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난
르네 바르자벨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프랑스 SF문학의 선구자'이자 '예언자'라는 별명을 가진 르네 바르자벨의 SF소설이다. 그 범상치 않은 칭호답게 「대재난」은 아주 오래 전(1943년)에 집필된 작품일지라도 마치 오늘 상상한 만큼 새집에서 나는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나고, 방금 잡은 생선처럼 바닥을 치며 파닥거린다. 「대재난」에는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기상천외하고 신비한 기술로 가득하다. 처음 출판된 당시(1943년)에는 없고 지금(21세기) 있는 기술을 가뿐히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도할 만한 흥미로운 미래기술을 소개해준다. 또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뛰는 신기한 기술도 만날 수 있다. SF(Science Fiction)소설을 접할 때면 막연히 어려운 용어를 맞닥뜨릴까 봐 조금 걱정이었지만 이 책은 그런 부담 없이 미래로의 길을 터 주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기술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우유가 나오는 수도꼭지'이다. 우유는 각 가정집의 수도관을 통해 배달되는데 여기에 크롬 도금이 된 장치를 곁들이면 몇 분 만에 버터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요새는 커피(아메리카노)가 나오는 정수기도 개발되어서인지 무척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날마다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정수기를 씻은 다음 신선한 우유로 다시 채우는 작업은 사양하겠다. 그 우유를 온수와 냉수처럼 온도를 쉽게 조절할 수 있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먼' 미래에는 어떨까? 우유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뿐 아니라 똑같은 맛과 영양소를 가진 '진짜 같은 우유'를 개발하여 실시간으로 공급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유가 나오는 수도꼭지' 다음으로 인상적인 기술은 '고인 보존 기술'이었다. 각 가정집마다 영하 30도로 얼린 보존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고인들이 평소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자주 취하던 포즈로 세팅되어 있다. 그 모습은 흔한 사후경직과는 다르고, 피골이 상접한 미라의 몰골과도 달라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듯한 생기발랄한 모습이다. 심지어 압축 공정 덕분에 고인의 몸을 0.5센티미터 길이로 축소한 후 프레스로 압착해 앨범에 붙이기까지 한다. 가까운 세대의 조상은 본래의 크기로, 먼 세대의 조상들은 작아진 채로 자손들의 가정집에 보존되는 것이다. 부패라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그 기술을 진보되고 평범한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미래인의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마치 다른 종족처럼 느껴졌다. 또 살육하지 않더라도 고기를 배양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기술도 선사하니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대재난」의 진목은 상상을 초월한 기술의 진보를 예측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공정이 원터치식으로 매뉴얼화되고 지구 한 바퀴를 몇 십 분 만에 돌파하던 생활이 21세기도 아닌 1943년에 못 미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기다리고 뛰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기계의 도움 없이 단순히 생존하고자 맨몸으로 재난에 맞서야 한다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평범하고 단순한 상상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종말을 다루지 않은 적은 없으니깐. 그럼에도 「대재난」이 흥미롭게 읽히는 건 멸종으로 치닫는 결과론적 예언과 달리 어떻게서든 살아남으려는 미래인의 집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살인이 덤덤해지는 과정과 한순간 그동안 보호했던 가치를 단숨에 포기해야 할 때를 지켜보며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대재난을 겪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한 번쯤 상상해보지 않으면 안 될 일인 건 분명하다.
 


※ 위 서평은 본인이 읽기를 희망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
- 지원경로 : 북카페 책과 콩나무(http://(http//cafe.naver.com/booknbeanstalk)
- 출판사명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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