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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들여 유족을 치유하는 ‘엘리시움 소사이어티’의 유능한 영매 에디는
죽은 아내 실비아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변호사 패트릭과 채널링을 시작한다.
다른 영매들과 달리 늘 고객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에디였지만,
패트릭과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급속도로 그에게 빠져들고 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과 실비아를 동일시하게 된 에디는 실비아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됐고,
완벽한 듯 보였던 패트릭 부부에게 벌어졌던 일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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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 실비아와 교감하고 싶어 영매(작품 속에서는 ‘바디’라 칭해집니다)를 찾은 남편,
자신이 소환한 실비아의 영혼과 동일시는 물론 그 남편에게 욕망을 느끼는 영매,
그리고 실비아의 ‘죽음의 진실’에 대한 추적...
핵심만 정리해놓고 보면 판타지, 스릴러, 심리물이 뒤섞인 무척 독특한 작품입니다.
문장과 단어들은 서사에 걸맞게 독자들을 몽롱한 상태로 이끌기 위해 선택됐고,
영매 에디와 죽은 아내 실비아는 한 몸인 듯 따로인 듯 모호하게 그려지고 있고,
심지어 이야기 역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어딘지조차 불분명하게 묘사되는 등
그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은, 마치 얇은 망사로 실체를 가려놓은 듯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건 ‘나’인가요? 아니면 ‘그녀’인가요?”라는 홍보카피대로
에디는 패트릭을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인지, 실비아의 영혼인지 스스로 혼란스럽습니다.
패트릭의 태도 역시 에디를 사랑하는 건지, 실비아의 영혼을 사랑하는 건지 불분명합니다.
이런 애매한 멜로에 ‘실비아의 죽음은 사고인가, 타살인가?’라는 의문이 끼어들고
동시에 에디가 일하는 ‘엘리시움 소사이어티’ 내의 미스터리가 가미됩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무척 구미가 당기는 작품이 맞는데,
소재에 걸맞은 애매모호한 문장들이 450여 페이지의 분량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보니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보통 심리물보다도 한참 느려질 수밖에 없고,
(느려도 캐릭터나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정렬이 되면 괜찮은데 개인적으론 좀 쉽지 않았네요.)
미스터리는 기대만큼 강렬하거나 큰 반전을 제공하지 않는데다,
결국 주요 인물들이 맞이하는 클라이맥스와 엔딩 역시 선명하지도, 개운치도 않았던 탓에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찜찜함이 꽤 많이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레베카’를 잇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고딕 스릴러”라는 카피가 있는데,
저 역시 읽으면서 무슨 이유에선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가 떠오르곤 했습니다만,
‘레베카’가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서사와 스토리가 뚜렷하게 각인된 작품이라면,
‘포제션’은 너무 두꺼운 필터를 씌워놓은 느낌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참신한 소재와 설정이 너무 아쉽게 다가왔던 작품입니다.
다만, 다른 분들의 서평을 보니 어쩌면 제 이해력이 부족했나 싶을 정도로 호평이 많더군요.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느리고 몽환적인 심리스릴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