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코드 - 우리를 소비하게 만드는 '필요' 그 이상의 무엇
롭 워커 지음, 김미옥 옮김 / 비즈니스맵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현대의 소비자들은 매우 영리하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충동구매나 과시형 소비, 과소비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광고의 홍수에 면역이 된듯 나름대로의 가치관와 노하우를 발휘하여 구매유혹의 함정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덕분에 마케터들을 더욱 분주해진다. 가격과 품질이 더이상 소구점으로 작용하지 않는 시장의 현실 속에서 기발한 디자인과 광고, 각종 차별화와 틈새시장의 공략을 시도해 보지만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 히트상품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않다.

그런데 <욕망의 코드>를 보면 위와같은 생각에 전환을 가져오는 몇가지 묘한 풍경들이 발견된다. 무슨 음료인지, 왜 사야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별다른 광고조차 하지않고 열렸던 레드불의 카이트보드(익스트림 스포츠의 일종) 이벤트, 절대로 캐릭터에 특성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헬로키티, 사양길에 있던 브랜드라 광고를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저소득층의 지지로 매출이 급상승했던 맥주 PBR(팝스트 블루리본), 본업도 부업도 아닌데다 보수없이 소정의 선물만 받으면서도 열심히 입소문을 내고 보고서까지 작성하는 매직피플 등등. 이들은 기존 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들이며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머케팅'이라 부른다. 

'모호한murky'과 '마케팅marketing'의 합성어인 머케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일상생활과 브랜딩 채널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고도로 세련된 마케터들의 전략에 관한 것이다.(p.15)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의 일부이다. 머케팅이 의미하는 것 가운데 나머지 절반은 대화의 소비자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소비자와 소비되는 물건 사이의 관계, 즉 내가 머케팅이라 일컫는 관계는...허심탄회한 공모관계로 발전하고 있다.(p.16~17)


따라서 머케팅에서는 종전의 매스마케팅 시절에 성행했던 상의하달식 수동적인 구매방식을 뛰어넘어 하의상달의 구매, 즉 소비자의 개성과 의지를 반영되는 방식의 시장이 성립된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언급한 PBR맥주인데, 저가인 탓에 학생들이나 노동자계층에서 인기를 얻고 급기야는 '저항브랜드'로 대표되며 오히려 소비자가 기업을 살린 사례가 되었다. 저자는 이것을 '풀뿌리의 힘'이라 표현했는데, 이처럼 소비자가 의지를 가지고 마케팅에 참여하는 것은 '소비자 시대'의 참 의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시사하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끌어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머케팅의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비밀이 소비자가 가진 '욕망의 코드'에 머케팅이 부합하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는 누구나 개인으로 느끼기를 원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느끼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욕망 코드다. (p.49)

헬로키티에게는 처음부터 부여된 키티만의 스토리가 없다. 이에 더해 입도 없다. 그래서 무표정해 보이며,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개인적으로 헬로키티에 대해 '키티는 음침해'라는 표현까지 들어봤다.) 즉, 여기에는 투사가능성이 있어 한 소비자의 키티는 그가 부여한 개인적인 스토리를 갖는다. 반면, PBR맥주나 힙합패션, 매직피플은 집단의 일부가 되고픈 욕구, 특히 주류집단이 아닌 다양하고 특별한 집단의 일부가 되고자하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러한 주류집단에 반하는 흐름은 특히 청소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미래의 청소년집단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머케팅의 사례를 만들어갈지 사뭇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욕망의 코드>는 머케팅에서 풀뿌리의 힘을 '발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진정한 윤리적 소비의 의미에 '적용'하는데까지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 . 현재 우리는 '녹색혁명', '지속가능성' 등을 표방하는 제품의 구매에 윤리적 소비의 의미를 두지만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일부 주동적인 소비자들의 목소리일 뿐이며, 한편으로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보상으로 사치품 소비가 늘어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대신 머케팅 시대의 진정한 풀뿌리의 힘, 즉 소비자 혁명의 징후로서 DIY 자영업체와 같은 수공예 운동을 제시한다.

오늘날 미국에서 소규모 자영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운동이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했다.
손수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고 대중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정치적이다.(p.331)


물론 수공예 운동은 아직 대량생산과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대책이 없다. 이점은 분명 약점이고 실망스러운점이긴 하지만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대화와 소통을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무척 흥미롭고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통해 그동안 최선이라 생각했던 합리적인 소비를 넘어 윤리적인 소비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된 점이 매우 뜻깊었다.

향후 머케팅이 어떻게 성숙해갈지, 또 우리는 그러한 시장 속에서 소비자로만 남을 것인지 풀뿌리의 힘을 발휘하는 생산자, 혹은 입소문 에이전트가 될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우리를 둘러싼 물건들의 의미와 가치가 전적으로 우리로부터 흘러나간 것이지 우리가 그들을 통해 부여받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을 되새기며, 현대 소비자문화를 올바로 향유할 정체성의 힘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린 다음에야 세상이 우리를 규정할 것이다.
브랜드가 우리를 규정했던 것과 달리 우리가 브랜드를 규정했다.(p.358)
- 척 디(퍼블릭에너미/리드 싱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