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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인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13.67’, ‘망내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등 그동안 읽은 작품 목록만 놓고 보면
찬호께이는 사회파 미스터리 또는 무거운 주제를 좋아하나 보다, 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초능력 청부살인업자’를 다룬 오락성 짙은 단편집 출간 소식에 살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던 전작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얇은 분량에 또 한 번 놀랐고,
코믹한 분위기까지 발산하는 청부살인업자 주인공의 유쾌한 행각에 마지막까지 놀랐습니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작품마다 개성도 무척 강합니다.
초능력을 얻게 된 사연과 함께 소소한 일상미스터리를 다룬 ‘이런 귀찮은 일’,
스케일도 제법 크고 여러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으며 위기를 맞기도 하는 ‘십면매복’,
청부살인업자라면 한번쯤 겪을 법한 딜레마와 아이러니를 다룬 ‘사랑에 목숨을 걸다’,
그리고 유쾌한 트릭과 함께 독자의 뒤통수를 적절히 때려주는 ‘마지막 파티’ 등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요소들을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사실, 주인공의 초능력은 판타지 그 자체입니다.
이벤트 회사의 말단직이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지닌 초능력을 깨닫습니다.
누군가와 접촉한 상태에서 주문을 외우면 상대가 그 주문대로 죽게 되는데,
죽는 시간대를 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죽음의 형태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심장과 혈관에 공기를 넣어 마치 풍선처럼 부푼 채 사망하게 만드는 게 주된 전략인데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경찰들 사이에서 ‘풍선인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서문에서 “순수하게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라고 밝힌 찬호께이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즉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읽어줄 것을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청부살인업자라면 대체로 목표물은 악역으로 설정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수록작들 속의 목표물은 어찌 보면 악역이기도, 어찌 보면 불행한 희생자로 보이기도 해서
마냥 주인공의 살인에 동조하거나 공감하면서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블랙유머를 접하듯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찬호께이가 바란 ‘길티 플레저’가 제대로 작동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라 후속작이 나오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번역하신 강초아 님 후기를 보니 풍선인간의 다음 이야기가 조만간 출간될 것으로 보입니다.
‘13.67’의 서사적 무게감, ‘망내인’의 엄청난 분량으로만 기억됐던 찬호께이가
마치 분신술을 부린 것 마냥 예상치 못한 장르와 즐거움을 전해준 것 자체로도 유쾌했는데
그 후속작까지 나온다고 하니 이제 그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교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여전히 그의 압도적인 서사와 분량이 그리운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욕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