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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 이상한 소설뿐이지만,
나는 쓰는 동안 이런 일이 언젠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들은 매우 이상하지만, 내게는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충격적이고 기괴한 작품들 때문에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을 얻은 작가 본인의 말입니다.
표제작 ‘살인출산’을 포함, 수록된 네 작품 모두 작가 말대로 ‘정말 이상한 소설들’뿐입니다.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지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아주 가볍게 전복시킨 것은 물론,
잔혹하고 선정적인 장면들을 태연히 담담한 문장들로 그려낸 작품들을 읽다 보면
(저는 꽤 잘 맞았지만) 독자에 따라 극단적인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편의 수록작은 각각 출산, 연애, 결혼,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10명의 아이를 낳으면 합법적인 ‘살인권’을 얻게 되는 세상을 그린 ‘살인출산’,
세 사람의 사랑에서만이 쾌감과 정화의 느낌을 받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트리플’,
‘섹스 없는 결혼’을 영위하는 부부의 ‘섹스 없는 임신’ 도전기를 다룬 ‘청결한 결혼’,
의학의 발달로 자살만이 유일한 죽음의 방편이 된 세상을 그린 ‘여명’.
작품에 따라 작가의 도발적 태도는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지만,
일관되게 유지되는 관점은 비정상과 정상, 금기와 허용이 역전된 세상을 그린다는 점입니다.
출산은 더 이상 사랑과 결혼의 산물이 아니라 합법적인 살인권을 얻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며,
(남자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남자의 경우 인공자궁+제왕절개를 통해 출산을 하게 됩니다.)
그 외의 모든 불법적인 살인범들은 죽을 때까지 출산해야 하는 끔찍한 형벌을 받습니다.
또, 길거리 곳곳에서 세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키스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세상,
조금의 스킨십조차 없이 이뤄지는 무성(無性) 생식에 다름 아닌 ‘청결한’ 임신 과정,
자살을 원하는 사람에게 주민등본 발행하듯 손쉽게 사망허가서를 내주는 관공서와
고객이 원하는 자살 스타일에 맞는 치명적인 약을 친절하게 처방해주는 약국 등
독자들은 금기로 여겼거나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기괴한 세계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이 작품들을 통해 뭔가 소소한 깨달음이나 철학적 결론을 얻은 건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쓰인 작품도 아니거니와, 그런 목적으로 읽으면 더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고,
오히려 (작가의 바람대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언젠가 도래할 것이 분명한 암울한 디스토피아라면 모르겠지만,
작가가 그린 세계는 그와는 무관한 ‘특별하고 발칙한 상상력의 산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19금 작품이라 뭔가 자극적인 것을 기대한다면 100% 실패할 거라 자신합니다.^^)
화제에 올랐던 작가의 전작 ‘편의점 인간’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어쨌든 ‘크레이지 사야카’의 작품들은 계속 눈여겨 볼 생각입니다.
‘살인출산’ 이후 그녀의 작품들이 국내에 좀더 많이, 자주 소개되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