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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상하이
신동흔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중국 여행을 가기 전에, 특히 상해 여행을 가기 전에 괜히 허접스러운 가이드북을 읽고 가는 것보다 이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상하이를 더 자세하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는 상하이에서 1년 밖에 생활하지 않았지만 기자 특유의 관찰력으로 상하이의 그 슬프고 화려한 역사에 대해 편안하고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괜찮았다. 한편으론, 딱 1년 정도 상하이에서 자세히 관찰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가면 볼 수 있는 만큼의 내용만이 담겨 있다는 느낌도 받긴 하지만 그 정도 개론 수준의 지식만으로도 여행자에게는 가이드북만 가지고 상하이를 방문하는 사람들보다는 상하이를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2010년에 나온 책이라 이미 6년이 지났고 중국 같이 고속성장을 하는 나라에서 6년은 다른 나라에서 한 세대가 바뀌는 것만큼 변화가 크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낡게 느껴지진 않았다. 누군가 상하이 여행을 간다면 100배 즐기기 시리즈 상하이 편과 이 책을 추천하겠다.
저자는 상하이 사람들의 서비스 의식이 낮음을 지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나도 분명 처음에 상하이에서 생활할 때는 기본적인 손님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도 없는 저발전 국가의 한계가 그대로 나오는구나라고 느꼈는데 나중엔 감정노동으로 고통받지 않고 손님에게 무릎 꿇어가며 뺨 맞지 않고 오히려 손님과 대등한 위치에서 지나치게 굽신거리지 않는 모습이 나는 편했다. 선진 국가들의 과도한 친절은 사실 그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겐 감정노동이고 고통이며 그걸 받는 사람에겐 부담이다. 누군가는 그걸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39쪽
수력 발전이 서로 높이가 다른 두 지점을 지나가는 물의 낙하운동에서 에너지를 얻듯이, 현재 중국은 바로 이 동부와 서부의 `격차`가 중국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자원이 되고 있다.
45쪽
사실상 농민들은 땅에 `묶여` 있어야 했는데, 이들은 중국인들의 먹을거리를 위해 농업생산력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60쪽
다르게 생각하면 중국 기층 민중에게는 지배자가 왕조에서 공산당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황제 푸이와 마오쩌둥이 함께 있는 사진에 누군가 ˝구 황제와 신 황제˝라고 주석을 달아놨던 것이 생각난다.
61쪽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공산당 선언)
:19, 20세기에 이 문구가 가졌을 울림이 느껴질 것만 같다.
72쪽
`당 지도자 전용 신문`은 관영 통신사인 신화통신에서 주로 만든다고 한다.
: 13억의 중국은 그럼 시진핑을 비롯한 상무위원들과 공산당 정치위원들이 아니라 이 `당 지도자 전용 신문`을 만드는 신화통신 기자와 주필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인가. `당 지도자 전용 신문`을 만드는 최고 책임자의 힘은 도대체 얼마나 강할까.
73쪽
우마오 당은 글을 올릴 때 오 마오를 지급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인터넷에서 정부나 공산당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운영하는 `우마오당`
: 우리나라로 치면 십알단이나 국정원 같은 건가.
91쪽
어떤 이는 이런 상황을 `경제성장`이라는 `조증`과 정치사회적 무력감이라는 `울증`이 만나 사회적으로 `조울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일본학자 다카하라 모토아키)
117쪽
상하이의 택시는 브랜드가 여러 종류다. 가장 서비스가 좋은 것은 하늘색의 `따중˝이다. 그 다음으로 초록색의 `바스`, 지은 갈색의 `지엔장` 등의 택시가 있다.
121쪽
1990년대 초반까지도 중국은 나라에서 정해준 `단위`에 속해 정해진 일을 해왔고, 그때의 습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단위 사회`였던 중국은 한 번 단위에 배정되면 다른 단위로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한번 밥그릇을 받고 나면 깨지지 않는 `철밥통`이었던 것이다. 완전한 종신고용 상태에서 해고나 전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실적이 낮아도 해고당할 일이 없는 대신 아무리 실적이 높아도 임금 상승은 없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보면, 중국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나 상인들로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친절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129쪽
계획경제 시절 중국인에게 가장 난감했던 것은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모든 가정이 배급표를 받아 식료품을 마련하던 시절, 집안 식구 수대로 정해진 양만큼의 쌀, 고기, 밀가루, 계란 등의 물자 배급표가 지급됐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 `입`이 하나라도 늘면 무척 곤란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집에서 사다 놓은 계란이나 고기(채소는 배급표에 관계없이 양껏 살 수 있었다고 한다)를 다 써버리고 나면 나중에 자기들이 먹을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손님이 오면 집 근처 식당으로 나가 외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132쪽
`중국인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33쪽
쩨쩨하게 몇백 원 깎자고 낯선 이국땅에서 그랬느냐고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흥정을 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르고 돌아설 때 상인들의 그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지 않은 이상,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35쪽
옛날 전국시대의 어느 나라 왕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신하의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꾀를 냈다.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간신을 죽여준 자에게 황금 1000량을 상으로 내릴 예정이라는 포고를 전국에 붙인 것. 그러자 네 사람이 찾아와 서로 자기가 한 일이라고 나섰다. 왕이 그들에게 누가 진범인지 모르겠으니 황금을 어떻게 할까 물어보자 네 사람은 한 사람에게 이백오십 량씩 나눠달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어서 얼바이우들을 끌어다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얼바이우는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됐다고 한다.
: 얼바이우가 왜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유래가 있었구나. 사실 2000년 전에 있던 말이 전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는 게 의심쩍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하나 해소되었다.
137쪽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기질의 사람들과 물건을 하나 살 때마다 협상을 벌여야 하니 쇼핑은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한두 번은 흥정을 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흥정에 성공해서 괜찮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사서 쾌재를 부르기도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정말 지친다.
142쪽
향수란 결국, 어떤 장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닐까, 고향에 대한 향수도 결국은 유년에 대한 향수라는 점에서 `돌아갈 수 없음`, 시간의 비가역성을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감정일 것이다.
: 나 역시 상하이가 내가 살았던 도시 중 두 번째로 긴 시간을 지냈던 곳이기에 향수를 느끼곤 하는데 이는 상하이란 도시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시절 상하이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향수인 것 같다. 교환학생 시절만큼은 뒤처진다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어린 시절에 나 느꼈을 법하게 매일이 자유로웠으니.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쓸려가는 파도에 몸을 싣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무얼 하지 않더라도 항상 압박을 받고 있다. 그 시절이 그리고 상하이를 다시 가고 싶은가 보다.
149쪽
두웨셩을 비롯한 암흑가의 보스들이 밤을 지배했던 곳, 1원짜리 인력거가 길을 가득 메우고, 창녀와 노름꾼, 아편쟁이, 댄스홀을 드나드는 바람난 남녀가 거닐었던 곳이 지금은 상하이에서 가장 큰 서점을 비롯해, 학습지 전문 서점, 외국인 전용 서점, 기술 전문 서점 등이 밀접한 거리로 변신해 있었다. (푸저우루)
152쪽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 지주, 귀족 계급의 상당수는 상하이로 흘러들었다. 이중 상당수 러시아 여성들은 상하이에서 서유럽인들의 현지처나, 술집 여급, 댄서 등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76쪽
어쩌면 이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 남녀의 연애나 섹스관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적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192쪽
˝잠옷패션은 80년대 시민들의 거주지가 비좁고 인구 밀도가 높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풍습˝
196쪽
이 책도 상하이에서 유독 `잠옷 패션`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상하이 사람들의 천성 때문이라는 해석을 붙여놓고 있다. 잘 때 값비싼 잠옷을 입고 잘 정도의 돈은 있다는 표시라는 것.
잠옷은 적어도 상하이에서는 하나의 `기호`이자 `상징`이었던 것이다.
198쪽
롱탕은 100여 년 전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찾아 들어온 외지 출신 중국인들이 살던 집과 골목 형태를 말한다.
220쪽
화장실 칸막이가 낮은 것도 어떻게 보면 `사적 공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였다.
: 중국에서 지내고 여행하면서 다른 건 다 적응해도 화장실만큼은 정말 적응할 수가 없다. 왜 도대체 문이 없으며 문이 있어도 닫지 않는 것인가. 제발 앞사람의 용변을 흐르게 해서 내 아래로 보내지 말란 말이다.
235쪽
일본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 사이의 한중 우호 협력에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 했다.
: 중국에서 택시를 타는 경우, 기사분이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면 열에 일곱, 여덟은 일본놈(日本鬼)을 욕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제국주의 일본의 폭압적인 식민통치의 경험을 공유하며 공감할 수 있다는 점과 중국어를 써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도 그 자리에 없는 일본을 욕하는 것에 기꺼이 동참했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자 우리나라 택시에서 앞뒤 없이 정치인들 욕하시는 기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피곤해져서 아예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척하게 되었다. 요즘엔 중국인들이 식민지배와 난징 대학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일본과 일본 기업에 불매운동 수준을 넘어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무서운 느낌이 든다. 혹여나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동아시아의 군비 확산이 전쟁으로 치닫을 경우 보복 학살이 일어나진 않을까 싶어서.
교환학생 시절 같은 반의 일본인 (여)학생이 혼자 어디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239쪽
내부의 적보다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은 수천 년 전부터 제국을 통치해온 권력자들이 애용해온 방법이기도 하다.
: 북한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남한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계속 불어넣는 것은 지속적인 국지적 도발에 그치겠지만 중국이 자신들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는 순간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263쪽
만양 중국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진다면 노골적으로 주변 국가에 간섭할지도 모를 일이다.
: 만약이라니, 이건 혹시나 모를 일이 아니라 자명하다. 중국이 더 강해지면 아마 미국이 전 세계의 경찰이자 깡패로 돌아다닌 것보다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우리 역사를 살펴봐도 중국이 우리나라 위에서 무슨 행패를 부렸는지 다 알 수 있지 않나.
중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민족주의는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중산층의 정치적 각성과 주권의식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항일의 역사나 주변국에 대한 `지도책임`을 강조하는 등 오히려 부정적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있다.
264쪽
결국 한 곳에서 억눌리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다른 한 쪽이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가끔씩 `과격한` 양태의 민족주의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과거의` 사회주의자들에겐 민족주의가 훌륭한 `대체 이념`이 되어주고 있다.
265쪽
독일 역시 게르만 민족의 화려한 과거와 민족의 우수성을 찾아서 빠져들다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267쪽
중화민족이라는 말이 있지만, 중화라는 것은 특정한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 대륙에서 살아왔던 이들이 주변 국가에 대해 보인 일종의 `태도`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하다.
: 사실 중화라는 개념은 계속 확대되어 왔고 중국 땅의 패권과 다름 아니게 사용되었다. 원나라나 청나라 모두 중화였던 것을 보면 중화라는 개념은 민족적인 구분도 아니고 문화적인 구분도 아니다. 그냥 중국 땅을 기반으로 가장 강력한 패권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가져가는 명패나 훈장 같은 것이다.
269쪽
현재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대국이 되었지만, 덩치만 커져버린 아이처럼 아직 자신들의 경제수준에 맞는 정치적인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