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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장미의 초대 ㅣ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도희 지음 / 씨큐브 / 2025년 7월
평점 :
#도서협찬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 흑장미의 초대 는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낸 작품이다. 사실 누구나 아는 동화는 아니고 거의 대부분은 접해본 동화들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뒤틀어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작가 도희는 이 책에서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테마 아래, 동서양의 전통 동화 11편을 뒤틀어 어둡고 욕망 어린 이야기로 다시 써낸다. 미녀와 야수, 백조왕자,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은 서양의 대표적인 동화부터 흥부와 놀부, 콩쥐팥쥐, 선녀와 나무꾼같은 우리나라의 전래동화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표현했다.
부끄럽게도 책을 꽤 많이 읽어왔지만 요린데와 요링겔은 잔혹동화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서구권의 동화의 원형을 크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원작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요링겔이 마녀에게 요린데를 납치당하고 지혜와 꾀를 써서 마녀로부터 요린데를 구출하는 내용이아닐까. 하지만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 흑장미의 초대는 다르다.
연인이 납치당하고 그 짧은 시간을 요링겔은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너무도 비인간적이지만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단순한 현실을 넘어 잔혹동화만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끔찍'한 결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기존 동화에서는 미덕과 순결을 강조했지만, 이 책에서는 각 인물들이 억눌렀던 욕망을 드러내며, 우리가 익히 알던 캐릭터들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그까짓 아내, 하나도 안 부럽다. 이래 되도 나는 비혼주의자라고!"
-중략-
폭포 옆에는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선녀 넷이 있었다. 하나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린 귀여운 선녀요, 하나는 머리를 가지런히 반만 묶어 정리한 청순가련형이요, 하나는 머리를 풀어 늘어뜨린 섹시한 선녀였다. P122
예를 들어 하필 네명의 선녀 중 근육질 선녀와 비혼주의자 나뭇꾼의 이야기나, 백조왕자와 사랑에 빠진 왕자의 서사처럼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관계와 감정을 다루며, 단순히 '다른 시선'이 아닌 새로운 ‘현실’을 제시한다. 단순한 19금에 걸맞는 자극적인 남녀간의 장면을 넘어 lgbt까지 넘나든다.
흑장미의 초대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단순한 파격이 아닌, 기존 동화 속 인물들의 억눌린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야기의 틀을 빌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질문을 던지고, 정답 없는 감정과 관계 속에 독자를 초대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화들이 어린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이제 현실에 직면해 권선징악은 그저 일어나면 행복해지지만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는 잔혹한 현실을 깨달은 성인들에게 이에 걸맞는 새로운 결말을 제시한다.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는 마녀에게 분명히 개인적인 잘못을 저지르지만 마녀는 복수로 성내 모든 주민을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연쇄살인마를 넘어 대량테러범에 가까운 행위를 벌이지만 오히려 권선징악은 커녕 마녀는 악행만 저지르고 이야기에서 퇴장해버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녀 벨과 야수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미녀와 야수의 공식 미녀 벨 조차 마녀보다는 외모가 떨어지게 표현되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가 얼마나 ‘착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빠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 그저 착함에 매몰당하지 않고 조금쯤은 자신에게 솔직해도 된다는 점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듯 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내 안의 욕망과 감정도 조용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제목에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라고 써져 있어 그 누구도 단순한 동화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페이지부터 등장하는 왕자와 마녀의 농밀한 정사장면은 분명 큰 각오를 하고 책을 펼쳐야 하게 만든다.
"임신하셨군요."
왕자의 웃음은 더욱 간사해졌고, 검지 손가락을 입술 위로 세우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P100
동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현실의 민낯을 마주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왕자는 잠자는 공주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공주가 왕 몰래 임신한 사실을 이용해 협박하기 까지 한다.
왕은 의자에 푹 기대앉은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공주를 흘깃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뚱뚱하고 못생긴 것이 사형시켜도 괜찮을 듯싶었다. P59
또 외모 지상 주의는 얼마나 심한지 그냥 뚱뚱하고 못생기면 사형시켜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왕도 등장한다.
착한 이야기만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충격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짜’ 이야기와 마주하고 싶다면 이 책은 훌륭한 초대장이 되어 줄 것이다.
색다른 분위기의 동화 비틀기를 접하고 싶다면 도희 작가의 성인들을 위한 잔혹동화 - 흑장미의 초대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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