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 수업 - 친절하고 재미있는 강의실 밖 건축 이야기 썬 시리즈 1
권선영 글.그림 / 컬처그라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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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엥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난 파리가 싫다. 파리는 내 일생에 유일하게 소매치기를 당한 곳이자 단 시간에 가장 많은 사기꾼들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이유가 개인적인 원한(?)때문만은 아니다. 파리는 도시로서도 정말이지 정이 붙지 않는 곳이다. 고흐와 같은 열정의 화가를 기대하고 몽마르뜨 언덕으로 올라가 보면 관광객들의 초상화로 돈을 버는 화가들만 즐비하고,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퐁피두센터, 개선문과 같은 명소들의 이름값이 너무 커 파리 자체의 고유성과 특성이 기를 펴지 못한다.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모를까 도시를 감상하기 위해 들른 사람들에겐 참 아쉬운 모습이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것은 유럽 여느 도시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파리는 자신의 참 모습을 쉽게 드러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을 읽다보니 파리에서의 좋은 기억 하나가 생각났다. 나도 썬처럼 파리를 헤메며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의 라 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을 가로질러 그 주변을 2시간 가량 걸었던 기억이다. 어쩌면 그 2시간이 명소로서의 파리에서 생활의 장(場)인 파리로 교차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던 단기 여행자의 유일한 행복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파리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는 건축물을 찾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썬을 보아서였을까? 책을 읽다보니 나도 파리에 대해 조금 더 관용적이 된 듯하다. 그리고 어느새 썬이 소개하는 건축물과 내가 가본 곳이 겹칠때면 추억을 더듬듯 설레기까지 했다.

 

위대한 건축물을 찾아 팍팍한 다리를 이끌고 순례하는 책들은 이미 많이 보아왔다. 모두 알만한 건축가들이 쓴 건축여행기라 생각도 아름다웠고 사진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발걸음과 함께 손걸음이 더해진 책이라 더욱 인상깊다. 발걸음이 열정이 향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의지라면 손걸음(스케치)은 열정을 내 것으로 담아내는 또하나의 의지다. 이렇게 눈으로 본 건축물을 순간의 셔터에 맞기지 않고 공들여 그려나감으로서 보는 이들도 건축물을 천천히 음미하고 마음으로 소화하도록 이끌어준다.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 오늘의 건축세계에 모태가 되는 근대건축물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초행자의 설렘과 호기심이 한껏 뭍어나서 좋다. 분명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건축에 대해 조금은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터이고 아직은 생소한 점이 많아 썬의 입장에 많은 공감을 하며 페이지를 넘겨갈 것이다. 그녀의 손걸음이 구석구석 가 닿은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보며 마치 자신도 스케치를 하듯 더 유심히 건물들을 바라볼 것이다. 사실 이 책은 건축순례에 자그마한 이야기를 붙여 재미를 더해주고 있는데,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는 설정도 그렇고, 그의 조언으로 건축물을 탐색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것에서도 다양한 건축물을 아우르는 과정에 어울리게 잘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다보면 건축을 이루는 여러가지 요소뿐만 아니라 짧게나마 아르누보로부터 지금까지의 건축사를 둘러볼 기회도 얻게 된다.

 

 

 

르 코르뷔지에의 가르침과 자기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건축의 공간과 빛, 재료 등을 살펴가는 썬의 스케치는 건축물의 특징과 주요 요점을 매우 잘 포착하고 있다. 그녀의 스케치만 봐도 건물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위주로 반영했기에 실물 사진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한다.


정성이 담뿍 담긴 스케치와 함께 파리의 건축물들을 살펴보는 즐거움은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몇 가지 불만스러운 점도 있다. 바로 중간중간 삽입된 파리의 명소 이야기이다.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진 이름들이 설명을 덧붙여 등장하는 순간 건축여행기로서 가진 이 책의 장점이 퇴색되는 듯하다. 여행 가이드북에서도 볼 수 있는 상세설명과 같은 이야기는 굳이 담지 않아도 이 책의 텍스트는 충분했다. 또한 건축의 색채에 대해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한 점도 의아하다. 건축에서의 색채는 빛과 함께 황홀감을 주고 보다 친숙하게 다다갈 수 있는 요소는 될 수 있어도 건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에는 꼽힌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빛에 관해 좀 더 의미있는 건축물들을 선택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건축과 소통하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책이었고, 파리에도 정붙일만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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