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살인했다는 의미심장한 프롤로그부터 매회 복선과 반전을 꾀한 범죄 스릴러 소설이다. 솔직히 말하면 범죄 스릴러란 책의 후반부에 급작스럽게 치달았고 전반적으로 주인공 레이첼의 자기고백적 성향이 묻은 자서전스러운 느낌이다. 어머니가 친부의 정체를 숨겼던 어린 시절부터 레이첼이 갈망한 것은 '안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믿은 진실이 기대와 달라서 타협할 수밖에 없던 현실로부터 '안정'은 판도라의 상자 깊숙이 고인 희망과 같았다. 하지만 레이첼은 책 안에서조차 제 감정을 욱여넣었고, 바로 그 점이 담백하지만 슬픈 공감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아이티 대지진을 취재하면서 겪은 몰인간성과 지옥 한복판에서 죽음을 묻던 아이러니함은 그녀가 안정을 환멸하고 스스로 경멸하게 만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깊음. 공황장애라고 명명한 고통 속에서 레이첼은 드디어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읽어야 되는 책인건 단순히 일편적인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서사 일부에 지나지 않기에 이 책이 '범죄소설'로만 알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또 그 맛을 느끼려면 비워야 하는 접시가 많다. 마지막 여운의 맥이 약한 점이 아쉽지만, 앞으로 레이첼이 '안정'을 위해 스스로 속이지 않겠다는 결의가 보여 좋았다.

아이티에 관한 책을 쓴다던 그녀가 후반사건 이후 달라진 시선으로 어떤 진실을 고백했을지 궁금하다. 이런 건 에필로그로 남겨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책을 읽고 다시 본 <우리가 추락한 이유>도 이제사 알겠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 단순하다. 우리가 뛰어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첼은 이제 스스로 점프했다. 더이상 추락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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