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쪽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냥 뒷산이겠지만, 이방인인 나에게는 충분한 모험.

: 여행이랑 그런 것. 우리는 이방인이 되면 동네사람이 되고 싶고, 동네사람이 되면 다시 이방인이 되고 싶어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고 하는가보다. 여행도, 사람도, 직업도.

49쪽
하루 종일 성실하게 쌓아온 피로다.

150쪽
뒤늦게 깜빡거리는 오래된 형광등처럼 슬금슬금 엄습해오는 이 느낌.

152쪽
난,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졌다.

: 1년에 한 번 오는 생일은 1월 1일과 함께 시간이 꿋꿋하게 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날이면서 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을만한 것을 받거나 주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 생일에 가지고 싶은 물건이 떠오르지 않은 진 오래되었다. 딱히 가지고 싶은 게 없다. 이미 필요한 것은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갖는 것은 필요가 아니라 욕망에 따른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생산을 부추기고 소비를 일으켜 경제가 돌아간다지만 그 안에 평안함과 행복, 만족은 없다. 그 흐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어야만 좀 더 만족할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려면 생산을 그만둘 수 있어야 하거나 소비를 그만둘 수 있어야 하는데, 부자가 되거나 수도자가 되거나 해야 한다. 둘 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58쪽
고독의 쓴 맛도 너무 많이 마시면 탈이 난다.

202쪽
그래 인생이란 거, 무슨 일이 있어도, 왕왕 주위에서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전진하는 거다. 전진.

240쪽
오핸로 순례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순례를 하는 이유는 평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242쪽
시코쿠 길 위의 바람과 볕이 우리를 숙성시켜주리라.

246쪽
오다이시상의 수수께끼의 20대를 상상해본다. 불충한 생각이지만, 그 훌륭한 오다이시상도 험악한 산중의 컴컴하고 쓸쓸한 동굴에서 혼자서 수행하는 동안은 `아, 씨, 내 인생 왜 이래.` 하며 우울한 20대를 보내지 않았을까.

257쪽
지금 내게 불가능한 것은 시도하지 말자. 대신 불가능한 것을, 해볼 만한 것으로 바꾸자. 못하는 건 남의 도움을 받자.
하지만 나는 반드시 정상까지 올라간다.

단 한 걸음도 내딛지 않고 편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놓고 책을 다 읽으니 나도 시코쿠를 한 바퀴 돌고 온 것 같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아쉬움이 드는 것은 저자의 여행이 끝난 것처럼 그녀를 따랐던 나의 여행도 같이 끝나기 때문인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형과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온 뒤, 다시는 사서 고생하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귀한 시간, 돈, 체력을 내고 고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고생 끝에 오는 성취감이나 만족감 따위를 알기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는 것과 시간이 좀 지나면 그래도 좋았더라라며 왜곡되어 기억에 남는 것을 알기에.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 하면 좋을 일들, 이 때하는 게 왠지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은 왠만하면 다 해보고 싶다. 고생고생하며 동아리 활동도 해봤고,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배낭여행도 다녀왔다. 아르바이트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게 좀 창피하김 하지만 일은 뭐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거니까. 뭘 더 해봐야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시코쿠는 아니더라도, 혼자 비바람 맞으며 성숙해지는 순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국토대장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인생을 바꾸는 시코쿠 순례길!`이라거나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곳!` 따위의 제목이나 글이 아니어서 좋았다.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라는 제목도 너무 좋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내용도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느낌으로 읽은 여행기다. 나중에 저자가 찍은 다큐멘터리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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