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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수많은 지성인들이 있고 그 앞에 붙일 수식어 또한 다양하겠지만 '행동하는 지성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그것도 매우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누가 감히 전시(戰時)에 권력에 맞서 반전을 논하며, 누가 감히 기득권자에 맞서 약자의 편을 들까? 누가 감히...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포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까?
버트런드 러셀. 그는 철학, 사회학, 정치뿐만 아니라 과학, 교육, 예술, 종교에 이르는 방대한 지(知)의 힘을 동력으로 이념의 갈등을 떠나 이상 사회를 향해가는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백작출신으로서 순탄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투옥도 마다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서 행동했으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통해 그 의지를 멈추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또한 책상 앞에서 펼쳐나간 지(知)의 세계가 아니였다. 원제가 <사회 재건의 원칙>이었던 이 책은 세계 제1차 대전 중 러셀이 대중 앞에서 강연했던 원고를 모아 엮은 것으로 그의 반전과 사회재건에 대한 신념이 총 집결된 저술일뿐 아니라 무너져가는 종전(終戰)에 대한 희망에 회복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다만 반전론자라는 이유로 조국인 영국에서는 거절당해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러셀의 동의없이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라는 (다소 지엽적인) 제목이 붙게되었음에도 동시대 수많은 양심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전쟁 당시 국가권력의 압박에 저항하며 자신의 신념을 행동에 옮긴 용기를 기억해야 하며, 제목 그대로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이라는 부제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러셀은 먼저 전쟁을 옹호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욕구'와 '충동'을 대조하여 설명한다. 이는 '욕구'를 인간 행동의 원천으로 보았던 기존 정치철학의 미비한 점을 '충동'을 통해 풀어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욕구'란 이성에 의해 어떤 득이 된다고 판단한 뒤 취하는 행동이며, '충동'은 바람직한 결과에 상관없이 그저 본능에 따르는 행동이라 한다. 전쟁의 경우도 충동이 표출된 극한 사례로, 이는 오래전부터 기독교를 포함한 권력에 억압되왔던 충동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고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충동은 창조를 낳는 중요한 원동력이기에 억압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러셀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했으며, 이 책에서 교육에 대한 신념을 역설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권력에 순응하는 수동적 지성인만 육성해왔던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보다 인간 본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당부하는 5장은 오늘날 우리 교육이 참고해도 좋을만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이어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논하는 6장도 역시 오늘의 현실에 유효하게 적용된다.
비록 러셀이 교육과 여성문제를 포함해 사회 재건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해도 이 책에는 그의 무정부주의자적 성향과 무신론자적 성향이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2~3장에 걸친 '왜 사람들은 국가에 순종하는가?', '전쟁은 제도다'에서는 애국심에 깃든 종교적 성향을 비판하고 국가에 대한 희생(참전을 의미함)을 지지하는 행동을 우둔하게 묘사하며 매우 강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치안, 보건, 의무교육, 경제적 격차 해소와 같은 몇 가지를 국가의 권한으로 꼽아 과도한 권력을 경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주목할 것은 생디칼리즘(syndicalism)이다. 러셀이 사회재건의 방법으로 지지한 생디칼리즘은 '공장이나 사업체 등의 조직이 그 속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주의(p.47)'를 일컫는데, 이는 단독으로 시행될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협동조합의 문제점을 보완하며 그와 함께 병행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함께 사회주의의 폐단도 지적했던 러셀은 협동조합과 생디칼리즘을 통해 두가지의 장점을 모두 갖춘 경제적 공동체를 구상했으며 결론적으로 이러한 체계가 억압적인 현대 국가를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라 믿었다.
러셀이 제시한 사회재건의 원칙은 오늘날 우리의 사고체계로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면이 많다. 어쩌면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선뜻 실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같이 전쟁과 군사정권의 시대를 겪고 세계경제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비록 100년전 한 정치철학자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오는 울림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