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라는 사람은 사실 미학자라기 보다는 진보논객으로서 많이 접했다. 그의 주 전공이 미학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예술,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본인도 그러한 면이 아쉽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은 미학 교수인데 사람들이 미학에 대해서는 안물어보고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만 물어본다며. 그래서 한 번 읽고싶었다. 그가 말하는 미학에 대해서. 워낙 전투적으로 토론을 하시는 분이라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진 않지만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이 이미 널리 읽힌 것을 보면 정치분야에서만 탁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당연하게도.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현실 정치에서도 그러한 식견을 보인다니, 대단한 사람이다. 전혀 상반된 분야에 대한 지식 혹은 대립되는 능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니.
미술과 예술에 대한 책을 보는 가장 큰 동기는 `나도 그 대단하다는 미술 작품 보고 감동 좀 받아보자`라는 것이다. 루브르와 오르세를 대충 훑어보고 왔지만 큰 느낌을 받지는 못했었다. 아마 시간을 더 투자했어도 감동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래서 다음에 미술관을 갈 때는 좀 아는 척도 하고 감동도 격하게 받아보고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읽어보려고 하고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도 읽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책 한 두 권 읽고 미술 작품을 본다고 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 이래서 대단하다고 하는 거구나`하는 정도의 인식만이라도 가져갈 수 있길 바란다. 시험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 책을 핀 것을 보면 완독을 할지도 의심되긴 하지만.
5쪽
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 책이 미처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책장을 넘기다 말았다.
28쪽
에른스트 곰브리치에 따르면, 사물을 지각할 때 우리는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의 도식`을 적용하게된다. 말하자면 시지각 자체가 벌써 개념적 사유라는색안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은 `개념적 사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을 `보이는 대로`그릴 수있었다.
29쪽
농경은 인간이 이미 변화무쌍한 현상들 속에서 어떤 `운행 질서`를 발견했음을 의미한다.
30쪽
점점 더 개념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럴수록 사물을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묘사하게 되었다.
33쪽
예술의 기원. 유희 기원설에 따르면, 벽화나 집단무 같은 원시 예술은 `남아도는 에너지의 방출 통로`다.
노동 기원설. 주술 기원설.
36쪽
그들이 예술이라는 쓸모없는 짓거리에 귀중한 시간과 정열을 투자한 것은, `가상`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신앙 때문이었다.
38쪽
그 시대에 동굴 벽화는 원시인들이 경험에서 얻은 동물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수렵무를 통해 그들은 사냥의 절차와 테크닉을 반복 학습할 수 있었다. 또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극의 구조는 사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격렬한 동작은 사냥에 필요한 신체 단련을 대신해주었다.
그때는 예술이 주술이고, 주술이 예술이었다.
64쪽
이집트 예술의 묘사 방식은 ‘정면성의 원리’를 따른다.
사물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측면에서 묘사하여, 되도록 사물의 형태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것. 우연적이며 일시적인 인물의 동작이나 자세는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인물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였다. 그들의 예술은 하나의 시각적 추상인 셈.
68쪽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부활하려면 그것이 깃들일 육체가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 미라 탄생의 이유이다.
73쪽
고전기에 이르기까지 아르케익 시기는 ‘엄격함’과 딱딱함’의 특징을 가짐.
고전기 시기는 ‘숭고양식’이라고 부름. 이 시대 조각가들의 주요 관심은 ‘위대함’에 있었다고 한다.
콘트라포스토 : 비대칭이면서도 몸 전체는 균형을 이룬 자세
81쪽
일반적으로 그리스 걸작품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자세나 표정에 나타난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다.
빙켈만의 시대구분
1. 고(古)양식 페이디아스 이전(아르케익) 엄격함, 딱딱함
2. 숭고양식 페이디아스와 동시대인 미론, 폴리클레이토스 숭고함, 딱딱함
3. 미의양식 프락시텔레스, 뤼시포스 아펠레스 우미
4. 모방양식 그 뒤 예술의 멸망까지(로마) 보잘 것 없음
87쪽
플라톤 : 결국 예술이란 가상의 가상, 그림자의 그림자란 얘기 아닌가? 이렇게 예술은 진리의 세계에서 두 단계나 떨어져 있는 거라네. 알겠나?
91쪽
한번 생각해보게. 미의 이데아가 현상 세계에서 나타날 때,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겠나? 그건 바로 정확한 ‘척도와 비례’야. 사실 미를 보는 건 감각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 오히려 수학적 직관에 가까운 거지.
99쪽
우리는 예술을 정서나 감수성 따위와 관련짓지만,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예술은 테크네, 곧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이었다. 따라서 당시엔 회화나 조각뿐만 아니라 합리적 제작규칙을 가진 모든 활동, 즉 의자나 침대를 만드는 수공 활동과 학문까지도 예술(테크네)로 간주했다. 한편 시는 음악과 무용, 연극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시는 예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왜? 시는 ‘영감’또는 ‘광기’의 산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써서, 시에도 합리적인 제작 규칙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비로소 시는 어두운 마술의 세계에서 벗어나 테크네가 될 수 있었다.
101쪽
조형예술의 맑고 투명한 정신인 아폴론과, 깊고 어두운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정신 디오니소스! 그리스 예술, 아니 인류의 모든 예술이 서로 대립하는 이 두 가지 충동으로 말미암아 발전했다.
104쪽
그런데 디오니소스제의 광란의 분위기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왜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정신 나간 듯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춤추는가? 이 황홀한 도취는 모든 개인이 다시 집단으로 돌아가는 경험에서 나온다. 개체들을 서로 가르던 선이 깨지고, 그들이 너나 없이 집단 속에 녹아 있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른다. 디오니소스적 황홀함이 바로 여기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110쪽
본성? 그건 대개 ‘난 모르겠다’는 말의 점잖은 표현이지.
111쪽
아리스토텔레스 : 본디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는 법입니다. 너무 작아서 부분들의 비례를 알아볼 수 없거나, 너무 커서 전체의 통일성을 한눈에 볼 수 없는 건 아름다울 수 없죠.
-책의 약 1/3지점을 읽어나가고 있는 지금, 확실히 알겠는 건 이 책을 다 읽는다고 해서 미술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질 거 같진 않다. 달라지려나?
113쪽
아리스 : 비극은 플롯, 성격, 사상, 대사, 노래와 장면이라는 6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플롯이 비극의 생명이자 영혼이죠.
114쪽
아리스 : 훌륭한 비극이 되려면,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악행이 아니라 악의 없는 중대한 ‘과오’의 대가로 불행해져야 합니다. 가엾다는 감정은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기고, 두려운 감정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기니까요.
플롯은 급전과 발견과 파토스로 이루어져있다.
급전이란 사태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
파토스는 감정. 발견은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것. 발견이 다시 급전을 동반할 때 최고의 효과를 거둔다.
급격한 사태의 변경으로 주인공이 파토스를 느끼고 이에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것이 플롯에서 중요하다는 건가?
116쪽
비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주인공의 운명이 급전되기 전까지를 ‘갈등’이라하고, 그 뒤를 ‘해결’이라 하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풀기 위해 갑자기 신을 등장시켜 실타래처럼 얽힌 갈등을 해결해주는 것. ‘기계 장치를 타고 내려오는 신’이라는 뜻. 난데없는 우연적 사건으로 극을 해결하는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작품을 욕할 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119쪽
조국 테베의 사람들이여
이 이가 오이디푸스다
그이야말로 저 유명한
죽음의 수수께끼를 풀고
권세 이를 데 없던 사람
온 장안의 누구나 그 행운을 부러워했으나
아아, 이젠 저토록 격렬한 풍파에 묻히고 말았도다
그러니 사람으로 태어난 몸은 조심스럽게
마지막 날 보기를 기다려라
아무 괴로움도 당하지 않고
세상 저편에 이르기 전엔
이 세상 누구도 행복하다 부르지 말아라
중세 예술의 특징은 감각세계의 ‘가상’을 포기하고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125쪽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아름다워야 한다.
플로티노스가 보기에 미는 균제(symemmtria)가 아니다. 균제란 원래 부분들 사이의 수적 관계를 말한다. 하지만 찬란한 햇빛, 황금의 빛깔 등은 부분을 갖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일한 속성이다. 인간의 행위, 영혼이나 정신도 마찬가지다. 부분이 없으면 당연히 부분들 사이의 비례나 균제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대상들은 분명히 아름답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수적’관계가 아니라 ‘질적’성질에 있는 거다. 비례나 균제 자체는 미가 아니다. 미란 바로 그 속에서 빛나는 어떤 질적인 것, 굳이 말하자면 어떤 정신적인 빛이다. 여기서 플로티노스의 이론은 ‘빛의 상징주의’가 되는데, 이는 뒷날 중세 미학과 예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27쪽
예술 자체 -> 예술가 내면의 삼상 -> 예술 작품
플로티노스의 독창성은, 이렇게 예술가가 사물의 외관을 모방하지 않고 내면의 형상에 따라 창작을 한다고 본 점에 있다.
플로티노스는 예술과 미를 밀접히 관련지어, ‘예술미’란 개념에 도달했다. 미와 예술이 밀접하다는 건 지금은 상식이지만, 고대인들은 이상하게도 예술과 미를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했다.
133쪽
처음 발생했을 당시 기독교 교리는 명확한 이론 체계를 갖고 잇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초기의 교부들은 고대의 전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눈에 보이는 세계 저편 피안의 세계(이데아 세계)가 있다고 가르친 플라톤주의는 쉽게 기독교와 융합할 수 있었다. 몇 백 년이나 떨어진 플라톤주의를 당대의 기독교에 전해준 건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였다.
135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추도 아름다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 효과다. 추는 비록 그 자체론 아름답지 않아도 전체적으론 미를 한층 복잡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요인이 된다.
이 생각은 사실 변신론이다. 곧, 신을 변호하는 논리다.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은 부분적으로 추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전체적으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라는 것.
137쪽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있던 형상을 실현한 거다. 결국 예술이란 예술가의 발명, 그의 상상력의 산물이란 얘기다.
중세 예술의 임무는 감각적인 것으로 ‘초월적 진리’를 표현하는 데 있었다. 물론 감각적 매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초감각적인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알레고리다. 중세 회화에 등장하는 양은 그냥 양이 아니라, 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알레고리에서 눈에 보이는 형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 알레고리는 글자 그대로 ‘다른 걸 말하는’거니까. 중요한 건 이 가시적 형체가 말하는 ‘다른 것’,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의 신성함이다.
142쪽
중세 예술은 애초부터 고대 예술과 전혀 다른 ‘정신’에 뿌리박고 있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중세 예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보다 영적인 세계를 담으려는 경향. 이건 비잔틴부터 후기 고딕까지 중세 예술 전체에 흐르는 기본 특징이다.
143쪽
서유럽 건축은 11세기에 이르러 로마네스크라는 독자적인 건축 양식 속에 닻을 내린다. 바실리카식 성당엔 고대식의 기둥이 사용되었지만, 로마네스크 성당에선 아치 공법이 사용된다.
145쪽
중세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고딕이라는 위대한 양식을 낳는다. 이 변화의 토대는 늑재 궁륭(ribvault)이라는 기술이었다. 둥근 아치는 꽅이 뾰족한 첨두형 아치로 바뀌고, 덕분에 건물은 더욱더 날씬해진다. 건물 내부의 두꺼운 벽이 사라지고 건물이 하늘 높이 치솟다 보니, 건물 내부에 빛을 받아들이는 부분도 넓어진다. 이 채광층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진다.
152쪽
자연 모방이란 관념에서 해방된 탓으로, 중세 회화는 대상이 가진 원래의 형태와 색채에서 과감히 벗어나 ‘형태와 색채의 자유로운 구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한 형체로 ‘정신’의 계기를 강조하고, 밝은 빛과 화려한 색채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비스런 ‘관조’를 표현하는 게 바로 중세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154쪽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한 거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물 속엔 창조의 질서가 들어 있다. 따라서 신이 지으신 세계를 묘사하는 건, 곧 창조의 아름다움을 파악하는 걸 의미한다. 고딕 자연주의는 이런 사회적, 철학적 분위기에서 나왔다.
174쪽
아퀴나스는 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미란 ‘보아서 즐거운 것’이다.”
외부의 형상과 내부의 형상이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부드럽게 맞아떨어질 때, 미적 쾌감이 생긴다는 얘기다. ‘대상을 주관에 동화시키는 것’
아퀴나스가 ‘즐거움’을 얘기할 때, 그건 감각적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적 즐거움에 가까운 거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미를 ‘재인식의 쾌감’과 연결하였다. ‘미적 주지주의’
179쪽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좇아 예술을 모방으로 본다. 예술은 신의 예지에 의해 창조된 질서정연한 자연을 인식함으로써 성립하는 모방이다. 따라서 예술에는 자연의 질서가 반영된다. 또 예술은 자연에서 표현 수단과 방법을 빌려온다. 이건 대단한 변화다. 왜냐하면 중세는 ‘자연의 모방’이란 생각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은 자연의 ‘내적’원리에 따라 ‘창조’를 하셨지만, 예술가는 자연의 ‘외적’ 원리에 따라 ‘모방’을 할 뿐이다.
198쪽
다 비치는 엄격한 자연 모방을 주장하지만, 미켈란젤로는 내면의 형상에 따른 창조를 주장한다.
201쪽
다방면에 능한 보편인(universal man)이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 이상의 실현이었다.
210쪽
다 빈치는 예술엔 반드시 따라야 할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믿었지만, 미켈란젤로가 보기에 그런 보편적 규칙이란 없다.
미에 보편적 법칙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 바로크나 로코코 예술과 관련이 있다. 미켈란젤로 이미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에 살고 있었다.
다 빈치는 예술의 목적을 외부세계의 과학적 인식에 두었다. 미켈란젤로에게서 예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미의 창조’에 있었다.
227쪽
17세기 예술을 바로크 예술이라 부른다. 바로크 예술이란 고전주의와 대립되는 루벤스풍의 역동적이며 격정적인 그림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17세기 회화 전체를 가르킨다.
230쪽
바로크 예술은 르네상스나 고전주의와 매우 다르다. 윤곽은 뚜렷하지 않고, 묘사는 격정적이며, 구도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대립되는 특징
1. 선적인 것에서 회화적인 것으로
2. 평면에서 깊이로
3. 닫힌 형식에서 열린 형식으로
4. 다양성에서 단일성으로
5. 명료성에서 불명료성으로
241쪽
어떤 게 아름다운지 잘 알면서도, 정작 그게 아름다운 이유를 대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미의 관념은 ‘혼연’하다. 미에는 항상 ‘알 수 없는 그 무엇(Je ne sais quoi)’이 남기 마련이니까.
바움가르텐은 감성을 일종의 이성으로, 즉 ‘유사 이성’으로 본다. 비록 미와 예술은 어디까지나 감성의 일이지만, 이 감성 자체가 일종의 불완전한 이성이라는 것.
그 결과 미와 예술은 일종의 인식이 된다. 그건 감성을 이용한 인식, 말하자면 감성적 인식이다.
미와 예술이 일종의 하위 인식 능력이 되었다. 이 저급한 인식에도 어떤 법칙이 있어, 그걸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미학’이다. 미학은 ‘감성적 인식의 학’이며, 저차(低次)의 논리학이다.
242쪽
이 저차의 논리학은 이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246쪽
바움가르텐은 감성을 인식으로 간주함으로써 감성을 복권시켰다. 바움가르텐의 가장 큰 업적은 예술이 가진 이 ‘인식적 기능’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했다는 데 있다. 예술을 ‘진리’의 전달 매체로 보는 근대 ‘진리 미학’의 전통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어 헤겔에게서 완성된다. 하지만 예술을 ‘인식’으로 보는 건 어딘가 문제가 있다. 과연 우리는 뭔가를 인식하려고 시를 읽는가?
여기서 또 하나의 노선이 나온다. 이 노선은 영국의 취미론에서 시작되어 칸트에서 완성된다. 이들에 따르면, 미는 ‘인식’이 아니라 ‘쾌감’이며, 예술의 본질은 ‘진리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있다. 예술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상상력의 유희’이며, 예술가는 고정된 법칙을 따르지 않고 ‘영감’에 따라 자유로이 창작을 한다. 이런 생각을 ‘형식미학’이라 부르기로 하자.
253쪽
소크라테스는 미를 ‘유용성’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겐 화려한 황금 방패보다 튼튼한 강철 방패 쪽이 더 아름다웠다. 플라토은 ‘선’의 이데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인은 미와 선을 아예 하나로 합쳐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 그게 바로 ‘칼로카가티아’다. 한편 근대인들은 미를 ‘인식’이라고 생각했다. 다 빈치에게 예술은 과학이었고, 비움가르텐에게는 감성적 인식이었다. 하지만 칸트가 보기에 이건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그림을 읽는 데 필요한 학문을 도상학이라 한다.
254쪽
어떤 사물이 아름답다고 할 때, 그건 그 사물이 모양이나 색과 함께 ‘미’라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게 맘에 든다’는 얘기일 뿐이다. 취미 판단은 한갓 ‘주관’의 쾌, 불쾌에 대한 판단일 뿐, ‘대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
미는 선이 아니며 유용성도 아니다. 취미 판단은 이런 불순한 동기에 좌우되면 안 된다. 고상한 도덕적 동기든, 비열한 이기적 동기든 간에 말이다. 칸트는 취미 판단의 이런 특성을 멋있게 ‘미적 무관심성’이라고 불렀다.
미적 판단은 ‘단칭 판단’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장미 ‘일반’이 아니라, 항상 어떤 구체적인 장미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거니까.
255쪽
어던 게 아름답냐라고 판정할 기준은 없지만 취미 판단에 보편타당성이 없다면, 피카소의 작품과 이발소 그림을 구별할 기준도 없어져버린다. 따라서 취미 판단은 동시에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관에 달려 있다는 미적 판단이 어떻게 보편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다. 취미 판단의 보편성은 결국 ‘주관적’ 보편타당성이다. 말하자면 그건 인간 ‘주관’의 구조가 똑 같은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262쪽
칸트는 예술을 천재의 소산으로 봄으로써 그는 고전주의 미학과 대립되는 새로운 미학에 길을 열어준다. 바로 ‘낭만주의 미학’이다. 예술가는 더 이상 규칙을 습득하여 자연을 모방하는 ‘장인’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내는 ‘천재’다.
276쪽
운율과 리듬을 사용하는 법은 가르쳐도 은유를 만드는 법은 가르칠 수 없다. 하지만 시에서 은유를 빼면 뭐가 남겠나?
합리적인 규칙에 따른 시는 뮤즈가 내린 광기 앞에선 언제나 빛을 잃고 마는 거라네.
281쪽
자연은 결국 절대자의 다른 모습인 셈이다.
282쪽
인간의 정신은 발전하여 마침내 사실은 자연이 이념의 다른 모습이며, 이 모든 게 절대자가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이때 스스로 자연이 되었던 이념은 원래의 자기로 복귀한다. 이렇게 자신을 인식하려고 스스로 다른 게 되었다가 다시 자기한테 돌아오는 ‘정신의 오디세이’, 이게 바로 우주의 역사다.
307쪽
과거에 사람들은 ‘무엇이 아름답냐’고 물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언제 아름답냐’고 묻는다.
테오도르 립스. ‘감정이입설’. 이는 현대의 주관주의적 미 이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이 이론데 따르면, 아름다움이란 ‘객관화한 자기 향수’다. 말하자면 우리가 우리 감정을 자연 속에 집어넣은 게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거다. 자연의 아름다운 사물은 실은 우리가 그 속에 집어넣은 우리 감정이다.
-미에 대한 판단이 주관과 객관의 그 어딘가에 위치해버렸기 때문에 예술과 사기의 차이의 구분 역시 쉽지 않다.
326쪽
이제까지 대이론이 붕괴하면서 미가 주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제 미는 우리 머리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인간이 어떤 ‘특수한’ 태도나 지각을 취하면, 세상 모든 게 다 아름답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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