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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에게 장미를
시로다이라 교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주인공 명탐정이 같은 공간, 같은 인물들이 얽힌 두 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작 중편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입니다.
첫 수록작인 ‘메르헨 난쟁이 지옥’은 단순해 보이지만 치밀하게 설계된 범인의 트릭을
비범한 명탐정이 속 시원하게 풀어내는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그에 반해 두 번째 수록작인 ‘독배 퍼즐’은 밀실 미스터리를 연상시키는 기이한 사건과 함께
명탐정의 트라우마를 디테일하게 그린 범죄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두 작품 모두 갓난아기들의 뇌로 만들어진 전설적인 독약 ‘난쟁이 지옥’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 엽기적인 설정은 말 그대로 ‘설정’일뿐 그 이상의 불쾌함을 자아내진 않습니다.
‘메르헨 난쟁이 지옥’은 30여년 전 치명적인 독약 제조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악연이
현세에 와서 우연과 운명을 거쳐 지독한 살인극을 일으키게 되고,
사건에 초대받은(?)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가 진범의 교묘한 트릭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독배 퍼즐’은 앞서 객관적 입장의 해결사로만 등장했던 세가와 미유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사건의 진상 자체보다는 ‘과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언제나 옳은 일인가?’라는,
탐정 입장에서는 꽤나 본질적인 존재론적 문제와 함께
유년기부터 명탐정으로 불렸던 세가와 미유키의 깊은 상처를 집요할 정도로 깊게 다룹니다.
두 작품 모두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의 비범한 추리와 거듭되는 반전이 눈에 띄는데,
24살에 쓴 데뷔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입니다.
그 덕분에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지만,
‘거듭되는 반전과 복잡하고 정교한 설계’가 때론 가독성을 떨어뜨린 것도 사실입니다.
뭐랄까... 진실을 설명하는 세가와 미유키의 ‘해설’이 어딘가 결과론적으로 보인 적도 있었고,
거듭되는 반전 가운데 한두 군데는 굳이 없었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족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거의 100% 세가와 미유키의 트라우마 묘사를 위한 설정이었는데,
오히려 리얼리티나 공감대를 떨어뜨린 부작용이 더 심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큰 스케일은 아니더라도 촘촘하고 밀도 높은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개연성 있는 추리로 평범한 사람들의 두뇌를 무참히 뛰어넘는 주인공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두 편의 중편 모두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임엔 틀림없습니다.
세가와 미유키는 여느 명탐정들과도 차별되는 꽤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명탐정으로서의 능력을 지닌 덕분에 얻은 지독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정 역할을 통해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잊으려는 그녀의 행보는
이 작품 이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 무척 궁금하게 만듭니다.
이야기 전개로 보아 이후 시리즈로 이어졌을 것 같진 않지만
나중에라도 세가와 미유키가 등장하는 작품이 나온다면 꼭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