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 토토 The Collection 1
조은영 글.그림 / 보림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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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이지만 아직까지 경마장에 가본적은 없다. 일단 '경마장'하면 '도박'이 떠오르고,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마장엘 데려가라'라는 경고성 속설이 경계심을 가져왔던 까닭이다. 그래서 꼬마 소녀가 할아버지와 함께 경마장 나들이를 간다는 이 이야기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과연 부정적인 이미지의 경마장을 이 책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그리고 꼬마 소녀는 그 속에서 무엇을 바라볼까? 사뭇 진지해지고 긴장한 탓인지 책장을 넘기면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달려 토토!>는 말을 좋아하고 말 인형 토토를 극진히 아끼는 한 꼬마 소녀의 경마장 체험기이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 경마 경기가 끝날때 까지 소녀가 보고 겪고 생각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는다. 경마장에 대한 소녀의 첫 인상은 '아!'하고 탄성을 지를만큼 거대한 구름떼였나보다. 우승할 말을 잘 골라 한 몫 챙겨볼까하는 욕심꾸러기 검은 구름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욕심, 거친 마음, 삶의 고단함을 나타내려는 듯 각 사람들은 손가락에 검은 잉크를 뭍혀 꾹꾹 찍어 표현했다. 간혹 눈에 띄는 지문에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고유성이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겹쳐지고 또 겹쳐져 검은 흐름속에 사라지는 모습이 '군중'이라는 것의 의미를 잘 알려주는 듯하다. 북적이는 검은 구름떼를 헤치며 소녀의 시선이 이동한다. 줄 서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서 각 사람의 표정으로. 어딘지 모르게 경직되어있고 험악하고 초조한 사람들의 모습은 소녀에겐 생소하기만 하다. 특히 뭔가를 적거나 쓰거나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생각되나보다. 소녀는 이렇게 경마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거친 세상과 어른들의 모습을 엿본다.


경마장의 입구와는 달리 내부는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로 가득하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커다란 전광판, 말인형 토토와는 사뭇 다른 긴 다리의 늠름한 경주마, 그리고 소녀의 말대로 '땅콩'같고 '서커스'를 연상케 하는 기수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상기시킨다. 아마도 경마장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라면 소녀와 꼭 같은 마음으로 신이 나서 그림들을 둘러 볼 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하고 화려한 경기에는 말에 대한 사랑이 없다. 오직 소녀만이 아무도 말에게 당근을 주거나 쓰다듬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으로, 소녀는 사랑으로 우승말을 점쳐본다.


이제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울긋불긋 화려한 치장을 한 말들이 울타리 너머 일렬로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과연 어떤 말이 1등을 할까? 토토를 닮은 소녀의 말은 우승마가 되어줄까? 그러나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길 여유는 없다. 울타리 문처럼 양쪽으로 여는 책장을 펼치는 순간 말들이 와락 달려들면서 금새 경기장의 열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감격스런 아이디어였으며 덕분에 말들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출발의 모습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이빨을 꼭 깨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결승점을 향하는 말들과 사방으로 튀기는 흙. 힘찬 말발굽소리와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들릴 듯 경기장의 열기는 붉은 바탕으로 얼룩진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운데 있는 회색말은 아이들 말대로 '부다다다다' 달리는 것 같아 빙그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열광의 도가니 끝에 드디어 기다리던 결승점이 있다. '아!' 여기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맹렬하게 달리던 말들이 힘껏 결승점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맨 위쪽으로 사뿐히 등장하는 하얀 말! 토토를 닮은 하얀 말이다. 이제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아니라 싱그러운 초원이며 소녀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하얀 말은 결승점을 너머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듯하다. 이것은 소녀의 사랑을 담뿍 받은 말인형 토토가 보여주는 마법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토토와 같은 작은 말을 품고 있다. 그것은 험한 세상과 경쟁과 돈에 흔들릴 수 없는 꿈이며 초원으로 향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동력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순수한 꿈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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