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리찌바 에필로그 -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지구를 살리는 창조적 도시혁명
박용남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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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전 혈거도시 판탈리카(Pantalica)를 바라보며 문득 뉴욕의 맨해튼을 떠올린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도열하듯 모여있는 개구부의 배치도 그렇지만 절벽 내부로 바위를 파내 수직동선까지 갖췄다는 사실에서 오늘날의 마천루와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장면에서 자연을 극복하려던 인간의 의지가 이기적이고 가학적인 욕망으로 변질된 증거를 목격한다. 도구의 인간이 만들어 낸 걸작, 인간지상주의의 인공낙원에는 더이상 자연이 가진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이제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대도시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규모나 밀도 면에서 메가시티(Mega City, 거대도시)에 가까와지고 있으며 도시를 향한 담론은 첨단의 메가시티 안에 어떻게 자연을 삽입하는가에 몰두하고 있다. 즉, 거대 인공물인 메가시티를 고수하면서도 자연까지 회복시키려는 두 마리 토끼잡기에 고심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도시 내의 녹지 조성이나 쾌적하고 아름다운 조경계획만으로는 생태도시로의 여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물론 생태도시에는 자연적으로 녹지가 많이 조성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 없이 나무만 심어대는 도시계획은 단지 '녹색분칠'에 불과할 뿐이다.

황폐한 도시가 생태도시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요소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습관과 경제 시스템의 변화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꾸리찌바 에필로그>의 주제도 바로 이러한 자생경제이다. 저자가 소개한 다양한 생태도시의 성공사례와 현황,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등은 현장 보고형 자료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경제성에 관한 진정한 의미를 뒷받침한다. 그동안 기울여 온 노력이 멋진 옷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면 이제는 내구성을 위해 한 올 한 올 직조해 가는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꾸리찌바 역시 지루하고 힘든 직조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제는 어엿이 주목받는 우수 생태도시로 떠올라 우리 삶에 다시 자연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생태도시 꾸리찌바의 비밀

꾸리찌바는 브라질 남부 빠라나 주(州)의 주도(州都)로 서울과 유사한 자연환경과 도시개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꾸리찌바를 주목하고 이 도시를 종종 시찰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유사성 때문이며, 현재 서울의 버스노선 계획 역시 꾸리찌바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꾸리찌바는 새로운 도시개념인 '창조도시'를 목표로 지속가능한 교통시스템, 하천의 친환경적 관리 및 녹지조성, 토건형 문화도시가 아닌 공동체형 문화도시라는 세가지 영역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는데, 이 세가지 영역을 추진해 간 동력을 유심히 살펴보면 놀랍게도 막대한 자본이나 첨단기술이 아니라 '유머'에 근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가 발전이라 부르는 작업을 역행하는 발상의 전환 또한 재미와 웃음을 신조로 하는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민 전체에 전달되 공동체로서 환경에 기여하는 기본적 자세를 만들어 갔으며 자연을 위해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솟아나게 했다. 환경계획의 명칭만 봐도 '쓰레기 아닌 쓰레기' 프로젝트처럼 독특한 유머가 담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재활용을 연상케하는 페트병 모양의 버스 정류장 역시 장난기 가득한 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생태도시란 결국 인간 본연의 가장 행복한 삶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유머'가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 사진설명(좌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 꾸리찌바시의 이과수강 풍경, 버스정류소, 거리의 악사, 곡물과 쓰레기를 교환하는 장면


큰 발자국 vs 작은 발자국

꾸리찌바가 생태도시를 이룰 수 있었던 원리는 단순하다. 그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기술에 의존하는 태도를 버린 것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작은 생태발자국'을 가진 '지속 가능한' 도시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비해 '큰 생태발자국'을 가진 우리의 토건 계획을 함께 언급하고 있는 점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특히 정부의 다른 환경정책에 대해서는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의견을 덧붙인데 반해 4대강 사업 만큼은 뚜렷하게 비판하고 있어 이 사업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뿐만아니라 개인적으로는 한강에 띄운 플로팅 아일랜드도 환경 차원에서 썩 내키지 않는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현재 서울은 도시의 관광수익과 관련된 이벤트성 프로젝트에 너무나 몰두하고 있는데, 청계천 복원도 사실상 야간 조명 아래서만 화려하지 자연스러웠던 옛 서울의 정취를 회복시켜주지는 못했다. 이렇게 모두 화려하고 거대한 사업에만 몰두하고 그것을 지탱해 나가고 있는 자원과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서울을 곧 테마파크에 지나지 않는 우스꽝스런 도시로 변모할 것이다. 따라서 <꾸리찌바 에필로그>에서 경고하는 '작은 생태발자국'의 중요성은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미래의 희망이다. 만일 이 교훈을 저버린다면 대표적인 녹색분칠의 메가시티요, 한국판 두바이라 불리는 송도 신도시의 실패를 또다시 맛볼 수 밖에 없다.

 * 사진설명(좌에서 우로) : 4대강 사업 현장, 서울 플로팅 아일랜드, 송도 신도시


생태도시와 사랑의 경제

아직 환경과 도시경제의 관계에 대해 대중적인 인식이 자리잡지 않은 상태이지만 저자의 역점은 지역공동체를 활성화 시키는 '사랑의 경제'에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미' 그것을 실행하고 있어 공동체 회원간의 교역활동이 적힌 가계부까지 책 속에 제시할 정도이다. 저자가 대전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밭 레츠(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와 지역화폐 '두루'가 바로 그것인데, 옛날 우리나라의 품앗이나 두레를 연상시키는 공동체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생태도시가 녹색분칠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바로 이러한 경제 시스템의 변혁이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통화가 도대체 환경과 무슨 상관인가 궁금하다면 경제학자 헤이즐 헨더슨의 '사랑의 경제'에 대해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산업사회의 총생산이 '어머니 자연' 위에 자리잡고 있고, 그것이 GNP나 GDP로 계산할 수 있는 공적영역의 층과 가정과 공동체 내에서 이뤄지는 사적영역의 층으로 구분되는 시스템이다. 지역통화는 바로 사적인 영역 내에 속하는, 어머니 자연과 밀접한 층이며 소소한 농작물을 키워 교역하거나 차를 함께 나눠쓰는 상부상조의 생활공동체를 이룬다. 이미 사랑의 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도시들을 보면서 결국 생태도시의 희망은 사람과 사랑의 회복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인공과 자연 사이에 쿠션처럼 존재해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전에 첨단기술을 사용해 자연을 보호하려던 관리자의 역할에 비해 훨씬 더 위대해 보인다.


감응의 건축에 대한 희망

꾸리찌바는 생태도시로 각광받고 있지만 모든 것이 다 완벽한 것은 아니다. 정책주도면에서의 비판도 있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점들도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을 솔직히 보여주었기에 우리가 생태도시로 출발하는 첫 걸음에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너무 이상적인 모델이 저 앞에 있다면 따라가기에 부담이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에게도 생태도시에 대한 좋은 개념이 있다. 건축가 고(故)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이 그것인데, 말 그대로 자연에 부합하고 응하는 건축을 뜻한다. 꾸리찌바의 폐광촌 오페라 극장을 보면서 이것이 정기용의 무주 공설운동장 프로젝트와 무척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단순한 철골구조와 철이 가진 속성을 활용해 우아한 곡선으로 구조물을 만들었고, 흰색 페인트는 주변의 녹음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경관을 자아낸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질 수 있지 않은가! '감응의 건축'과 맥을 같이하는 여러 도시전문가들과 건축가들의 목소리도 이전부터 환경 문제에 대해 저자와 비슷한 지적을 해왔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생태도시를 위해 개발의 속도를 줄이고 '작은 발자국'을 추진하는 일을 실행해도 좋을 것 같다. 단, 정부의 의지가 이에 보탬이 되어준다면 말이다. 이 책에는 특이하게도 생태도시의 지도자와 행정체계에 대한 분석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사소한 환경프로젝트부터 거시적인 윤곽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는 결과물들을 보면 수십년간 생태도시에 목숨 걸었던 저자의 노고에 무척이나 감사해진다.

* * 사진설명(좌에서 우로) : 꾸리찌바의 폐광촌 오페라하우스, 무주 공설운동장, 도시계획에 관한 건축가들의 제안(신문스크랩)


10년전 그의 책 제목을 보면 꾸리찌바는 '꿈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에필로그'가 '꿈의 도시'를 대신한다. 드디어 우리도 뭔가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리라는 의지이다. 언젠가 저자가 본문을 쓰는 날에는 찌를듯한 수직의 인공도시가 녹색 분칠을 벗고 생얼굴로 수평의 웃음을 씨익 펼치며 '한국 최초의 생태도시'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우리들의 행동하는 사랑 속에 있다.



** 삽입된 이미지 중 서울 플로팅 아일랜드, 무주 공설운동장, 도시계획에 관한 건축가들의 제안(신문스크랩)은 개인소장으로 본 도서에서 발췌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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