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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최고은 옮김 / 반타 / 2026년 2월
평점 :

오늘 읽은 책은 연작 단편소설집 '매미 돌아오다'로 처음 접했던 작가, 사쿠라다 도모야의 첫 장편소설 '잃어버린 얼굴'이다. 국내에는 아직 '매미 돌아오다'만 소개되어 있지만, 치밀한 복선과 뒤통수를 멋지게 치는 반전, 그리고 에리사와 센으로 대표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능숙하게 구축해낸 필력을 이미 경험했던 터라 그의 첫 장편은 자연스럽게 기대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본격 단편의 고수’라는 평가를 받아온 작가가 장편에서는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보여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이 작품은 산속에서 얼굴이 훼손되고 손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되며 시작한다. 설정은 매운 맛 본격 미스터리 스타일이지만, 이야기는 예상과 다르게 잔잔하게 흘러간다. 수사계장 히노 유키히코의 일상이 차분히 펼쳐지고, 여러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다. 경찰서에 접수되는 민원, 동료 그리고 타 경찰서와의 은근한 경쟁 등 형사의 하루하루가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렇게 잔잔하게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사건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던 단서들은 어느 순간 하나로 얽히기 시작한다. 꼼꼼하게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가는 솜씨가 역시 사쿠라다 도모야!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
전작에서 이미 복선 회수의 정교함을 경험했기에, 나는 이악물고 뭐든 찾아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의심하며 읽었다. 작중에서 냉장고 속 볶음우동이 짰다는 표현, 경찰서 내 위장약 수량이 맞지 않는다는 사소한 언급까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정말 사소한 일상적인 내용인지, 아니면 나중에 충격적인 복선회수로 돌아올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의심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혹시 이것도 단서일까, 저 등장인물의 말투에 숨은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나 역시 히노와 함께 추리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한 방의 반전’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소설 전체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야기의 힘으로 승부한다. 느린 템포로 정통 추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며, 하나씩 단서를 찾고 그 단서에 맞춰 추리를 조금씩 고쳐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서 마치 실제 수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현실적인 속도감이 느껴진다. 기가막힌 트릭이나 비현실적인 천재 탐정 대신, 고뇌하고 망설이며 때로는 우왕좌왕하는 형사의 모습이 작품의 중심에 선다.
특히 히노의 사고를 따라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단서들을 조합하지만, 확신에 이르기까지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 모습이 이 작품을 읽으며 수많은 복선들 앞에서 갈팡질팡하던 나 자신과도 닮아 있어 더욱 공감이 갔다. 그래서 이 작품은 탐정소설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형사소설 혹은 경찰소설에 가깝다. 조직 안에서 움직이는 한 사람의 형사가 개인의 번뜩이는 추리력 대신 경찰의 수사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가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얼굴'은 정통 본격 미스터리의 뼈대를 지키면서도 경찰소설 특유의 현실성을 유지하며 특히 인간미를 강조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충격적인 반전의 여운도 오래 가지만 그 보다 곤히 자고 있는 딸래미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위해 소세지에 식빵을 말아 건네주고 싶게 된다.
기상천외한 장치 대신 논리와 구조로 승부하고, 한 방만 노리는 개연성 없는 반전 대신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로 쌓아올린 완성도 높은 반전으로 승부한다. 장편에서도 사쿠라다 도모야의 장점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앞으로 국내에 그의 다른 작품들이 더 소개되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미스터리장르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잃어버린 얼굴'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