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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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마치 이미지와 감각이 지배하는 거대한 테마파크와도 같다.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화려한 광고 포스터를 휘감은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부지런히 mp3와 게임에 감각을 몰입한 채 목적지까지의 시간을 향유한다. 북적거리는 도시의 한복판을 무심히 걷고 있어도 '맛보세요'와 '써보세요'라는 상냥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어 뜻하지 않은 다양한 체험이벤트를 제공하며, 도시 역시 시시때때로 행사를 벌여 때론 대형 스크린으로, 때론 불꽃놀이로 꿈과 환상의 감각제국을 재현한다. 뿐만 아니라 손안에 쥔 작은 모바일폰은 자신의 뜻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이미지와 감각의 결정체이다. 욕구를 느끼자마자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동영상이든 트위터든 즉각 접속되고, 화면 속에서 눈에 띄는 이미지는 포착 즉시 신경중추를 타고 전달된다.

이처럼 현란한 이미지와 감각의 일상 속에서 반대로 텍스트와 이성을 들춰낸다는 것은 매우 건조하고 지루한 작업처럼 느껴진다. 즉, 책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흥미롭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그 내용이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시(詩)'와 '철학'에 관한 것이라면 감탄보다는 한숨이 절로 나올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은 막막하기 그지없는 시와 철학을 함께 엮고 여기에 '즐거움'이라 덧붙이고 있으니 먼저 그 '즐거움'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이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온갖 물고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존재라면,
철학자는 그물로 끌어올린 물고기를 다시 확인하고 만져보는 사람입니다.(p.17)

저자가 설명하기를, 시란 시인이 경험한 물속이기에 가장 주관적인 것 같지만 누구나 그 물에 들어간다면 같은 경험을 하게되므로 가장 보편적일 수 있고, 철학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물이기에 가장 보편적이라 생각하지만 실상 철학자가 만든 특정한 그물(특정한 물고기를 위한)이므로 오히려 가장 주관적일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시와 철학, 보편과 주관이 결합한 시너지를 통해 낯선 세계에 빠져도 보고 실체들을 끌어내 확인할 수 있으니 한 세계의 진실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즐거움이 따르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이것이 저자가 가슴속에 품은 이성복의 글귀,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를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은 21쌍의 현대 시인과 철학자를 통해 우리의 무뎌진 감성(감각이 아닌)에 날을 세우고 허약해진 이성에 근육을 보탠다. 네그리와 박노해를 통해 민중 아닌 다중의 논리를, 아렌트와 김남주를 통해 사유는 곧 의무라는 판단을, 벤야민과 유하를 통해 자본주의 소비의 원리를, 푸코와 김수영을 통해 자발적 복종의 무서움을...이렇게 21개의 주제를 따라 차근차근 시와 철학의 교집합 세계에 빠져들다보면 인간의 본성과 욕망, 생과 사, 사회의 현상들과 타인과의 관계 등에 대해 새로이 눈뜨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눈은 더이상 감각에 이끌려가는 무의지적 시선이 아닌, 나와 타자를 포함한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의지적 시선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21쌍의 시인과 철학자 중 가장 특별한 한 쌍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바로 시인 김준태와 철학자 박동환인데, 다른 쌍들이 모두 우리 시인과 서양 철학자들로 구성된데 반해 이 쌍만은 우리 시인과 우리 철학자로 짝지워져 있다. 두 사람을 통해 풀어나가는 '도시 너머에서 발견한 희망', 그리고 '한국적 사유'라는 마지막 주제를 보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 단순한 철학 입문서나 에세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더불어 '철학적 시 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일깨우는 목적 의식이 발견된다. 이 부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건으로서의 광주'에 반해 '구조로서의 광주'가 아직 살아 있음과 도시 변두리에 씨를 심는 행동으로 희망을 말하는 시인의 의지가, 중국과 미국의 철학을 관망하고 모방만했던 제삼자에서 벗어나 우리 사유속에 흐르는 생명체의 근원적 논리를 되새기자는 철학자의 방향성이 매우 인상깊었던 장이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으로 대변되는 도시의 논리가 문명의 붕괴로 사라질지라도 우리의 집요한 생명력만은 살아남을 것이라 주장하는 박동환, 이와 연결되는 "흙과 서로의 몸 속에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으로 생명체 사이의 연결을 역설하는 김태준, 이 두 사람은 다시금 '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21번째의 시인과 철학자에 따르면, 우리의 도시는 여전히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이 전수해 준 문명으로 북적대고 있다. 그리고 맨 처음 언급한 이미지와 감각으로 가득한 세상도 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금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를 떠올리며 이 감각의 제국에 틈새를 만들고 씨앗을 심어야 한다. 우리의 생명력이 도시의 틈새에 심겨질 때 그 뿌리와 잎이 자라고 종국에는 은근한 힘으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균열을 일으킬 것이다. 그날은 우리가 틈새 속에 침잠하고 충분한 양분과 수분을 끌어모으는 시간 속에서 탄생할 것이며, 시와 철학은 양분과 수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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