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강들 런던의 강들 시리즈
벤 아아로노비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무척 재밌게 보았던 ​영국의 인기 드라마 <닥터 후>의 시나리오 작가, '벤 아아로노비치'의 어번 판타지 작품이다. 런던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마법 경찰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그렇다고 주인공이 빗자루를 타고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기상천외한 마법쇼(?)를 벌이는 내용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기대한 환상적인 면보다 건물과 사물의 묘사가 더 자세하여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등장인물의 외모, 복장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여 상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어떠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전에 활자가 눈앞에 직격탄으로 영상으로 펼쳐지니 이 점에서는 몰입하기 좋았다. 탄탄히 구성된 리얼리티 하에 발목을 적실 정도의 오컬트 분위기가 단점이라 할지라도 그동안 세계를 괴멸시킬 악마와 싸운 위대한 마법사 캐릭터가 질렸다면 특정 관할 지역에서 사건을 수사하는데 약간의 주문을 외우는 평범한 경찰관에게 기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 속 화자는 유머러스하고 약간 짓궂은 '피터 그랜트' 순경으로 평범한 사람보다 영적 감각이 예민한 까닭인지 영국 유일한 마법 경감, 나이팅게일의 도제가 된다. 수습을 마치면 그토록 배치되길 희망한 살인수사반이 아닌 사건경과전담반에서 '귀중한 역할(서류업무)'을 수행할 운명이었던 피터로서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내가 피터처럼 지금 이 상태에서 특수한 재능(마법)만 더 추가된다면 슈퍼마켓에서 세일상품을 탐지하고, 출근할 때마다 옷색깔만 바꿔 입는 식의 소소한 주문을 외우고 싶다. 해결해야 할 사건은 크나 작으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니깐. 아, 이런 것도 어반 판타지에 속하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매력적인 장르이다.
​뭐, 그나마 제대로 된 마법을 부리는 나이팅게일 경감의 활약이 미미하여 아쉬웠지만, 피터가 베스티기움(강력한 마법이 남기는 흔적)을 후각, 청각 등으로 감지하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템스 강의 여신(어머니 템스)를 마주할 때 소금물과 커피, 디젤과 바나나, 초콜릿과 생선 내장 냄새를 인지하여 그녀가 나이지리아인이라고 알아차릴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 이노우에 유메히토의 「마법사의 제자들」 에 나오는 교스케가 사물을 통해 과거-현재-미래에 있었던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면, 피터는 과거의 일을 모호하면서도 직관적으로 감지하여 궁금증을 더 많이 유발하였다. 또 영국에 존재하는 마법의 기본원리를 아이작 뉴턴이 체계화하였다는 설정도 신선하고, 템스 강의 신과 게니이 로코룸(정령)을 인간화하여 세속적인 분위기로 그려낸 것도 독특하다. BMW 미니 컨버터블을 몰거나 관리인 아저씨를 불러 어머니 템스에게 택배를 보낼 정도니깐. 한편 이번에 읽은 「런던의 강들」은 피터 그랜트 순경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피터가 비록 마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외울 수 있는 주문이 고작 두세 개뿐이지만, 분명 경찰관 한 명의 몫은 제대로 수행하고 있어 멋졌다. 또 앞으로 어엿한 마법 경찰관으로 성장할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으니 괜히 더 정이 간다. 피터 그랜트 순경, 다음 편에도 열심히 수련하여 다양한 주문을 외울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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