 같기도, 도와주는 것 같기도 한 DIA 요원 하퍼 브라운은 이후 시리즈에서도 모습을 보일 것 같아 나름 기대감을 주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편의 전작에 비해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우선, 스파이 또는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위화감입니다. 민간인이지만 특별한 능력 덕분에 FBI 특수팀 요원인 된 데커가 국가안보에 관한 사건을 맡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설정이긴 하지만 (가족을 살해한 범인을 체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자의 진실을 밝혔던 전작들과 비교하면) 아무리 봐도 왠지 데커와 어울리지 않는 사건처럼 보였고, 뒤로 갈수록 데커를 미국식 슈퍼히어로로 만들기 위해 사건의 몸집을 억지로 부풀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좀처럼 수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다 보니 중반쯤부터는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전작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곤 했습니다. 396페이지에 와서도 “아직 조금도 성과가 없었다.”라는 묘사가 등장할 정도로 데커 팀은 사건의 핵심에 조금도 다가가지 못한 채 주변부만 맴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딘가 2% 부족해 보이는 번역의 문제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세 편의 ‘데커 시리즈’는 매번 번역자가 바뀌었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전작들에 비해 되읽게 만드는 대목들이 꽤 잦아서 아쉬움이 배가됐던 것 같습니다.
써놓고 보니 부족한 점, 아쉬운 점만 잔뜩 늘어놓은 서평이 됐는데, 어쩌면 저와는 달리 데커의 외연이 국가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까지 확장된 상황을 반기고 열광하는 독자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혹시 이 작품으로 처음 데커를 만난 독자라면 반드시 전작들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남자 에이커스 데커의 진짜 매력을 100%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