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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평점 :
3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딸 수정을 잃은 우진.
깊은 슬픔에 빠져 간신히 삶을 지탱하던 그는 아내마저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만다.
우진은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절망 속에 주저앉지만 그때 그런 그를 붙드는 뭔가를 발견한다.
누군가 우진에게 남긴 편지 한 장, “진범은 따로 있다.”는 단 한 줄의 메모.
우진은 딸과 아내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풀기 위해 그 한마디를 붙들고 다시 일어난다.
가슴에 묻어둔 딸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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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진의 가족사는 기구하다 못해 모든 불행의 집합체처럼 보일 정도로 참담합니다.
부모는 10대였던 그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딸 수정은 16살의 나이에 참혹하게 살해당했고,
아내는 딸이 떠난 뒤 암까지 걸렸다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습니다.
트라우마는 말할 것도 없고 살아갈 의지 자체가 모조리 휘발된 인물입니다.
그런 우진에게 전달된 한 줄의 메모 - ‘(딸을 죽인) 진범은 따로 있다.’ - 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반드시 완수해야 할 그의 마지막 미션이 됐습니다.
메모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딸 수정을 살해한 범인들은 이미 체포된 바 있습니다.
우진은 범인들이 처벌은커녕 유유히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음을 알곤 격분하지만
결국 그들을 통해서만이 진범을 알아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집요하게 미행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수사권도, 정보력도 없는 평범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습니다.
그런 우진에게 한 소녀와의 운명 같은 만남이 다가오고,
그 만남은 전혀 예기치 못한 형태로 우진을 3년 전 딸의 죽음의 진실로 이끕니다.
독자들이 우진의 운명에 탄식하고 그의 미션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에게 날아든 비극이 단지 크고 무거워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하찮은 우연들이 우발적으로 겹쳐져 일어난, 너무나도 억울한 사연이기 때문입니다.
불과 10초만 어긋났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사소한 우연들이
먼지뭉치처럼 서서히 모여들어 참담한 비극들을 연이어 잉태하는 대목은
사람의 운명이란 게 얼마나 하찮게 결정되는지,
또, 그 ‘하찮은 결정’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신을 괴멸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사실, 페이지는 너무나도 잘 넘어가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천근만근 내려앉는 작품입니다.
작가 본인이 가족의 죽음을 겪은 뒤 마무리한 작품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 정서가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미덕임에도 불구하고,
때론 너무 강조된 나머지 ‘불편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대략 전체 분량의 1/3 정도는 바닥까지 붕괴된 우진의 감정을 집요하게 묘사하는데,
덕분에 긴장감이나 몰입도 모두 높아졌지만 불편함 역시 그에 비례했다고 할까요?
‘아린의 시선’ 이후 거의 3년 만에 읽은 서미애의 작품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미스터리로서의 덕목은 만끽한 반면 착잡한 여운이 꽤 오래 갈 것 같기도 합니다.
도시의 빛 공해에서 자유로운 캄캄한 밤하늘과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게 되는 날엔
우진과 그의 딸 수정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떠오를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