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저 홀로 흠 없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음이 사실인지 선택적 기록과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임진왜란 때에 전장에선 이순신 조정에선 유성룡, 그리고 의병들. 그들만이 우국하고 충정하였구나.
소하 덕에 한신이 제 능력을 펼 수 있었던 것처럼 이순신도 유성룡이 아니었다면 어찌 조선의 수군을 이끌 수 있었을까.

유성룡이란 사람을 단지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개판이던 조정에 유일하게 능력과 인품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나보다.

후에 징비록을 읽어보아야겠다. 이순신 만큼이나 유성룡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 우리의 역사는 왜 항상 이리 비극일까.

˝너희들이 평일에는 나라의 녹만 도적질해 먹다가 나라 일을 그르치더니, 이제 백성들을 이렇게 속인단 말이냐?˝

188쪽
한 사람의 잘못이지만 일은 천하의 평화와 관계되었으니 진실로 통분하고 애석한 일이다.

191쪽
미국의 사학자 헐버트는 한국의 4대 발명품으로 금속활자, 거북선, 한글, 적교를 꼽았는데, 적교가 바로 유성룡이 만든 임진강 부교다.

237쪽
모택동의 16자결 -- 적이 공격하면 우리는 후퇴하고, 적이 주둔해 있으면 우리는 교란시키고, 적이 피로하면 우리는 공격하고, 적이 후퇴하면 우리는 추격하는 전술이다. 모택동보다 350여 년 전에 조선의 문신 유성룡은 유격전술의 핵심을 이미 꿰고 있던 것이다.

390쪽
이순신 ˝한번 죽는 것은 아까워할 것이 없소. 대장인 나는 결코 적을 놓아두고 우리 백성을 죽일 수는 없소.˝

유성룡, 선조의 파천 비판, 요동내부책 비판, 세자책봉건의 등의 사건으로 눈밖에 남. 그러나 당시 중앙에서 군을 통제할 사람이 유성룡 밖에 없었음으로 유성룡을 기용.
유성룡의 군사개혁. 천민과 양반까지 군역에 포함시켜 군을 강화. 천민과 양인에게는 적의 수급에 따라 면천 혹은 과거시험합격자격 등을 부과하여 사기를 고양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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