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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ㅣ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평점 :
작년 이맘때쯤 책을 읽고 꼬박꼬박 기록하리라는 결심을 할때 우연히 알게된 <독서일기>의 장정일은 내게 퍽이나 인상깊은 독서가였다. 알베르토 망구엘, 요네하라 마리, 다치바나 타카시, 우리나라의 문학비평가 김현, 로쟈 이현우 등등 독서가로 이름난 사람들은 많지만 책과 독서에 관한 기이한 에피소드와 무려 7권이나 되는 <독서일기>의 전적을 가진 장정일은 단연 나를 사로잡았다. 아니, 좀 더 제대로 설명해보면, 독서를 결심할 당시 그의 <공부>라는 책을 통해 깨닫게 된 '독서의 목적'과 그것을 위해 실천해가는 그의 행적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공부>에서 장정일은 사회를 향한 자신의 방향과 주관을 뚜렷히 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책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던 그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더욱 친숙해지더니 이번에는 <독서일기> 8권에 해당하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으로 다시 돌아왔다. '독서일기'라는 제목을 가지고 60세까지 20권의 독서일기를 발간하려던 계획(나는 서문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매우 놀랐다)을 바꿔 책 제목에도, 내용에도 많은 변화를 주어 발간한 것이다. 이전 독서일기가 말그대로 '일기'라는 형식을 빈 개인적인 글들이었다면 이번에는 보다 나누는 글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독서로 다져진 자신의 생각들이 곳곳에 배어있는, 한마디로 하고싶은 소리 다 하는 글들이 눈에 띄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엄밀히 말해 순수 서평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기본으로 문단, 문화, 출판사 등에 대한 비판을 담았기에 칼럼같기도 하고, 문학 비평같은 면도 있으며, 때로는 두 세가지 책을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에 대해 초점을 모아간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는 그의 팬들이 기대했던 장정일만의 날선 글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베스트셀러였던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비평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분분했던 글이기에 유심히 읽어봤는데, 굳이 '병신인증'같은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가 싶지만 작가의 안목으로 작품의 구조와 내재된 의도를 뜯어본 평가였기에 비판을 위한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독서가 장정일의 모습을 담은 부분들도 눈에 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을 비롯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책은 죽었다> 등 일련의 서평을 통해 자신의 독서법을 집중적으로 피력하고 있으며, 다른 서평에서도 책을 만난 사연이나 아껴두고 보는 이유, 초판 개정판 비교에 대한 이야기를 등장시키며 독서가로서의 시시콜콜하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독서법'을 표방하며 한 권을 통째로 동원한 책들보다 이 짤막한 서평들이 훨씬 마음에 든다.
장정일은 '책은 현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늘 강조한다. 그리고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로 난 길이다.(p.11)"라는 그의 말에 매우 동의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소말리아의 '여성할례'나 인도의 '불가촉천민'의 실상, 이슬람 이민자의 '히잡논쟁'같은 더 넓은 세계의 현실을 이 책에서 만나고 그가 선행하여 선 가장자리 사잇길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 정말 뜻깊었다. 하지만 또다른 저서 <공부>에서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하고' 그 다음에 '당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을 읽어줄 젊은 독자들이...'여기서부터는 내가 더 해봐야지'하고 발심(發心)하기를 바랄 뿐이다"라던 그의 말을 떠올리며 여기서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시금 진지해진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독서가 장정일이 어떤 책을 감명깊게 읽었고, 어떤 책을 좋지않게 평가했는가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혹은 그의 정치색이 어떻고 비판들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보다는, 중학교때부터 다져온 독서력으로 역사, 사회, 경제,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현실'에 무언가 일조하겠다는 신념을 펼친 지식인의 선례로 여기고 독서의 목적을 돌아보는 계기로 사용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