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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는 자기 방에서 감쪽같이 실종된 여자아이의 행방을 뒤쫓는다. 경찰의 베테랑 수사팀과 함께 영아 고문 살해 이력이 있는 부부 범죄자를 추적하던 도중, 사건이 단순한 유괴를 넘어 도시를 지배하는 갱과 마약 조직과도 연루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켄지와 제나로 앞에 드러난 진실은 충격적인 결말을 예고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한국에는 2006년에 소개됐지만, 원작은 1998년에 출간됐으니 꼭 20년이 됐습니다. 그만큼 아날로그적인 작품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최첨단 무기도 없지만 켄지와 제나로는 ‘몸과 머리로만 싸우는 전형적인 사립탐정’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이번에 켄지와 제나로가 마주한 사건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쁜 유아납치입니다. 더구나 납치의 배후에 갱, 마약조직, 검은 돈이 복잡하게 얽혔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아이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 때문에 더욱 초조해집니다. 미궁에 빠졌던 수사는 제나로의 눈썰미 덕분에 급물살을 타지만 결정적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반격을 당하면서 경찰마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고 맙니다. 그렇게 반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켄지의 활약으로 수사는 급진전되지만 켄지와 제나로는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씁쓸하고 비극적인 엔딩에 도달하고 맙니다.
사실, 피해자가 어린 아이인 작품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입맛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소시오패스 또는 소아성애자에 의한 납치, 살해, 고문을 묘사한 대목은 아무리 살인을 다룬 장르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도 마음 편히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제나로는 동료이자 연인인 켄지에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속내를 어렵게 밝히는데, 그런 상태에서 납치된 아이를 되찾으려는 두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잔혹한 사건을 다룰 때보다 진지하고 절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듯한 두 사람은 단순한 긴장감이나 스릴감을 넘어 안쓰러움과 애틋함까지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다만, 한발 떨어져 큰 그림을 보면 다소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납치 배후로 보이는 갱, 마약조직, 검은 돈은 그 관계나 흐름이 명확해 보이지 않고, 누가 나쁜 놈인지, 누가 동정 받을 자인지, 누가 정의를 구현한 것인지도 선명하지 않고, 마지막에 드러난 납치사건의 진상 역시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또, 조연인 베테랑 경찰들의 비중이 워낙 커서 켄지와 제나로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점도 무척 아쉬웠습니다. 앞선 작품들이 꽤 복잡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갈등관계가 명확했고, 사건 자체 또는 수사 과정에서 계속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켰던 반면, ‘가라~’는 이것저것 많은 양념들이 빠진 듯한 싱겁고 모호한 맛이었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시리즈지만, 여섯 편밖에 출간되지 않아서 아끼고 아끼며 읽다 보니 전편인 ‘신성한 관계’ 이후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가라~’를 읽게 됐습니다. 이제 남은 작품은 ‘비를 바라는 기도’와 ‘문 라이트 마일’뿐인데, 아껴 먹던 맛난 음식이 바닥을 드러낸 것을 지켜보는 듯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겨우 두 편밖에 안 남았으니 더더욱 아껴 읽게 될 것 같은데, 언제쯤 책장에서 꺼내 먼지를 털고 첫 페이지를 펼칠지는 저도 전혀 예상 못하겠습니다. 새삼 데니스 루헤인이 왜 켄지와 제나로의 이야기를 달랑 여섯 편만 그렸는지 야속해질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