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트 브렌델 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트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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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음악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음악의 앞, 뒤, 안, 아래, 뒤에서 고요를 발견합니다.

많은 작품들은 고요로부터 음악적 형상을 빚어내고 고요 속으로 회귀하지요.

 

고요는 모든 음악회의 근간을 이루기도 합니다. 아니, 그래야만 하지요.

영어에는 listen=silent라는 흥미로운 글자놀이가 있습니다.

청취와 고요는 동일하다는 의미지요.(p.162)

 

 

고요가 S자로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이 아름다운 구절은 책의 맨 첫 머리에 쓰여졌을 것이다. 피아노의 거장 알프레트 브렌델이 말하길, 고요는 음악의 기본이라 하지 않은가! 모든 것이 기본으로부터 시작되고 기본으로부터 성장하니 악상기호도, 리듬도, 천재적인 작곡가의 이름들도 모두 고요를 앞세우고 뒤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태초의 기본이 어둠이었던 것을 상기해 보며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고요하게 이 책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알프레트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은 피아노에 관련된 그의 단상들을 알파벳 순으로 기록한 교본이요, 명상록이요, 잠언집이다. 단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매우 전문적인 부분도 있고 철학적인 부분도 눈에 뜨인다. 그러나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음악 전문가를 위한 심오한 책도, 클래식 입문자를 위한 길라잡이 책도 아닌 순수하게 피아노와 음악에 대해 고백하는 따스한 모노로그 이니까. 그 안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얻든, 피아노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든, 그것도 아니면 한 사람의 외길 인생에 매료되든, 모든 것은 당신의 몫이다.

 

모든 피아니스트가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렌델은 유독 섬세하고 다정하며 유머가 넘친다. 그리고 몇몇 일화를 통해서는 상당히 엉뚱하고 대담한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연주에 대한 신념에서도 잘 나타나며 당연히 글 솜씨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잘 알지 못하는 피아노의 세계라도 깊게 빨려 들어가고 청량한 감동에서 오는 미소와 신선한 충격에서 오는 폭소를 반복하게 된다.

 

나는 작은 음들이 등장하는 부분이 특성상 가벼운 리듬의 연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한 전자의 편에 서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자그마한 물방울 같은 짧은 음들을 한데 뒤엉키게 만들어 버리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드네요.(p.98 '작은 음'에서)

* 여기서 전자는 짧은 음들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연주자, 후자는 주요음을 더 중요시하는 연주자를 의미한다.

 

음향으로 변해야 비로소 음악이 숨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음악은 이미 기록되는 순간부터 살아있습니다. 다만 잠자고 있을 뿐이죠. 해석자는 잠자고 있는 음악을 깨워야 합니다. 좀 더 달콤하게 말하자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키스를 선사해야 합니다. (p.84 '해석1'에서)

 

한 번은 시카고에서 연주회를 할 때 이런 일이 있었지요. 내가 아주 작게 연주해야 하는 곡을 치다가 중간에 멈추고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나는 여러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여러분은 내 연주를 들을 수가 없겠군요." 그 말을 내뱉은 뒤로는 정말 아무도 기침을 하지 않았지요.(중략) P.S 유머러스한 곡에서는 웃어도 됩니다.(p.77-78 '기침'에서)

 

'기침'에 관한 글을 읽으며 깔깔 웃다가 문득 연주자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 음악에 대해 쓴 책들은 '청중으로서' 어떻게 음악을 감상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기에 우리는 늘 듣는 사람으로 나의 입장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브렌델은 연주자의 입장, 연주자의 다양한 견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의 생각까지 내보여 주기에 우리는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넓히게 된다. 영화로 말하자면, 그냥 영화의 내용을 보는 평범한 관객으로 감상할 때 느끼는 생각의 폭과 영화와 관련된 카메라 촬영 기법, 특수효과, 감독의 상황과 입장 등을 알고 볼 때의 생각의 폭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기침'에서는 단순히 연주회에 대한 청중의 예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연주장의 음향상태는 연주자의 음악과 청중으로부터의 소리가 상호적으로 작용하며 그런 음향상태에서 최적의 소리를 내기 위해 연주자가 얼마나 큰 긴장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브렌델은 최고의 피아니스트답게 악상기호나 운지법을 비롯 피아노의 모든 것을 세밀히 감지한다. 스타카토, 크레센도, 디미누엔도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악상 기호에서도 남다른 느낌과 노하우를 말하고 피아노 건반에 관해서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의아할 만큼 다채로운 터치를 꿰뚫고 있다.

 

우리는 피아노를 다양한 방식으로 - 건반으로부터 떨어지면서, 건반을 밀어 넣으며, 건반 안에서 밖으로 향하면서, 건반을 관통하며 - 연주할 수 있습니다. (p.89)

 

바로 이런 부분들이 피아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들이다. 건반을 연주하는 다양한 방식(떨어지면서, 밀어 넣으며 등등)에 대해 아무리 브렌델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해도 도대체 이 다양한 연주 방식이 어떤 다른 소리를 내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같은 '도'음을 건반으로부터 떨어져 치건, 건반을 밀어 넣으며 치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악상 기호나 주법, 운지법, 혹은 악보나 악곡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들에도 반드시 새겨듣고 생각할 것들이 있다. 소리를 내는 방식의 다채로움, 악상기호의 미묘한 강도와 시차, 그밖에 피아노곡들이 가지는 독자적인 개성과 디테일한 표현의 차이 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피아노에 대해 '감상'이라는 영역을 너머 피아노를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으로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다.

 

<피아노를 듣는 시간>은 피아노곡에 대한 이야기와 해석을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전문적인 조언을, 피아노에 관심이 있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피아노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사색과 경이로움을 전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피아노를 듣는 시간'의 의미는 피아노 그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한평생을 피아노 앞에서 살아온 한 사람이 쏟아내는 피아노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그토록 하나의 악기에 대해 섬세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펼친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피아노를 친구로 삼았고, 도전의 대상으로도 삼았으며, 피아노에서 배우고, 피아노와 교감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의 브렌델이라면 난 그저 피아노를 즐겼을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피아노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고군분투했음이 틀림 없다. 그래서 브렌델의 이야기에는 피아노에 대한 겸손과 경건함이 묻어난다.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에 대한 예우처럼, 끝없는 예술적 경지에 대한 찬미처럼. 지금까지 수많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어봤지만 브렌델처럼 음악과 같은 글로 피아노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 이는 없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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