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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집권 경제학
한성안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3월
평점 :
제목: 진보 집권경제학
출판사: 생각의 길
방대한 분량, 때로는 난해한 경제학 이론 때문에 비전공자로서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경제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정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진보보다는 보수에 치우친 경향이 높다. 그런데 이는 정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그 정도가 심했으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이 방대한 책의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서문을 시작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경제학 교양 도서와 달리, 이 책은 결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저자도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철저하게 ‘학술적’이고 오랜 기간 저자가 축적한 ‘진보 경제학자들이 겪은 실천 과정의 이론적 결과물’을 총망라했다. 책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에 핵심 챕터들만 일부 꼽아서 독자분들에게 소개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챕터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방법,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소개, 보수와 진보, 경제학과 수학/철학과의 관계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데 페이지를 할애했다. 저자는 진보진영은 경제학의 인문학적-자연과학적 기반에 유념해야 하며, 특히 철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p.25)고 주장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왜 첫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언급했는지 아주 쉽게 이해가 된다.
두 번째 챕터부터는 본격적으로 도표와 경제 수식이 등장한다. 특히, 비주류학 경제학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가 이루어진다.
다섯 번째 챕터부터는 슬슬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사람의 이기적인 본성에 기반을 둔다면, 이 챕터에서는 제도경제학의 ‘다중 본능론’에 대해 다룬다.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 제프리 호지슨, 에른스트 페르의 경제학 이론을 예로 들며, 제도경제학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부정하는 이타적 본성과 도덕적 성향이 인간에게 실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p.76)고 저자는 말한다.
여섯 번째 챕터에서는 경제학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또한, 기업을 개인적 존재로 간주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p.105)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적 소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소득분배 정책이 필요하다(p.129)고 주장한다. 이 챕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제도경제이라는 학문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을 잡게 된다.
열두 번째 챕터는 그나마 도표나 수식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꽤 심오하고 생각할 거리를 상당히 많이 던져준다. 여기서는 신고전주의경제학과 제도주의 경제학 관점에서 바라본 국가의 존재 여부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저자는 역시 전자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에게 남겨진 과제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을 보면 저자는 최대한 균형적인 시각에서 제도 경제학을 소개하려는 듯 보인다. 예컨대, 저자는 ‘진보진영은 신고전주의경제학이 추구하는 수요=공급의 균형점에 대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 챕터는 내용의 중요도에 비해 할애하는 페이지는 상당히 짧다. (책 자체가 워낙 두꺼워서 저자가 최대한 요약해서 담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챕터와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열세 번째 챕터의 핵심 주제는 ‘혁신 성장’으로 신슘페터리안 경제학의 국가혁신체제를 주요 내용으로 다룬다. 저자는 성장의 문제를 ‘진보적’으로 대응할 이론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p.305)고 주장한다. 또한, 박정희 시대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 세세히 다루는 부분에서 저자는 사실과 가치, 자료와 이론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p.321) 저자는 국가혁신체제가 변화된 패러다임에 부응하기 위해 제시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하는데, 생산의 3요소보다도 국가혁신체제가 국가의 성장에 이바지하는 부분이 크다고 말한다.
열다섯 번째 챕터에서는 경제학파로 구분한 국가혁신체제를 신자유주의형, 사회민주주의형, 혁신적 복지형, 지속가능형, 고전주의형으로 분류해 소개(p.400)한다. 또한, 시장기반형, 사회민주형, 아이형, 대륙유럽형, 남유럽형 등 다섯 가지 사회적 혁신체제를 세세하게 소개(p.411)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챕터를 읽으면 국가별로 비슷한 목적(궁극적으로 잘 사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방향성, 국가의 역사적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른 국가혁신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맨 마지막 챕터에서는 한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면서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눈치채겠지만 참고문헌만 30페이지에 달한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자료조사를 했고, 준비 기간을 가졌는지 참고문헌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완독하기 위해서는 매우 강한 인내심과 지적 도전이 필요하지만, 한 챕터를 넘어갈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올 정도의 경제학 이론, 양질의 데이터, 도표, 수식 등을 담았다. 경제학 전공자라면 진보경제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