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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4분 뒤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5월
평점 :
중편 치고는 좀 긴 ‘랭골리어’, 장편이라 해도 무방해 보이는 ‘비밀의 창, 비밀의 화원’ 등
두 편의 작품이 실린 스티븐 킹의 호러 중편집입니다.
(참고로 ‘자정 4분 뒤 2’에는 ‘도서관 경찰’, ‘폴라로이드 개’ 등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랭골리어’와 ‘비밀의 창, 비밀의 화원’은 각각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됐다고 하는데,
오래 전(1990년)에 출간되긴 했어도 킹 특유의 오싹한 호러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주인공 주변에서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은 그 사건에서 헤어나고자 온 힘을 다해 분투하지만
수렁은 점점 깊어지고 조여드는 공포로 인해 극단적인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비행 중 사라진 승객과 승무원들, 그 와중에 살아남은 극소수에게 닥친 초자연적인 현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자들이 벌이는 생존경쟁 등을 다룬 ‘랭골리어’는
킹의 명작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과는 또 다른 느낌의 ‘시공간에 의한 공포’,
즉, 절대 현실이 아닐 것 같지만 명백히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낯선 시공간을 다룹니다.
눈에 보이지만 믿을 수 없는 시간과 풍경들, 귀로 들리지만 보이지 않는 파멸의 소음들은
살아남은 극소수 승객들을 아비규환으로 내몹니다.
‘비밀의 창, 비밀의 화원’은 권태와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실패한 결혼생활의 잔재 속에서 허우적대는 한 남자의 기이한 경험을 다룹니다.
느닷없이 찾아와 표절을 주장하는 미시시피 출신의 농부,
갑작스런 방화로 잿더미가 돼버린 전처와 살던 고풍스런 저택,
그리고 이혼 뒤 머물던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이은 살인사건 등
때론 ‘미저리’를, 때론 킹의 매력적인 단편들을 떠올리게 하는 알찬(?) 호러물입니다.
킹의 작품에서 ‘명쾌한 엔딩’을 찾는 것은 애초 기대해서도 안 될 일이고,
“그럼 왜 찝찝함을 견뎌내면서 비현설적인 호러를 일부러 찾아 읽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상대가 쉽게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기란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만의 독특한 호러 서사는 그만큼 독특한 중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재미보다는 ‘자학에 가까운 공포 즐기기’에 탐닉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조만간 ‘자정 4분 뒤 2’도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