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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의 머리 없는 시체
시라이시 가오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은 꽤 살벌하고 잔혹한 느낌을 주지만 스토리는 아주 얌전(?)합니다.
물론 실제로 ‘머리 없는 그녀의 시체’가 등장하고,
초반부터 주인공이 스스로 ‘그녀의 머리를 잘랐음’을 이실직고하는 것은 물론
도쿄 시부야 한복판의 번화가에 그녀의 잘린 머리를 유기하는 엽기적 장면이 묘사되지만
이후 주인공의 행적은 잔혹한 살인마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읽는 내내 ‘내가 지금 미스터리를 읽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작가는 ‘그녀의 머리를 자른 주인공’의 엉뚱한 면모를 주로 그려갑니다.
일본 유수의 종합상사의 직원인 시라이시는 말 그대로 똘끼 충만한 천재입니다.
최고경영진 앞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가 하면,
아무도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회사가 처한 난국을 타개하기도 합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뭇 여성들의 관심을 끄는가 하면,
야쿠자와 맞닥뜨린 위기에서는 갑자기 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반면, 초반에 등장한 ‘머리 없는 그녀의 시체’는 한동안 독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가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툭툭 나타나곤 합니다.
이러다 보니 그녀의 머리를 자른 시라이시의 정체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그가 과연 잔혹한 살인마인지 여부부터 의심스럽기 시작합니다.
특히 중반부는 똘끼와 매력이 충만한 한 샐러리 맨의 성장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머리 없는 그녀의 시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서 이 작품의 장르를 의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중반부를 한참 넘어서야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나름 개성도 있고 독특한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중반부의 모호한 서사 때문에
정작 힘을 받아야 할 지점에서 그러지 못하게 된 점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4차원을 넘어선 주인공의 캐릭터가 내내 거슬렸는데,
그와 ‘머리가 잘린 그녀’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이나 미스터리를 해결되는 대목에서도
지나치게 파격적이거나 4차원적인 언행 때문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기승전결이나 방향성 따윈 무시하고 정신없이 전개되는 B급 블랙미스터리의 느낌이랄까요?
이 작품과 거의 같은 시기에 후속작인 ‘모두가 나에게 탐정을 하라고 해’가 출간됐는데,
시라이시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당연히 찾아 읽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공미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후속작까지 이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을 대략 훑어보니 호평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꼭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