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 ㅣ J Mystery 1
쓰치야 우사기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읽은 책은 제목부터 따끈따끈하고 달달한 쓰치야 우사기의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로 내가 평소에는 잘 접해보지 못했던 힐링 미스터리 소설이다.


책을 펼치면 작가소개부터 읽는 편인데, 늘 젊으면 젊을수록 더 파격적인 작품을 쓸거라고 생각하며 본격보다 신본격을, 그리고 특수설정 미스터리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게 쓰치야 우사기의 1998년생이라는 젊은 나이는 작품을 읽기 전부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심지어 귀여운 책을 읽은 후라 그런지 도쿄도 후추시에서 자랐다는 짧은 소개 한 줄 조차 달달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팔고 남은 빵을 공짜로 받아 먹을 수 있다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이유로 빵집 '노스티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이치쿠라 고하루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작중 만화가 지망생으로 등장하는 고하루의 만화들도 하나같이 '충격적'이라 웃음을 선사하는데, 데스게임의 주최자와 사랑에 빠진 여고생, 원시인과 삼각관계에 빠진 여고생 등 실제로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빵의 종이 봉투만 보고도 속에 담긴 빵이 크루아상이라는 것을 맞출 정도로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진 그녀가 노스티모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섯가지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여타 다른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며 피비린내 풍기는 일본 추리 소설들에 비해 굉장히 소소하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진다.


절친이 나와 약속을 깨고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케이크 파트의 상냥한 선배의 꿈을 응원하고 싶어!

소꿉친구이면서 서로를 짝사랑 하는 청춘의 미스터리!


와 같은 소소하면서도 달콤한 빵과 잘 어울릴 법한 에피소드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평소 즐겨 읽던 추리소설들에서는 사람이 마구 죽어나가며 재미를 뽐내는데, 이 작품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는 어떻게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달달한 이야기들로 미스터리가 주는 재미를 완벽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지 다시 한번 놀랍다고 느끼게 된다.


글루텐 프리, 강력 범죄 프리, 고순도 무해함 함유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이 작품은 바쁜 일상에 지친 나와 같은 사회인들에게 달달한 휴식같은 독서시간을 선물하는 책이다.


두어달 전 일본에서는 이 작품의 후속작도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노스티모의 문이 다시 열리는 그 날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안녕 신 ㅣ 신 게임
마야 유타카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읽은 책은 마야 유타카의 '안녕, 신'으로 작년에 출간되었던 신게임의 후속작이다. 한권의 볼륨으로 하나의 사건을 담았던 전작과 달리 이번 신작은 여섯개의 단편을 담은 연작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 연작단편집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 소설 '안녕 신'은 이런 연작단편집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린 소설이 아닐까 싶다.

장편소설처럼 읽을 때 대단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치 않아 부담없이 한편씩 읽을 수 있으면서도 일반 단편보다는 이야기가 이어짐에서 오는 깊은 맛은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작품 역시 전작 신게임에서 등장하는 신을 자처하는 초등학생 스즈키가 등장한다. 이미 전작에서 신으로서의 전지전능함을 독자들에게 인정받은 상태라 신에 대한 여러 주변설명 없이 바로 범인부터 지목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범인은 ____야." 로 시작되는 각 단편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다. 스즈키에게 지목당한 범인의 이름은 작품 속 '내'가 아는 이름도 있고 스즈키를 통해 처음 듣게 되는 이름도 있다. 심지어 스즈키의 신탁이 맞았는지조차 불투명하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단서를 모아 진상을 추적해 마지막에 범인을 지목하게 되는데 '도서미스'의 형식을 가진 이 작품은 마야 유타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를 완전히 뒤틀어 신탁이란 형태로 범인의 이름부터 지목하며 전개된다.

이미 범인을 아는 상황에서 소년탐정단과 '나'는 신탁을 검증해 신탁의 진위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야기의 구조상

1. 사건은 벌어졌으나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다.

2. 진범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어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다.

3. 결국 소년탐정단은 진범의 알리바이를 깨트려야한다.

로 흘러가기 때문에 알리바이 트릭이 작품의 주를 이루게 된다.

초등학생 5학년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며 심지어 전작은 아동서(?)라고 하니 이 알리바이가 얼마나 대단하겠어 싶을 수 있지만 마야 유타카가 괜히 마야 유타카겠는가 싶을 정도로 알리바이트릭 역시 본격적이라 추리소설로서의 트릭에 두드려맞는 뒤통수가 주는 재미도 훌륭하다. 아동서의 후속작이지만 아동서의 타이틀을 떼어버린 미칠듯이 폭주하는 살인사건의 연속도 인상적이다. 확실히 마야유타카는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듯 하다.

사건의 마무리가 주는 찝찝함 역시 일품이었다. 초등학생이라는 한계를 통해 추리 후 결과만 기다리는 것이 이들의 한계인데 마치 이 맥빠지는 마무리를 통해 어쩌면 신 앞의 인간의 무력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연작단편집의 맛을 제대로 살린 여섯 단편의 수위였는데, 여섯개의 단편이 차례대로 진행되며 그라데이션으로 증가하는 기괴함과 불쾌감 그리고 충격이 인상적이었다. 매 단편을 읽을 때 마다 여기서 더? 더 역겹게가 가능하다고? 하며 감탄하게 된다. 동시에 뇌가 도파민에 절여지는 추리소설을 읽는 가장 본질적인 재미를 경험하게 된다.

책장을 덮었지만 아직도 마지막 페이지가 주는 충격의 여운이 가시지가 않는다. 하나같이 끝맛이 찝찝하지만 그 맛에 중독되어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연작단편집 '안녕 신'을 추천드린다.

올해 읽었던 추리소설 중에 단연 최고로 꼽을 만 한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급매 106동 101호
천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급매 106동 101호', 요즘같이 집값이 나날이 하늘을 찌르는 시대에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제목은 놀랍게도 호러 미스터리 소설의 제목이다. 이 소설의 장르를 알고 난 뒤 다시 한번 제목을 읽어보니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하루 하루 내 손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집값이 일상이 된 시대, 이유 없는 급매와 저렴한 가격자체가 공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세계관. 그리고 그 세계관이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숨막히는 사실까지.


"아파트가 제일 무서워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래윗집에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잖아요."


이 소설은 내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일상적인 공간을 서늘한 공포의 무대로 뒤바꿔 놓는다. 층간 소음에 시달리다 자녀 계획을 위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솔숲아파트 106동 101호로 이사한 채아와 대한 부부의 모습은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집을 구매하는 현대인의 보편적인 욕망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웠던 이사의 기쁨도 잠시, 101호가 주는 기이함은 채아의 일상을 뒤흔든다. 시세보다 싼 가격 뒤에 숨겨진 전 주인의 묘한 안부 인사와 주민들의 수상한 시선은, 깎아내린 집값 속에 결국 누군가의 절망과 고통이 숨어 있었음을 깨닫게 하며 기괴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 인물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조연인 영미의 존재감은 특히 인상적이다. 언뜻 보기에는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민폐 캐릭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미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 단서들을 부지런히도 모아온다. 그녀는 주인공 채아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106동 101호의 숨겨진 과거와 기이한 소문들을 물심양면으로 나르며 소설 속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게 다양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소설의 후반부로 향할수록 그동안 숨겨져 있던 101호의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은 심리적인 공포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근원을 알 수 없었던 소문들 이면에는 결국 외면당한 한 여성의 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밀려오는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특히 책을 읽기 전과 후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전엔 화목한 가정의 상징처럼 생각되던 마당이 책장을 덮고 난 지금은 무서워서 1층만큼은 꼭 피하고 싶다고 느꼈다. 평화로워 보이던 마당이 딸린 1층이라는 공간이 누군가 무슨짓을 했을지 모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작품의 여운때문인지 앞으로도 1층만큼은 본능적으로 피하게 될 것 같다.


심리 미스터리에 오컬트 호러를 더한, 익숙한 장소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설 '급매 106동 101호'를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네후네 하야세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넷 괴담이나 호러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방식은 단순하다.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 혹은 일상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데서 오는 전율이다. 네후네 하야세의 '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역시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호러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이들을 모집한다는 수상한 구인 광고, 월세 사흘을 앞두고 얼마 안되는 전 재산으로 도망친 청년,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와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기이한 입주 조건까지.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진짜 매력은 정형화된 공포의 틀을 깨부수고 서늘함과 따스함을 기묘하게 교차시키는 독특한 감각에 있다.


작품을 읽으며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단연 옆집 괴이에 대한 묘사다. 시커멓게 짓무른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긴 혀와 그 혀끝에 달린 눈알로 세상을 보는 존재라니. 그 글자만으로도 기괴하고 기분 나쁜 시각적 이미지가 고스란히 전달되지만 표지의 일러스트에서 표현되는 기괴함까지 더해져 이 괴이에 대한 상반된 두가지 느낌이 완벽하게 대비된다. 이 괴이에게서 묘한 힐링감을 느낄 수 있다니, 작가의 역량에 한번 더 감탄하게 된다.


작가 특유의 끈적끈적한 감각으로 표현된 공포 묘사는 대단히 뛰어나서, 읽는 내내 피부에 축축한 한기가 들러붙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특히 목이 180도 돌아간 여자가 등장하는 장면은 본격 호러 소설로서의 장르적 쾌감을 완벽하게 충족시킨다. 모르면 알라는 그 기괴한 멘트는 압도적인 외관에 더해져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더한다.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는 기이한 존재들은 그 자체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일상을 침식해 들어온다.


재미있는 점은 이 끔찍한 비주얼의 옆집 괴물을 대하는 주인공 다카히로의 태도이다. 그는 혀끝에 눈이 달린 괴물을 보면서도 그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밥솥보다 낫다'며 덤덤하게 반응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을 법한 상황에서 백번 양보해도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무덤덤함이다. 이 괴물 또한 겉모습과 달리 묘하게 반전 매력이 있다. 유튜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나도 전혀 모르고 있던 잘 알지 못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에 대해서까지 지식을 뽐낸다. 끔찍한 외형과 현대적인 지식의 괴리에서 오는 기묘한 유머는 독자로 하여금 공포감을 내려놓고 실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다카히로가 이토록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그의 비극적인 배경에 있다. 그에게는 옆집의 정체불명 괴물보다 훨씬 더 무서운 현실이 존재했다. 바로 '그 사람'이라 불리는 자신의 친어머니이다. 다카히로는 어머니라는 절대적인 공포를 피해 이 기괴한 아파트로 도망쳐온 존재다. 자식을 지켜주고 사랑해 주어야 할 가족이 오히려 괴이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되어 삶을 옥죄어 오는 현실. 작품은 다카히로의 주변을 맴도는 진짜 괴이들과, '그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현실적 공포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이 교차 연출을 통해 독자는 초자연적인 마물보다 인간의 비틀린 집착이 주는 공포가 얼마나 더 잔인하고 깊은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무서운 게 너무나 많아서 역설적으로 더는 무서울 게 없어져 버린 청년만이 이 아파트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정은 서글프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힐링 호러를 기대했다. 하지만 초반부의 압도적인 긴장감과 끈적한 공포 묘사를 마주했을 때는 전혀 힐링스럽지 않은, 그저 본격 호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의구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매일 밤 가공의 괴담을 들려주며 "무서웠어?"라고 묻는 괴물과 젤리를 나누어 먹고 젠가를 하는 일상. 역설적이게도 다카히로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받지 못한 온기를,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존재들이 가득한 아파트의 옆집 괴이에게서 받으며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괴물보다 잔혹한 세상에서 도망친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괴물의 교류는 묘한 따스함을 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 페이지의 끝에 도달했을 때 마주하는 '계속'이다. 소설은 명확한 닫힌 결말 대신 '계속'이라는 단어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이 마무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이 문장 하나가 주는 안도감은 상당하다. 그것은 다카히로가 앞으로도 그 기괴한 아파트에서 옆집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이라는 약속이자, 이 기묘하고도 매력적인 호러 세계관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미 속편이 출시되었다고 하니 조만간 국내에서도 다카히로와 이웃집 괴이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 '입주 조건'이 던지는 현대인의 고독과 부모의 가스라이팅 같은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은 뒤로하고 그냥 이 둘이 투닥거리며 건네는 괴담만으로도 이 작품은 훌륭한 호러 소설이다. 오컬트 호러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 '입주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를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살인 공약 - 표와 피의 잔혹사
김주석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거철만 되면 온 동네에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들이 온갖 좋은 공약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라기보다 어떻게든 표를 얻으려는 계산과 욕심이 가득해 보일 때가 많다. 김주석 작가의 소설 '살인 공약 - 표와 피의 잔혹사'는 바로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선거판을 배경으로 한 엄청 묵직하고 리얼한 정치 스릴러다. 처음에 '살인 공약'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블랙코미디처럼 웃기면서도 뼈가 있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책을 펼쳐보니 진지하고 몰입감 넘치는 찐 정치 스릴러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대사 하나하나가 진짜 현실에서 사람들이 쓰는 말 같았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 성향이 아예 반대인 부부가 집에서 투닥거리며 싸우는 장면은 진짜 아는 사람들의 대화를 옆에서 몰래 엿듣는 것처럼 실감 났다. 게다가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보는 2찍, 매볼쇼, MZ, 엠코, 스윗영포티 같은 요즘 트렌디한 단어들이 살짝 변경되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더 흥미진진했다. 이름만 살짝 바꿔서 나오지만 누구나 딱 보면 "아, 그 사람!" 하고 알아챌 수 있는 유명한 한국사 강사 출신 정치 유튜버도 등장하는데, 이런 현실적인 요소들 덕분에 소설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는 피해자의 입안에서 '말의 물건'이 발견되는 소름 돋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현직 도지사가 내걸었던 5대 공약에 맞춰서 연쇄 살인이 벌어지는데,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선거판 전체가 뒤집어진다. 그냥 범인만 잡는 뻔한 형사물이 아니라, 경찰 안에서 라인을 타고 줄타기를 하거나 권력자들끼리 뒤에서 머리싸움을 하는 과정까지 촘촘하게 그려져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양 팀장, 현장 감각은 좋은데 전형적인 TK 보수 꼴통이죠.

막내 서한솔은 온라인에 서식하는 이대남으로 번식을 포기한 여혐 종자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등장인물들이 다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입체적이라는 데 있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뉘지 않는다. 보수나 진보, 혹은 이대남 같은 말 한마디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인간들이다. 좌파든 우파든 저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명분이 다 있고, 반대편에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위선적인 모습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대비되어서 캐릭터 하나하나가 진짜 매력 있었다.


특히 주인공인 오승표 형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오 형사는 지금 돈이 없어서 빚더미에 앉아 있으면서도 제네시스 GV80이라는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이 카푸어 같은 모습이(물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처음에는 그냥 허세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형사로서의 의무와 개인의 이득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오 형사의 상황을 딱 보여주는 상징 같아서 되게 신선했다.

오 형사는 수사를 하다가 만약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아버지가 남긴 땅값이 30억 원까지 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엄청난 딜레마가 시작되는데,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가 자기 통장에 30억을 꽂기 위해 은근히 수사를 망치고 특정 후보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 돋았다. 돈 앞에서는 신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솔직한 밑바닥을 보는 것 같았다.




"범인 잡으세요. 오 형사님은 그게 어울려요."


하지만 욕망의 덫에 걸려 좌측 깜빡이를 켤지 우측 깜빡이를 켤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오 형사는, 결국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돌고 돌아 형사로서 가야 할 바른길을 찾아간다. 그리고 진짜 사건 해결을 위해 뛰기 시작한다.


'살인 공약'은 전개도 엄청 빠르고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웰메이드 소설이다. 선거철마다 "도대체 누굴 뽑아야 하지?" 하며 덜 썩은 사과를 골라야 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정말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접하던 미스터리소설과는 결이 다른 정치스릴러만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을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