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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제목: 공간이 만든 공간
저자: 유현준
출판사: 을유문화사
가독성 ★★★★★
유익함 ★★★★★
흥미도 ★★★★★
난이도 ★★★☆☆(비전공자 기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모두 읽어본 독자로서 이번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이 등장하리라고 생각했다. 저자 역시 서문을 통해 이러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은 사실이다. 하지만 읽는 과정에서 겹치는 부분이 떠올리지 않을 정도로 기존의 내용을 이 책에 자연스레 녹여냈고, ‘책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최근 2~3년 동안 읽은 책 중에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책이 너무 두껍거나 어려우면 끝까지 정독하지 않고 서평을 작성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결코 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읽고 서평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왜 건축물의 빈 공간을 보아야 하는가’ 첫 챕터는 제목부터 건축스러웠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를 농사, 주요 철학자, 문자(알파벳과 한자), 체스와 바둑, 도자기, 삼각돛 등을 통해 풀어냈다.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바로 짐작했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재를 여럿 활용해 아주 자연스러운 이야기 하나로 엮었다는 데에 있다. 동양과 서양, 유럽과 중국, 서양 건축과 동양 건축 등은 누가 봐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법한 소재이다. 벼농사와 밀 농사, 강수량이 그 지역 문화와 건축에 미친 영향, 개미와 벌, 나일강과 황하강 등을 소재로 풀어나간 부분은 ‘이것들을 서로 어떻게 엮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과 동시에 감탄사를 자아낸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인류학, 정치학, 역사학, 철학, 기하학 관련 내용이 집대성된 책이기에 이 책을 읽다 보면 ‘건축가 유현준’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게 된다. 작가를 만난다면 이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준비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저자의 전문 분야인 ‘건축’ 자체에 관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부분은 6장과 7장으로, 이 부분을 읽다 보면 그제야 ‘아, 저자의 전공이 건축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을 위해 나름 쉽게 풀어냈겠지만,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 관점에서 보면 살짝 난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재천 교수가 ‘융합’이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며, 실제로 학문 분야, 기업에서 융합 관련 붐이 생겨났다. 출판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법한 뇌 과학분야 전문가 김대식 교수, 빅 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의 저서를 보면 융합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그 외에도 많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분야만 조금 다를 뿐, 다양한 주제, 학문 분야가 ‘한 공간’ 안에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다.
이 책은 역사는 물론 철학적인 내용(건축이 철학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됨)도 곳곳에 포함되어 있어 배경지식이 없으면 온전히 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약간의 배경지식만 있으면 이 책을 120%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어느덧 유식해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