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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혹은 살인자 ㅣ 스토리콜렉터 62
지웨이란 지음, 김락준 옮김 / 북로드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주인공 캐릭터도 독특하고, 연쇄살인의 형태나 범행동기도 이색적인 중화권 미스터리입니다.
지독한 독설가, 폭주하는 돈키호테, 이기적인 천재 등을 연상시키는 괴짜 주인공 우청은
탐정이 되기 전에는 역설적이게도 소시오패스의 기질을 모두 갖춘 독특한 인물이었습니다.
공황장애로 인해 10대 이후 초조함과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그는
자신의 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과도한 자신감과 오만함을 얻게 됐고,
그것은 곧 가정은 물론 자신이 몸담은 학계와 연극계에 적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동료들을 맹비난한 치명적인 사건 이후에야 한 차례 깨달음을 얻은 그는
세상과 절연하기 위해 가정과 학교와 연극을 모두 버린 뒤
초라한 도심 주변부로 몸을 숨기곤 뜬금없는 사설탐정 노릇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꼬인 운명 탓에 그는 희대의 연쇄살인마로 오인 받곤 경찰에 체포됩니다.
그 후 직접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연쇄살인 미스터리이자 ‘우청의 성장기’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연쇄살인의 형태나 범행 동기 역시 영미권이나 일본 미스터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꽤 고급스러우면서도 다분히 형이상학적인 모양새를 띄고 있는데,
기존에 존재하던 어떤 유형의 연쇄살인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파면 팔수록 오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동기들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와 공감이 절반, 다소 난해함이 절반 정도였고,
아마 다른 독자들 역시 이 대목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할 뿐 탐정으로서의 덕목은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우청이지만,
그는 직감과 본능에 따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위험들을 하나씩 추리해냅니다.
물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위키디피아를 통해 탐정 공부도 병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각국의 연쇄살인의 역사나 스타일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하고,
왜 대만은 일본에 비해 연쇄살인마가 적을 수밖에 없는지도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별미와도 같은 흥미로운 책읽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앞서 이 작품이 우청의 성장기로 볼 수도 있다고 했는데,
공황장애에 이어 지독한 독설가이자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괴물이 됐던 그가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나 이웃들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역시
이 작품의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제야 세상과 화해한 우청이 이웃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진짜 탐정으로 성장까지 했으니
그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반부에 밝혀진 약간은 형이상학적인 범행동기와 방법만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우청의 캐릭터에 맞는 일상미스터리 또는 지극히 현실적인 연쇄살인 스토리였다면
아마 별 1개는 충분히 더 줄 수도 있었을 거란 아쉬움 외엔 대체로 만족스런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