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오프 상하이
신동흔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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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을 가기 전에, 특히 상해 여행을 가기 전에 괜히 허접스러운 가이드북을 읽고 가는 것보다 이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상하이를 더 자세하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는 상하이에서 1년 밖에 생활하지 않았지만 기자 특유의 관찰력으로 상하이의 그 슬프고 화려한 역사에 대해 편안하고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괜찮았다. 한편으론, 딱 1년 정도 상하이에서 자세히 관찰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가면 볼 수 있는 만큼의 내용만이 담겨 있다는 느낌도 받긴 하지만 그 정도 개론 수준의 지식만으로도 여행자에게는 가이드북만 가지고 상하이를 방문하는 사람들보다는 상하이를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2010년에 나온 책이라 이미 6년이 지났고 중국 같이 고속성장을 하는 나라에서 6년은 다른 나라에서 한 세대가 바뀌는 것만큼 변화가 크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낡게 느껴지진 않았다. 누군가 상하이 여행을 간다면 100배 즐기기 시리즈 상하이 편과 이 책을 추천하겠다.

저자는 상하이 사람들의 서비스 의식이 낮음을 지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나도 분명 처음에 상하이에서 생활할 때는 기본적인 손님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도 없는 저발전 국가의 한계가 그대로 나오는구나라고 느꼈는데 나중엔 감정노동으로 고통받지 않고 손님에게 무릎 꿇어가며 뺨 맞지 않고 오히려 손님과 대등한 위치에서 지나치게 굽신거리지 않는 모습이 나는 편했다. 선진 국가들의 과도한 친절은 사실 그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겐 감정노동이고 고통이며 그걸 받는 사람에겐 부담이다. 누군가는 그걸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39쪽
수력 발전이 서로 높이가 다른 두 지점을 지나가는 물의 낙하운동에서 에너지를 얻듯이, 현재 중국은 바로 이 동부와 서부의 `격차`가 중국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자원이 되고 있다.

45쪽
사실상 농민들은 땅에 `묶여` 있어야 했는데, 이들은 중국인들의 먹을거리를 위해 농업생산력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60쪽
다르게 생각하면 중국 기층 민중에게는 지배자가 왕조에서 공산당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황제 푸이와 마오쩌둥이 함께 있는 사진에 누군가 ˝구 황제와 신 황제˝라고 주석을 달아놨던 것이 생각난다.

61쪽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

:19, 20세기에 이 문구가 가졌을 울림이 느껴질 것만 같다.

72쪽
`당 지도자 전용 신문`은 관영 통신사인 신화통신에서 주로 만든다고 한다.

: 13억의 중국은 그럼 시진핑을 비롯한 상무위원들과 공산당 정치위원들이 아니라 이 `당 지도자 전용 신문`을 만드는 신화통신 기자와 주필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인가. `당 지도자 전용 신문`을 만드는 최고 책임자의 힘은 도대체 얼마나 강할까.

73쪽
우마오 당은 글을 올릴 때 오 마오를 지급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인터넷에서 정부나 공산당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운영하는 `우마오당`

: 우리나라로 치면 십알단이나 국정원 같은 건가.

91쪽
어떤 이는 이런 상황을 `경제성장`이라는 `조증`과 정치사회적 무력감이라는 `울증`이 만나 사회적으로 `조울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일본학자 다카하라 모토아키)

117쪽
상하이의 택시는 브랜드가 여러 종류다. 가장 서비스가 좋은 것은 하늘색의 `따중˝이다. 그 다음으로 초록색의 `바스`, 지은 갈색의 `지엔장` 등의 택시가 있다.

121쪽
1990년대 초반까지도 중국은 나라에서 정해준 `단위`에 속해 정해진 일을 해왔고, 그때의 습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단위 사회`였던 중국은 한 번 단위에 배정되면 다른 단위로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한번 밥그릇을 받고 나면 깨지지 않는 `철밥통`이었던 것이다. 완전한 종신고용 상태에서 해고나 전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실적이 낮아도 해고당할 일이 없는 대신 아무리 실적이 높아도 임금 상승은 없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보면, 중국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나 상인들로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친절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129쪽
계획경제 시절 중국인에게 가장 난감했던 것은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모든 가정이 배급표를 받아 식료품을 마련하던 시절, 집안 식구 수대로 정해진 양만큼의 쌀, 고기, 밀가루, 계란 등의 물자 배급표가 지급됐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 `입`이 하나라도 늘면 무척 곤란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집에서 사다 놓은 계란이나 고기(채소는 배급표에 관계없이 양껏 살 수 있었다고 한다)를 다 써버리고 나면 나중에 자기들이 먹을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손님이 오면 집 근처 식당으로 나가 외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132쪽
`중국인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33쪽
쩨쩨하게 몇백 원 깎자고 낯선 이국땅에서 그랬느냐고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흥정을 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르고 돌아설 때 상인들의 그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지 않은 이상,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35쪽
옛날 전국시대의 어느 나라 왕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신하의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꾀를 냈다.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간신을 죽여준 자에게 황금 1000량을 상으로 내릴 예정이라는 포고를 전국에 붙인 것. 그러자 네 사람이 찾아와 서로 자기가 한 일이라고 나섰다. 왕이 그들에게 누가 진범인지 모르겠으니 황금을 어떻게 할까 물어보자 네 사람은 한 사람에게 이백오십 량씩 나눠달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어서 얼바이우들을 끌어다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얼바이우는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됐다고 한다.

: 얼바이우가 왜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유래가 있었구나. 사실 2000년 전에 있던 말이 전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는 게 의심쩍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하나 해소되었다.

137쪽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기질의 사람들과 물건을 하나 살 때마다 협상을 벌여야 하니 쇼핑은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한두 번은 흥정을 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흥정에 성공해서 괜찮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사서 쾌재를 부르기도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정말 지친다.

142쪽
향수란 결국, 어떤 장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닐까, 고향에 대한 향수도 결국은 유년에 대한 향수라는 점에서 `돌아갈 수 없음`, 시간의 비가역성을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감정일 것이다.

: 나 역시 상하이가 내가 살았던 도시 중 두 번째로 긴 시간을 지냈던 곳이기에 향수를 느끼곤 하는데 이는 상하이란 도시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시절 상하이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향수인 것 같다. 교환학생 시절만큼은 뒤처진다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어린 시절에 나 느꼈을 법하게 매일이 자유로웠으니.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쓸려가는 파도에 몸을 싣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무얼 하지 않더라도 항상 압박을 받고 있다. 그 시절이 그리고 상하이를 다시 가고 싶은가 보다.

149쪽
두웨셩을 비롯한 암흑가의 보스들이 밤을 지배했던 곳, 1원짜리 인력거가 길을 가득 메우고, 창녀와 노름꾼, 아편쟁이, 댄스홀을 드나드는 바람난 남녀가 거닐었던 곳이 지금은 상하이에서 가장 큰 서점을 비롯해, 학습지 전문 서점, 외국인 전용 서점, 기술 전문 서점 등이 밀접한 거리로 변신해 있었다. (푸저우루)

152쪽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 지주, 귀족 계급의 상당수는 상하이로 흘러들었다. 이중 상당수 러시아 여성들은 상하이에서 서유럽인들의 현지처나, 술집 여급, 댄서 등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76쪽
어쩌면 이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 남녀의 연애나 섹스관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192쪽
˝잠옷패션은 80년대 시민들의 거주지가 비좁고 인구 밀도가 높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풍습˝

196쪽
이 책도 상하이에서 유독 `잠옷 패션`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상하이 사람들의 천성 때문이라는 해석을 붙여놓고 있다. 잘 때 값비싼 잠옷을 입고 잘 정도의 돈은 있다는 표시라는 것.
잠옷은 적어도 상하이에서는 하나의 `기호`이자 `상징`이었던 것이다.

198쪽
롱탕은 100여 년 전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찾아 들어온 외지 출신 중국인들이 살던 집과 골목 형태를 말한다.

220쪽
화장실 칸막이가 낮은 것도 어떻게 보면 `사적 공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였다.

: 중국에서 지내고 여행하면서 다른 건 다 적응해도 화장실만큼은 정말 적응할 수가 없다. 왜 도대체 문이 없으며 문이 있어도 닫지 않는 것인가. 제발 앞사람의 용변을 흐르게 해서 내 아래로 보내지 말란 말이다.

235쪽
일본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 사이의 한중 우호 협력에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 했다.

: 중국에서 택시를 타는 경우, 기사분이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면 열에 일곱, 여덟은 일본놈(日本鬼)을 욕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제국주의 일본의 폭압적인 식민통치의 경험을 공유하며 공감할 수 있다는 점과 중국어를 써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도 그 자리에 없는 일본을 욕하는 것에 기꺼이 동참했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자 우리나라 택시에서 앞뒤 없이 정치인들 욕하시는 기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피곤해져서 아예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척하게 되었다. 요즘엔 중국인들이 식민지배와 난징 대학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일본과 일본 기업에 불매운동 수준을 넘어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무서운 느낌이 든다. 혹여나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동아시아의 군비 확산이 전쟁으로 치닫을 경우 보복 학살이 일어나진 않을까 싶어서.
교환학생 시절 같은 반의 일본인 (여)학생이 혼자 어디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239쪽
내부의 적보다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은 수천 년 전부터 제국을 통치해온 권력자들이 애용해온 방법이기도 하다.

: 북한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남한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계속 불어넣는 것은 지속적인 국지적 도발에 그치겠지만 중국이 자신들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는 순간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263쪽
만양 중국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진다면 노골적으로 주변 국가에 간섭할지도 모를 일이다.

: 만약이라니, 이건 혹시나 모를 일이 아니라 자명하다. 중국이 더 강해지면 아마 미국이 전 세계의 경찰이자 깡패로 돌아다닌 것보다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우리 역사를 살펴봐도 중국이 우리나라 위에서 무슨 행패를 부렸는지 다 알 수 있지 않나.

중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민족주의는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중산층의 정치적 각성과 주권의식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항일의 역사나 주변국에 대한 `지도책임`을 강조하는 등 오히려 부정적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있다.

264쪽
결국 한 곳에서 억눌리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다른 한 쪽이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가끔씩 `과격한` 양태의 민족주의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과거의` 사회주의자들에겐 민족주의가 훌륭한 `대체 이념`이 되어주고 있다.

265쪽
독일 역시 게르만 민족의 화려한 과거와 민족의 우수성을 찾아서 빠져들다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267쪽
중화민족이라는 말이 있지만, 중화라는 것은 특정한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 대륙에서 살아왔던 이들이 주변 국가에 대해 보인 일종의 `태도`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하다.

: 사실 중화라는 개념은 계속 확대되어 왔고 중국 땅의 패권과 다름 아니게 사용되었다. 원나라나 청나라 모두 중화였던 것을 보면 중화라는 개념은 민족적인 구분도 아니고 문화적인 구분도 아니다. 그냥 중국 땅을 기반으로 가장 강력한 패권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가져가는 명패나 훈장 같은 것이다.

269쪽
현재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대국이 되었지만, 덩치만 커져버린 아이처럼 아직 자신들의 경제수준에 맞는 정치적인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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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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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읽었던 김예슬 씨의 선언을 2016년 졸업하는 이때에 다시 읽는다. 2010년엔 갓 대학에 입학해서 약간은 흥분된 상태에서 신입생의 특권을 누리며 학교의 주인공인양 캠퍼스를 헤집고 다닐 때 저쪽에선 대학을 거부하다니 괜히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찬물을 뒤집어쓰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대학의 의미와 대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내 시간과 노력과 삶을 다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고 이렇게 그냥 졸업해버렸다. 사실 고민은 했다. 김예슬 씨처럼 치열하진 못했더라도 6년의 시간 동안 충분히 고민했고 답을 찾지 못했고 용기는 없었다. 사실 고민 끝에 결론은 회의주의로 빠져버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나 인정하고 싶은 진리라고 생각하는 회의주의로. 모든 가치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점점 더 정치적으로는 감시 당하고 경제적으로는 종속 당하고 사회적으로는 차별 당하고 있다. 쓸모없는 정보의 쓰레기가 넘쳐나자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정작 중요한 정보들은 통제 당하고 있다. 모든 일은 내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널려 있는 건 비정규직 자리뿐이며 태생적 계급은 없어졌지만 소득, 성, 직업, 인종으로 구분되어 차별은 만연하고 서로에 대한 공격성은 날이 갈수록 거칠어진다. 형식적 자유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착각하며 의미 없는 성공을 추구하고 책임 없는 패배에 좌절한다.

이 책을 읽는 순간에도 나는 왜 대학교 3학년이 지나 졸업을 할 때까지 이런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까 하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으니, 뭐가 되었든 성취를 이루고 그를 통해 유명세를 얻거나 돈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사라지지가 않는다.

2010년을 살던 청년 김예슬 씨의 외침을 들으니 각 시대의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에 저항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다른 시대를 살아간 청년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한용운의 조선 독립의 서, 서울대 문리과 대학 학생회에서 쓴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을`,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고려대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손아람 작가의 `망국선언문`까지.
한용운은 일제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에 저항했고 서울대 문리과 학생회는 이승만 독재체제에 항거했고 유시민은 군부독재를 거부했다.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제와 독재, 군부 폭력의 시대가 끝이 나고 청년들은 무엇을 이야기했던가. 고려대에 걸렸던 `안녕들 하십니까`와 김예슬 씨의 선언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사회에서 진정한 목적 없이 자신들의 물질적 성공만을 위해 경쟁하는 세태를 비판했고 2016년 새해가 밝으면서 손아람작가가 기고한 망국선언문에서는 헬조선의 실태를 고발하고 변화를 촉구했다. 한용운이 조선 독립의 서를 썼던 일제강점기 보다 더 돌아가 조선, 그것도 불타 없어지길 바라는 헬조선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본제국이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뚜렷한 독재자도 없고 이제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아 모든 행복과 불행이 다 투표를 한 시민들과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으로 떠넘겨졌다. 적이 누군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무엇과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저 자들은 국민의 반이 지지하는 세력이다. 해체하여 없애버려야 할 것 같은 대기업 재벌은 그 지배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우리가 인생을 바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중산층은 몰락하는 시대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허리를 튼튼하게 하자고 주장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는 정규직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려 질주하기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어 죽어버릴 것 같기에. 경제는 성장해도 여유는 자리할 곳이 없고 민주화가 되어도 연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젠 대학교마저 졸업해버려 사회비판이고 뭐고 일단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진 못할지언정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도 제대로 들어보자. 진실로 무엇을 바라는지.

김예슬 씨가 단순히 대자보만 걸어놓고 그대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여 대기업에 입사했다면 감동이 덜했을 것이지만 이 사람은 학교를 나와버렸고 지금은 나눔문화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다던 그의 선언에 따라 그는 생각한 것을 말했고 심지어 행동하기까지 했다. 대단하다!

김예슬 씨가 그의 선언대로 끝까지 살아내주길, 그렇게 희망이자 목표이자 본보기로 존재해주길. 폭력적인 바람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서양의 사상가들에게만 그 크고 단순한 깨달음을 받은 것인가.

46쪽
인간성과 꿈과 자기다움이 살아 있어서는 기업의 이윤창출에 쓸모 있는 부품이 되지 않는다.

47쪽
국가야말로 일정한 봉급을 보장받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 기업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 맞지 않는가?

48쪽
너는 ˝반기업 정서˝와 ˝반시장 정서˝에 물들었다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당신들은 ˝반인간 정서˝와 ˝반사회 정서˝가 너무 심하게 물든 것이 아닌가? 자연이 죽어가는 곳에 비즈니스는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사회 공동체가 해체되는 곳에 시장이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성이 무너지는 곳에 기업인들은 살아남을 수 없지 않은가.

: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내 사업을 일구고 기업을 세워 큰 돈을 벌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인간성을 제물로 바쳐가며 수익을 내야 한다면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돈을 제물로 바쳐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면 모를까 인간을 제물로 바쳐 돈을 바라고 싶진 않다.

54쪽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나는 자원이 아니다!

56쪽
날 때부터 온전한 인간이었던 내가 왜 초등, 중등, 고등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 인간은 다른 이유 없이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며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자. 숫자와 자격증과 사회에서 찍은 낙인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그러한 믿음이 흐려져버린다. 그러나 잊어버리지 말자. 존재만으로 존엄하다. 타인도 나도.

57쪽
내 인생의 1/4를 빨아들여 온 대학, 국가, 시장이라는 억압의 3각 동맹은 나머지 내 인생의 3/4까지 좌우하고 있다.

59쪽
참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 먼저 그 삶을 살아내면서, 거기에 꼭 필요한 돈만을 버는 것이 아니다. 일단 돈부터 벌고 봐야 하는 것이다.

: 참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 대학교를 들어오지 않고 일단 갈수 있는 한 가장 좋은 대학을 가려 하고, 참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고르는 것이 아닌, 일단 연봉을 많이 주고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가 놓고 보는 것이고, 돈으로 기껏 한다는 게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여행을 다니는 데 쓸 뿐이지만 일단 많이 벌어놓고 보려 하는 것. 나는 어디에 있고 `왜`는 어디에 있나.
버킷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죽어야 후회하지 않을지 파악해보려고. 그 리스트에 오른 일들 중에 대부분은 돈이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돈이 필요한 일들이 아니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들이었고 자격증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열정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그런 것들이 필요했다.

60쪽
육체노동은 `천민`들의 짓인 양 경시하는 사회 인식이 부추겨지고 있는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61쪽
대학, 국가, 시장으로부터 학습된 두려움은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모든 상상력과 용기를 잠식해왔다.

: 획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상상력을 제한시킨다는 것이다. 이 트랙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이 트랙 밖을 상상할 수도 없다.

71쪽
내가 접해온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 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 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77쪽
우리는 코리아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류의 꼭대기 층에 올라 서 있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과 꿈을 착취하고 있는 내 삶의 기반을, 가난한 나라 자원과 생태계를 갉아먹으며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살아가고 있는 G20 국가 코리아에 속해있는 대학생 신분인 나를 생각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엄습하곤 했다.

80쪽
대학을 나오지 않고 주류적으로 살지 않아도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다른 삶이 존중되는 사회적 가치를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82쫄
나는 대중성과 현실성의 이름으로 나의 문제 제기와 실천을 하향평준화시키는 실용주의, 중도주의, 연대주의에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84쪽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그만 생각하기, 행동하기! 디금 바로 살아가기!

:어느 시인의 말대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모두 초등학교에서 이미 다 배운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아직도 배우고 있으며 가끔 생각하고 거의 행동하지 않는다. 행동하자.

87쪽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88쪽
우리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스스로 겪고 만나고 헤매고 상처받고 저항하고 사랑한 만큼 만들어진다.

89쪽
삶은 너무 과소한데 지식은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91쪽
가슴 뛰는 것도 경쟁이 된 것일까?

: 아, 정말로 가슴이 뛰는 것뿐만이 아니라 열정, 도전의식, 꿈이라는 것들도 경쟁이 되고 스펙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학벌과 자격증, 외국어와 해외 경험에 더해 더 열정적이고 더 도전의식이 있고 높은 꿈을 가진 사람을, 그러한 열정과 도전의식과 꿈을 바탕으로 자기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온 사람에게 직업을 주는 시대가 되면서 남들보다 열정이 뜨겁지 않음에 도전의식의 희박함에 꿈의 단출함에 패배감까지 느끼고 있다.

105쪽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107쪽
나보다 싸보이는 사람들 앞에 우쭐하고, 나보다 비싼 자들 앞에 주눅 드는 나였다. 이렇게 돈으로 저울 달아지는 이것이 나란 말인가?

108쪽
어떻게 꿈이 직업일 수 있는가? 정말 어떻게 직업이 꿈일 수 있는가!

110쪽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 비교를 하다가 끝에 가서 빌 게이츠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비교를 포기했다.

111쪽
나 자신을 먼저 찾고 나의 본성으로 직업을 선택해 가겠다고 결심하자. 꿈은 직업이 아니다. 직업은 꿈이 아니다!
: 이제 막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난데, KOTRA 공고가 떴다며 살펴보고 있다.

115쪽
하지만 나는 안다. 생각할 틈도, 혼란을 겪을 틈도 없이 거짓 희망의 북소리에 맞춰 앞만 보고 진군하는 것이 훨씬 괴로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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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8-2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집불통 남경연의 상하이에서 본전뽑기
남경연 지음 / 고려원북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상하이 여행 계획을 짜는데 참고하려고 읽어봤으나 내용이 많이 부실하다. 책 날개엔 저자가 피곤할 정도로 깐깐한 사람이라며 이 정도로 깐깐한 사람이 만든 가이드북이면 믿을 만하다고 했지만 너무 깐깐한 나머지 출판사 사람들이 빡쳐서 책은 대충 만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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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저 홀로 흠 없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음이 사실인지 선택적 기록과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임진왜란 때에 전장에선 이순신 조정에선 유성룡, 그리고 의병들. 그들만이 우국하고 충정하였구나.
소하 덕에 한신이 제 능력을 펼 수 있었던 것처럼 이순신도 유성룡이 아니었다면 어찌 조선의 수군을 이끌 수 있었을까.

유성룡이란 사람을 단지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개판이던 조정에 유일하게 능력과 인품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나보다.

후에 징비록을 읽어보아야겠다. 이순신 만큼이나 유성룡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 우리의 역사는 왜 항상 이리 비극일까.

˝너희들이 평일에는 나라의 녹만 도적질해 먹다가 나라 일을 그르치더니, 이제 백성들을 이렇게 속인단 말이냐?˝

188쪽
한 사람의 잘못이지만 일은 천하의 평화와 관계되었으니 진실로 통분하고 애석한 일이다.

191쪽
미국의 사학자 헐버트는 한국의 4대 발명품으로 금속활자, 거북선, 한글, 적교를 꼽았는데, 적교가 바로 유성룡이 만든 임진강 부교다.

237쪽
모택동의 16자결 -- 적이 공격하면 우리는 후퇴하고, 적이 주둔해 있으면 우리는 교란시키고, 적이 피로하면 우리는 공격하고, 적이 후퇴하면 우리는 추격하는 전술이다. 모택동보다 350여 년 전에 조선의 문신 유성룡은 유격전술의 핵심을 이미 꿰고 있던 것이다.

390쪽
이순신 ˝한번 죽는 것은 아까워할 것이 없소. 대장인 나는 결코 적을 놓아두고 우리 백성을 죽일 수는 없소.˝

유성룡, 선조의 파천 비판, 요동내부책 비판, 세자책봉건의 등의 사건으로 눈밖에 남. 그러나 당시 중앙에서 군을 통제할 사람이 유성룡 밖에 없었음으로 유성룡을 기용.
유성룡의 군사개혁. 천민과 양반까지 군역에 포함시켜 군을 강화. 천민과 양인에게는 적의 수급에 따라 면천 혹은 과거시험합격자격 등을 부과하여 사기를 고양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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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과 철학 강의 1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개별 사건에 대한 암기로써의 논술이 아니라 도올이 말하듯 철학 공부를 통해 세상사의 진리를 꿰뚫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 논술을 통해 실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철학을 하여야 철학사를 이해할 수 있고 철학사를 이해해야 철학을 이해할 수 있고, 이 둘을 다 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텐데 수능만 해도 벅찰 고등학생들이 철학과 철학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사고력을 기르고 이 위에 자신의 세계관을 키워낼만한 물리적 시간이 존재할까.

48쪽
긴박하게 돌아가는 대륙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김일성은 남조선인민들이 미제국주의자들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도와야한다는 열렬한 사명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 김일성과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군, 북한의 인민들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때려잡는 우리의 영웅적 반공투사들을 숭배하라고 하는 것도 1차원적인 역사 해석에 의도적인 왜곡, 국가주의의 주입과 끝날줄 모르는 매카시즘, 지배세력의 의도적 활용으로 느껴져 들을 때마다 짜증나지만(이번에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는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에서 만든 건지 영화사에서 만든 건지 헷갈린다) 김일성이 개인의 욕망이 아닌 남한의 민중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한국전쟁을 일으켰다고 보는 건 무리한 역사 재조명이 아닌가 싶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400만 명이 의미없이 처절하게 죽어나간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국전쟁을 일본이 항복한 1945년부터 월남이 미군을 몰아낸 1975년까지의 동아시아 30년 전쟁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는 것은 충분히 공감가지만, 남침이야 북침이냐(이게 도대체 남침이라는 게 남한이 침략했다는 건지 남한이 침략을 당했다는 건지 용어가 정확히 이해도 안되지만)가 어떻게 안 중요할 수가 있을까.

66쪽
결국 이러한 기나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일제의 잔재를 보다 더 바람직하게 청산해가고 있다고 나 도올은 믿는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67쪽
그의 절대군주적 권력은 두 가지 원칙에 뿌리박고 있었다. 그 하나는 ˝잘살아 보세˝였고 또 하나는 ˝빨갱이는 안돼˝였다.
: 지금까지도. 경제발전과 종북타령이라니. 욕망과 두려움.

68쪽
좌, 우익 경력의 폭로로 끊임없이 총검과 죽창에 시달렸던 민중들은 그러한 시련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귀족자제 윤보선의 폭로보다는 오히려 빨갱이 시비로 곤욕을 치르는 박정희후보에게 더 뼈저린 동정의 염을 표했다.

90쪽
평화시에 군대가 존속할 수있는 이유도 민족을 위하여 얼마나 영예로운 전쟁을 싸웠냐하는 그 도덕성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91쪽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혼란이(4.19 이후의 상황) 어차피 거쳤어야 되는 창조적 혼란이며 도덕성없는 군인들에 의하여 진압되어야만 했던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고확신하지만.

92쪽
박정희의 죽어가는 모습은 거의 죽음을 고대하고 있던 자의 모습이었다. 자살에 가까운 죽음이었다.

93쪽
그것은 대의를 위한 전향이 아니라, 절대권력의 무의미한 존속을 위한 타성적 발악에 불과했다.

94쪽
전두환이 박정희에게서 배운 것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다스리고자 하는 민중들을 총검으로 무자비하게 찔러 죽이고 겁을 주어 다스려야 한다는 가치관이었다.

96쪽
한미연합사령관은 20사단의 작전통제권 이양을 요청하자,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Your request is approved.)

97쪽
송원전문 학생 박영순양과 목포전문 학생 이경희양

73만 광주시민의 가슴은 이날 밤 이 가냘픈 목소리로 피멍이 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100쪽
폭력에는 오직 저항이 있을 뿐이며, 행동과 실천이 있을 뿐이다.

101쪽
논술이란 궁극적으로 모든 이데올로기의 권위나 억압을 무화시키며, 폭력을 제거하며, 우리 사회의 합리적 소통을 증대시키기 위한 교육적 장치로서 고안된 것이다.

106쪽
조선왕조의 시험들이 최소한 유신독재시절의 시험보다는 훨씬 그 모든 분위기가 더 자유로웠다고 말할 수 있다.

107쪽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러분들의 사고력과 문장력을 테스트하여 우수한 인력을 대학에서는 뽑고싶어하는 것이다.
: 사고력과 문장력이 인물을 가려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108쪽
나의 사고가 언어를 빌어 자기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난 당대의 언어체계가 나의 사고를 빌어 자기를 표현한다라고 거꾸로 표현할 수도 있다. 결국 나의 사고는 나의 언어의 노에다. 이때 ˝나의 언어˝란 나라는 개인의식을 초월하는 사회적 관계이며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당대의 가치의 체계와 관련이 있다.

114쪽
21세기 한국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서양문화를 알아야 하고,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서양철학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희랍철학을 희랍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싶다는 골동품적 호기심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쓰고 있는 한국말을 정확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랍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1세기의 ˝나˝는 이미 한국인(korean)이기 전에 세계인(Cosmopolitan)인 것이다.

115쪽
희랍인들의 ˝소피아˝ 즉 지혜는 그런 삶의 달관이나 영적 직관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함없는 진리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116쪽
플라톤은 철학을 하는 인간의 행위를 가리켜 ˝로고스를 부여한다˝ (logon didonai)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떤 현상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 내지 이유를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인간이 인간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인간(anthropos)이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자기가 본 것을 자세히 관찰하는 자˝ (anathron ha opope)라는 의미인 것이다.

117쪽
벼락이라는 사실을 신화적 허구와 관련시키지 않고 자연(physis) 자체의 이치로써 설명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사상가가 바로 서양철학사의 첫 장을 차지하는 탈레스라는 인물이었다.

119쪽
그들(희랍인)은 우리이 생각, 그 생각이 반복되어 형성한 관념, 그 관념이 조합하여 엮어내는 논리적 세계, 이런 것들이야말로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불변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변화의 부정, 시공의 철저한 부정, 오로지 관념만의 긍정을 통해 파르메니데스라는 천재적 사상가는 변화가 전무하고 개별자가 전무한 단일한 세계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120쪽
존재(Being)에 대한 희랍인들의 집착, 그 연구성과를 우리는 존재론(Ontology)이라고 부른다. 존재론이란 ˝참으로 있음˝에 관한 연구이다.

122쪽
분과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그 분과과학의 성과를 통합하고, 각 분과ㅗ가학이 자신마의 시야로써는 성찰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분과과학이 다룰 수 없는 인간사유와 가치의 근원적 영역을 끊임없이 통찰하는 데 철학의 기능은 충분히 살아있다. 오히려 분과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통합적인 철학에 대한 요청은 더욱 강하여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124쪽
철학에 접근하는 길로서 두 가지 방법이 제시되어 왔다. 하나는 철학자들이 제기한 많은 문제들 중 주요한주제들을 뽑아내어 그 주제별로 집중토론해가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철학사적 접근이다.

126쪽
철학을 하지 않고서는 철학사를 쓸 수가 없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철학을 하지 않고서는 철학사를 읽을 수도 없다.
철학은 철학사에 대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철학사가 제공하는 논쟁을 이해하고 그 이해된 논리적 체계 위에서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수립하는 것이다.

129쪽
철학사의 제 개념은 개념의 의미보다는 그 개념의 의미를 전달하는 희랍인들의 삶이 우리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130쪽
철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그 사유체계가 타개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의 문제의식이 잇는 것이다.

133쪽
모든 역사는 현대사일 뿐이라는 크로체의 명언은 그대로 철학사에도 적용된다.

135쪽
대중의 참여가 없는 지적활동은 결국 한 문명의 악세사리로 끝나고 만다. 악세사리란 본시 있어도 좋은 것이요 없어도 좋은 것이다.

140쪽
어떤 인간도 타인의 형태를 지정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지식이나 지혜를 소유할 수 없다.

141쪽
개인의 의지에 반하는 어떠한 강제도 외면적 굴복 이상의 아무것도 보장치 못한다.

모든 광신은 이성과 관계없는 계시를 조성하는데, 그것은 자기 멋대로의 공상일 수가 있다. 우울증에 걸려있거나, 자기 기만증에 걸린 자들이 흔히 신성과 직접교제를 한다는 확신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계시는 반드시 이성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Revelation must be judged by reason.)

관념의 기원에 관하여 그(로크)는 오로지 경험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이란 일차적으로 감관을 통하여 얻어지는 바깥세상(External world)의 경험에 의존하며, 다음으로는 내성(reflection)을 통하여 달성되는 심리적 사태의 내적세계(inner world)의 경험에 의존한다. 인간의 관념은 모두 이 감각(sensation)과 내성(reflection)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얻어질 수 없다. 선천적 본유관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인간은 백지와도 같다)

142쪽
˝우리는 사물을 인간의 견해에 의거하여 판단하면 안 된다. 인간의 견해를 사물에 의거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We should not judge of things by men`s opinions, but of opinions by things.)

그러나 로크는 이렇게 감각과 내성에 의하여 얻어지는 지식은 완벽한 확실성(certainty)을 제공할 수 없으며, 기꺽해야 확률성(probability) 이상의 것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143쪽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 이래로 지각은 지식의 바른 수단으로서의 자격을 얻지 못했고 그러한 생각은 중세기를 거쳐 데카르트,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매우 정당한 것으로 인지되었던 것이다.

162쪽
철학을 쉽게 하는 방법
알 수 있는 것만 정확히 알아도 된다.
첫째, 학생들은 우선 철학을 완벽하게 다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양철학은 인간의 사고를 계발시키는 데는 으뜸이다.

163쪽
중국철학
중국철학은 인간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윤리적 과제상황에 관하여 매우 심오한 사유를 제공한다.
매우 프랙티컬하면서도 인성에 관한 깊은 통찰이 있다.

164쪽
한국철학을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우리민족의 사상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철학의 곁가지로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166쪽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일본)이 독자적인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한자 이외의 자기문자인 카나를 매우 일찍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헤이안 초기에 발전시켰으므로 자그마치 우리나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보다 무려 600년이나 빠르다.

167쪽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학이 부재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 고전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일천하다.
: 고전을 읽어보겠다며 동양의 고전으로는 사마천의 사기, 한비자의 한비자, 여불위의 여씨춘추, 맹자, 중용, 도덕경을 구입하고 서양의 고전으로는 플라톤의 국가, 대화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을 산 반면 한국의 고전으로는 삼국유사 한 권 뿐이 없으며 그조차 읽어보지도 않았다. 한국의 고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168쪽
소박하게 배우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우리는 철학이라는 대해(大海)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해의 원칙은 나의 관심과 그 사상가의 관심과의 공감이다. 결국 공감되는 부분만이 이해되는 것이다. 물론 공감이 찬, 불찬이나 쾌, 불쾌의 좁은 선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찬동하지 않더라도 공감은 할 수 있는 것이다.
: 찬동하지 않는 주장에 공감할줄 아는 순간 대화가 가능할듯.

169쪽
철학자의 권위를 인정치 말라!
둘째,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어떠한 사상가나 종교가나 지도자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권위를 인정해서는 아니 된다.

세계 사대성인이라 부르는, 예수, 샤카무니, 콩쯔, 소크라테스도 우리에게 권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칸트를 공부하는 사람은 칸트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지, 칸트의 세계를 들여다보기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칸트는 되지 못하고 칸트의 흉내만 내기 위하여 칸트를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170쪽
철학사에 나오는 어떠한 인물을 접하든지 간에 우리는 그를 같은 반에 있는 훌륭한 친구 이상으로 그를 존경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의 비범한 발상을 이해하고 나도 비범하게 되면 그뿐인 것이다. 평범한 누구든지 비범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예수가 될 수 있고, 내가 콩쯔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숭배하면 안 된다.

171쪽
종교적 신앙은 사유의 단절
종교교육이란 한 국가사회의 모든 체제가 종교에 의하여 지배되던 시저에만 유의미했던 교육이다.

172쪽
종교교육은 오로지 시민사회의 모든 자유, 평등의 원칙하에 그것을 베풀고자 하는 사람과 그것의 수혜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종교학을 공부한다는 것과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구분되어야 하는 사태다. 신앙을 철학 위에 덮어 씌울 수는 없다.
: 철학이란 의심하는 것이고 신앙이란 의심 없이 믿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173쪽
종교가 없이도 인간은 얼마드닞 잘 살 수가 있다. 종교가 없이도 신앙심이 깊을 수 있으며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신적인 인성의 깊이를 지닐 수 있다.
: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사유로 종교를 만들어냈다면 인간은 그러한 사유에 종교의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그들의 사유에 따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양심에 따르는 것만으로도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란 매우 간단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교주의 독단적 연설, 신의 계시를 빙자한 어느 인간의 절대적 언설을 그냥 논리를 초월한 명령으로서 믿는 것이다.

174쪽
예수를 믿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가 되어야 하고, 내가 나의 십자가를 나의 생애 속에서 창조해내야 하고, 내가 나의 삼 속에서 부활하고 내가 나의 부활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176쪽
예수를 생각하면서 살랑이는 가랑잎에도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면, 솔솔 부는 봄바람도 김일성 수령님의 덕분이라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행태를 공감할 수는 있을지언정 논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사실 북한 정권에서 아오지 탄광, 요덕정치범수용소를 만들어 수십만 명을 죽게 만들었다해도 하나님이 노아 일가만을 두고 모든 인류를 쓸어버린 지구 역사상 최악의 제노사이드보다 잔인했을까.

177쪽
정치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인간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것이 종교적 신앙의 대상은 아니다. 공산주의가 비판될 수 있다면,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비판될 수 있는 것이다.

월드컵에 이기는 나라라 해서 위대한 나라일 수가 없다. 월드컵을 응원하는 것이 애국, 애족의 대의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냥 놀이요 재미요 좀 흥분되는 소일거리일 뿐이다.

191쪽
핵심적 개념만을 집중적으로 이해하라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철학사적 기술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 개념들을 집중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193쪽
구체적 맥락이 없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다. 그리고 사생활에 관한 질문은 질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것은 대답해야 할 하등의 가치나 의무가 없다.

194쪽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체 타인의 용모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을 인사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만나서 누가 좋은 사람이라는 둥, 누가 나쁜 사람이라는 둥 이런 ˝사람이야기˝를 해서는 아니 된다. 이것은 모두 반철학적인 사유이고 시간살해이다.

195쪽
젊은이들은 추상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쾌락이란 무엇인가?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평등이란 무엇인가? 법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과연 어떻게 구성된 것일까? 우주는 유한할까 무한할까? 실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기 서 잇는 저 나무를 나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으로 청춘을 보내는 자만이 진리의 문으로 다가갈 수 있고 궁극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196쪽
우정은 끊임없이 상대방을 성장시키는 것이라야 한다. 우정은 철학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정은 결코 부질없는 가십이나 쾌락의 동반자가 아닌 것이다. 이성간의 사랑도 철학이 없이는 그 매력이 지속될 길이 없다. 이성간의 사랑처럼 인간을 계발시키는 철학도 없다.

207쪽
논술은 말이 아닌 글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하고, 그 글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어를 기준으로 삼기는 하지만, 기나긴 문어적 전통을 수용하여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명료하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의 문장론의 서두로서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208쪽
글이란 이해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은 우선 내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나의 이해의 구조를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멋있는 문구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단 한마디라도 내가 자신있게 이해하고 타인에게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는 소박한 글을 써야하는 것이다.

209쪽
개화기때 <독립신문>의 글과 오늘날의 글을 비교해보면 불과 1세기의 차이지만 변화의 폭은 극심하다. 앞으로 1세기 후의 한국말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210쪽
논술의 문장은 너무 늙어서도 안 되고 너무 젊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젊고 아름다운 청년의 언어를 써야한다.

212쪽
항상 의미의 면적이 큰 단어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의미의 면적이 좁은 단어를 선택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213쪽
의미의 면적을 좁힌다는 것은 그 단어의 지시체를 명료하게 인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문장은 애매하거나, 의미의 면적이 포괄적임으로 인하여 아름다울 수도 있따. 이때 중요한 것은, 모든 ˝애매성˝은 그 애매성 자체가 명료하게 의도된 것일 때만 문장의 요소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명료하게 의도되지 않은 애매성이나 포괄성은 무지의 광란일 뿐이요, 문장의 타락이다. 결국 문장에서는 명료하지 않은 단어의 선택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신이니, 자유니, 정의니 하는 따위의 의미의 면적을 종잡을 수 없는 추상언어보다는 구체적인 일상사물에 즉하여 사고를 진행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청년들의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명료하게!

214쪽
빠른 시간에 전체적 구상을 완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체를 묵을 수 있는 명료한 주제를 잡아내는 일이다.

215쪽
희랍의 시닉스(견유학파)의 대표적 사상가인 디오게네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에서 불과 기술을 훔쳐다가 인간세에 전하여 제우스의 형벌을 받게 된 것은 정말 쌤통이라고 박수치며 좋아했다. 사슬에 묶여 독수리가 그의 불멸의 간을 께속 쪼아대는 것은 너무도 정당한 형벌이라고 찬양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장난으로 인간세가 너무도 복잡해지고 빈부, 권력의 차와 억압구조가 생겨나고 지나치게 인위화되어, 문명이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18쪽
논술시험의 주제는 매우 일상적인 체험의 구도 속에서 평이하게 선택될수록 좋은 것이다. 문제는 쉽게 내고, 그것에 대해 논술하는 자의 정신 세계의 깊이를 형량하는 것이 출제의 기본정신이 되어야 한다.
: 면접을 본다고 해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219쪽
답안을 글로 작성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논리의 대강을 구성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논리적 주제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제의식에 따라 처음과 끝을 먼저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처음시작부터 문장은 정갈하고 자신있고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고래로 명문장들은 첫 구절에 강력한 명구들이 많다.

문장을 쓰려할 때, 첫 구와 마지막 구에 대강 만족할 만한 명구가 떠오르면 그것은 성공적 문장으로 가는 길을 확보한 셈이다.

220쪽
명사적 구성법보다는 동사적 구성

명사는 정적이며 고착적이다. 그렇게 되면 문장 자체가 정적이 되어버리고 다이내미즘을 잃는다. 동사는 움직인다. 다라서 문장도 움직이게 된다.

222쪽
명사를 계속 포개는 구성법의 오류와 중언부언의 반복의 오류가 같이 들어있다.
: 나 역시 글을 쓸 때 문장을 명사로 범벅을 해놔서 문장에 생기가 없고 흐르지 않고 막힌 느낌을 받으며 꼴보기 싫은 허세가 묻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명사를 덜어내고 동사를 사용하여 문장이 흐르게 하자. 문장을 따르는 독자의 시선에 막힘이 없게 하고 논리와 사고의 흐름 역시 시원하게 흐르게 하자. 내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사실 문장은 고사하고 맞춤법도 어렵다.

223쪽
우리말은 주어가 생략되거나 서양언어, 특히 인도유러피안어족의 언어가 규정하는 바 주어가 아예 없거나 해도 훌륭한 문장이 구성될 수가 있다. 그러나 주어를 명기할 필요가 있을 때는 확실하고 자신있게, 그리고 명료하게 제시해야만 문장이 힘이 있게 된다. 주어에 대한 애매한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주어가 있고, 없고를 명료하게 의식하면서 문장을 써야한다.

225쪽
˝가령, 자신이 히틀러를 숭상했다고 치자, 그때는 자신이 히틀러처럼 생각하게 되어서....˝
여기서 ˝자신˝이라는 주어는 애매하다. 애매한 만큼 힘이 없다.

228쪽
˝시장은 사람이 많다.˝
이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영어의 훈련을 받아서 이것을 틀린문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고치려 할 것이다.
˝시장에는 사람이 많다.˝

우리말에서는 장소를 나타내든지, 시간을 나타내든지, 무엇이든지 주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행위자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235쪽
불필요한 과정은 피하는 것이 좋다.

236쪽
문장을 될 수 있는 대로 간결하게, 불필요한 이음매 없이, 구성하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답안지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중언부언의 오류이다. 같은 의미의 어휘들을 중복하여 나열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문장을 지리하고 연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237쪽
중언부언의 모든 것들을 잘라내 버려야 한다.

중언부언의 문제는,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으면, 자기가 쓴 글이라 할지라도 계속 읽으며 스스로 교정을 보면서 쉽게 적발해낼 수 있다.

간결함은 명문장의 필요충분조건이다.

239쪽
파라렐리즘, 대구법. 병문.
명사는 명사끼리, 동사는 동사끼리, 형용사는 형용사끼리, 수사는 수사끼리, 부사는 부사끼리 짝을 맞추어가며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다.

242쪽
비유를 동원할 때는 논지를 확실하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살려야 한다. 비유, 은유, 속담, 고사성어, 경구, 명언, 고전인용 등등은 문장의 재미를 주거나 많은 내용을 압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허나 이런 수사법을 너무 자주 쓰면 논리적 힘이 오히려 약해진다.

249쪽
모든 문장은 한국말로 쓰여져야 한다. 원문을 표기할 필요가 있을 때는 괄호를 사용하면 된다.

253쪽
˝고유한 한국어˝가 존재한다는 주장 그 자체가 사기요, 픽션이요, 무지의 소치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해온 것이다. 우리나라가 서양과 접촉하기 이전의 말만을 고유어라고 부를 수가 없다.

254쪽
순수 우리말이라는 픽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살아있는 오늘의 나의 말을 죽이고 제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일본말의 잔재는 혐오하면서, 영어단어사용은 자랑스럽게 뽐내는 것도 일관성이 없다.

써서 편하게 통용되고 있으면 다 우리말인 것이다.

255쪽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말들이면 무엇이든지 써라! 동, 서, 고, 금을 가리지 마라! 고유어에 구애받지 말라! 그러나 아름다운 우리말 어휘는 많이 발굴할 수록 좋다.

256쪽
문장실력의 핵심은 반복적 훈련이다.
일기는 쓰는 것이 좋다.

258쪽
자기가 쓴 글은 반드시 자기가 여러 번 읽으면서 반성의 여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고,

문장은 끊임없는 교정을 통해 발전한다.

260쪽
전 국민이 식민지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비겁하고 비굴하고 기회주의적인 민족반역자들이 설치게 되는 것은 도덕의 부재를 논하기 전에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의 소치라 할 수도 있다. 압제적 상황에서 비열한 인간들이 생겨나는 것은 가련한 인간의 허약함을 탓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264쪽
힘은 앎에서 온다. 그 앎은 부분적 앎이 아니라 전체적 앎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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