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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도쿄의 사립중학교에서 재난 훈련의 일환으로 실시한 1박 2일 교내 캠프 도중
히노 다케시라는 남자 교사의 부적절한 언동이 알려져 파문을 빚는다.
학생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은 물론 무단가출, 자살미수까지 저지른다.
그러나 히노 다케시는 학생들의 주장을 부정하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피해자 학부모의 의뢰를 받아 사건을 조사하던 사립탐정 스기무라 사부로는
우연히 교사 측 변호인을 맡은 후지노 료코를 만나고,
둘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진상을 파헤치는 데 협조한다.
교사와 학생의 엇갈리는 진술 속, 이윽고 해묵은 갈등과 오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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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보다는 조금 길고, 중편이라기엔 조금 짧은 132페이지 분량의 작품입니다.
방대한 분량으로 유명한 미미 여사가 이 짧은 분량에 무슨 이야기를 담았을까도 궁금했지만,
그에 못잖게 기대가 됐던 건 ‘솔로몬의 위증’ 이후 20년이 지나 변호사가 된 후지노 료코와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가 콤비를 이뤘다는 점입니다.
교사와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후지노와 스기무라는 각각 교사와 학생들에게 의뢰를 받은 변호사와 탐정으로 조우합니다.
하지만 ‘적’으로 만나긴 했어도 두 사람은 대립이 아니라 전략적인 제휴를 맺습니다.
그리고 각각 교사와 학생들은 물론 주변인 탐문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숙명에 가까운 필연’이 막판 반전으로 설정된 점이나
교육현장에서 쉽사리 사라지기 힘든 권력, 강요, 저항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점,
스기무라의 날카롭지만 따뜻함과 진정성을 담은 탐문 등은
미미 여사 특유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대목들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분량이 짧다 보니 사건 자체도, 미스터리의 해법도 다소 심심한 편입니다.
또, 막판에 밝혀진 진실은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교훈적 뉘앙스가 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의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후지노와 스기무라의 협업이 기대만큼 안 보인 점이 아쉬웠는데,
스기무라는 (표면적으로는) 원톱 역할을 맡았음에도 큰 임팩트가 안 느껴졌고,
후지노는 존재감 자체가 미미하다가 엔딩에서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특히 ‘잘못을 타이르기보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고민하고 이해하고 분노하는’ 후지코의 캐릭터는
작품 내내 거의 느껴지지 않다가 마지막에 주입식 정보처럼 설명되고 있어서
‘솔로몬의 위증’에서 공감했던 카리스마나 캐릭터의 연장선이라 보기 어려웠습니다.
후지노와 스기무라를 내세운 스핀오프라면 좀더 복잡다단한 사건과 사이즈가 큰 서사를 통해
미미 역사 특유의 방대한 장편이 나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막간극 정도의 무게감이 전부였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