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비상시대 -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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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커다란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미래의 세상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인간의 의지가 스위치를 올린다 할지라도 얼마 후면 기계화된 세상을 움직여 줄 석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석유가 없다면 원시적인 톱니바퀴부터 최첨단의 정교한 부품들까지 단 한 바퀴도 굴러가지 않는다. 우리들의 세상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기계들이 아닌지라 고철덩어리가 자유의지로 움직여주길 기대할 수는 없다. 남은 것은 그저 멈춰서서 부식되고 녹슬 날을 기다리는 것 뿐. 앞으로 100년도 아니고, 50년도 아닌, 37년 후...지구상엔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러나 석유종말의 위기가 드러나고 비상 시스템을 가동할 시점까지 고려해 본다면 석유를 마음놓고 쓸 수 있는 날은 37년보다 훨씬 적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일상은 모든 것이 석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어떻게 수송되어 왔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나 옷을 입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는 동안 석유를 떠올리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처럼 생활과 밀접한 석유에 대해 우리는 어째서 무심한 것일까? 클레이 셰키가 인터넷 시대를 맞은 대중들의 잉여 시간을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논리로 풀어갔다면 석유에 대해서는 '멀어지면 달라진다'라는 논리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대량소비에 부합할 만한 산유국은 전 세계 국가 중 몇 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우리나라와 같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는 생산과 관리의 측면에서 한 발치 멀어진다. 풍성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산유국이라 할지라도 석유는 국가와 기업차원에서 관리되며 일반인이 제 집 앞마당에서 우물을 퍼올리 듯 마음대로 시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석유의 실태에 관해 멀어진다. 뿐만아니라 석유를 통해 생산되는 플라스틱, 섬유 등과 같은 제품들은 주변에 넘쳐나지만 화학공학의 공정과정을 거친 이후라 우리에게 석유로서 인식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형태의 석유는 이렇게 눈속임을 하며 또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석유의 보유, 생산, 관리, 제조, 응용 면에서 모두 멀어진 대중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한대로 여겨질 만큼 쉬지않고 공급되는 석유를 '소비'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맘 편히 석유를 소비하는 동안 석유를 가진 자들과 이에 관여된 자들만이 진실을 공유한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에릭 데이비스라는 학자는 '합의된 최면상태'라고 불렀는데, 위에서 언급한 '멀어지면 달라지는' 결과를 매우 정확히 말해 주는 듯하다. 석유 매장량에 대한 여러 학자들이나 기관의 수치 중 어떤 것이 진실일까? 석유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는 미래를 보장할 만큼 그 연구성과가 긍정적일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석유와 미래 에너지에 관한 낙관적인 견해와 회의적인 견해가 들려오지만 관련 직종의 종사자가 아닌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 집 앞의 우물과 저 먼 나라의 시추지와의 차이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이다.

 

낙관론과 회의론 중 그 어느 것도 확인할 길은 없으나 회의론의 입장인 <장기비상시대>의 주장 가운데는 몇 가지 주목할만 점들이 있다. 먼저 그동안 소비해 왔던 석유는 가장 얻어내기 쉽고 질이 좋은 액체 석유였지만 남은 석유는 얻어내기 어렵고 질 나쁜 액체 석유, 그리고 반고체 및 고체 상태인 석유라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는 시추작업에 드는 에너지와 퍼 올릴 수 있는 석유를 비교해 볼 때 차라리 시추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상황도 벌어진다. 다음으로는 석유소비율과 인구증가율이 만들어 내는 부정적 시너지 효과이다. 저자에 따르면 석유 소비가 정점을 지난 후(이미 70년대에 지났다) 남은 양은 매년 2~6퍼센트 정도씩 고갈되어갈 것인데, 그 사이에도 세계의 인구는 한동안 늘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농업에 있어서도 지구온난화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천연가스로 만든 비료나 석유로 만든 농약, 탄화수소를 동력으로 한 관계 덕분에 곡물 생산량을 250퍼센트나 증가시켰던 것을 생각해 보면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의 조력 없이 현상을 유지해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장기비상 시대에는 석유와 늘어난 인구 문제도 모자라 식량난까지 겪게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또한 저자의 시나리오처럼 석유 보유량에 따라 세계의 패권이 재배치되고 심지어 약탈전쟁까지 일어나게 된다면 미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무척 암담하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라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를 개발하고 그에 관련된 시스템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대체 에너지의 미래 역시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석유나 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석유나 가스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중략)...그런데 우리 시대의 많은 '환경주의자'나 '녹색 운동가'는 투입되는 에너지를 바꾸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석유나 가스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하는 미국 휴스턴의 그 많은 에어컨을 전부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중략)...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를 이용하여 계속해서 거대한 시스템을 거대한 규모로 운영하고 싶다는 염원이야 말로 우리가 태양광이나 풍력이나 수력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의 본질이다.(p.166)

 

이밖에도 합성연료, 중합체 해체(TDP), 바이오 매스, 영점 에너지(ZPE) 등과 같은 최신 기술의 연료 역시 성공적인 활용에 있어서는 불투명한 상태다. 대체에너지에 관한 주장에 저자의 동의하지 않는(혹은 동의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한창 휴대폰과 노트북의 시대를 예견하던 90년대 초반 무렵 물로 가는 자동차와 태양열 주택에 관한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현재 휴대폰과 노트북에 대한 예견은 그대로 재현된 반면 대체에너지의 활용은 재현은 커녕 크게 진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고, 대체 에너지에 대해 너무 낙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으며 <장기비상시대>를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석유 없는 '장기비상시대'를 대처할 방안으로 저자는 '규모축소화(downscaling)'를 제안한다. 말 그대로 석유를 투입해 대규모로 운영하던 모든 것들을 소규모로, 지역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미국의 교외도시에 대한 비판이 적잖이 등장하는데, 석유를 다량으로 소비하는 자동차 기반의 출퇴근과 생활 물자 수송, 도로건설의 면에서 현재 교외도시를 중심으로한 도시계획이 얼마나 미래에 부적합한 것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가 역설하는 소도시의 부활 또한 생태도시와 같은 맥락에서 깊이있게 고려해볼만한 견해이다. 현재 많은 도시에서 시도하고 있는 생태도시란 단지 환경오염이 적고 녹지가 많은 쾌적한 도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생태도시의 개념에는 지역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도시, 자생 가능한 도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이것이 소도시 규모로 추진될 경우 더욱 순조롭게 확산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장기비상시대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한다면 말이다.

 

<장기비상시대>는 석유에 관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석유 하나에 이렇게 많은 혜택과 문제점이 연관되어 있었는지 새삼 놀랄만큼,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사항들까지 다뤄나간다. 장기비상시대에 관한 저자의 비관적인 미래 시나리오는 차치하고라도 석유를 둘러싼 패권 다툼과 석유에 관련된 산업들의 전망, 그밖에 기후, 의학, 인구 등에 관한 면밀한 분석은 석유를 태우며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 세상을 실감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며, 최면에 걸린 듯 무의식적으로 석유를 소비하는 대중들에게 이제 깨어날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최면해제의 신호음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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