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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즈
박소해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12월
평점 :

오늘 읽은 책은 박소해 작가님의 허즈번즈.
내게는 고딕호러제주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게 된 박소해작가님의 장편, 초 장편소설이다.
확실히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쓰는 게 쉽지 않았겠다.', '굉장히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 같다' 였다.
어느 순간 부터인지 책을 읽다보면 작품의 내적 재미를 떠나 이 작품을 썼을 작가의 세계가 먼저 궁금해지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왠지모르게 매우 오랜시간 공을 들여 벽돌을 쌓듯이 써내려갔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면 거의 읽지 않는 굉장히 한 쪽에 치우쳐진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은 마치 미스터리 소설인것 처럼 나를 유혹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 이상의 깊이를 지닌 역사, 오컬트 그리고 로맨스 소설이었다. 역사와 로맨스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여기에 오컬트라니 싶을 수 있겠지만 막상 읽어보면 무척 잘 읽히고 또 재밌다.
분명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 어느새 읽다보면 조금씩 얇아지며 이 소설이 끝나간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게 되는 걸 보면 확실히 이 작품은 재미있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핵폭탄이 투하되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재조일본인들이 황급히 떠나며 남은 적산가옥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주인공 권수향이 제주도에서 신내림을 받아 실제로 미래를 예지하고 귀신과 통할 수 있는 무당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 요소를 적산가옥 나가스 저택에 남아있는 유령과 연관지으며 몰입감을 더한다.
수향은 굶주린 부모에 의해 식량과 맞바꾸듯 팔려가듯이 혼인을 치르게 되고 대를 이을 손을 원하는 시아버지의 욕심에 따라 그의 아들 영우와 정기적으로 잠자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내 함께 하는 요일마다 남편이 다른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사실 나를 이 소설로 끌어들였던 소구포인트였던 매번 달라지는 남편의 정체는 이 작품내에서 크게 신비스럽거나 미스터리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영특한 수향은 금방 그 이유를 밝혀내고 오히려 역으로 이를 이용하기까지 하는데, 스포일러가 될 까 언급은 조심스럽지만 작품의 초중반부에 그리고 큰 분량을 할애하지 않고 허즈번즈에 대한 비밀은 금새 밝혀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 미스터리 포인트를 지나 더 흥미롭게 이어져간다.
사실 수향이란 케릭터 자체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광복을 맞아 해방은 남자들의 것이라며 자신은 여전히 해방되지 못했다는 독백은 일제시대의 참혹함을 겪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어리석음처럼 느껴졌고 적산가옥을 얻게 되 기뻐하는 부모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점은 철부지의 투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허즈번즈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는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잘못된 복수의 방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주적을 용서하다니 싶어 조금은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바라보니 나름의 이유가 느껴지며 조금씩 수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공범처럼 느껴졌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해묵은 원한을 가지고 있던 누적된 원한의 주적처럼 느껴졌고 또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을 남겨두는 편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적산가옥에 대한 시선은 해방의 기쁨은 모르지만 그래도 조국의 원한을 담은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타인의 큰 상처보다 자신의 티눈이 더 신경쓰인다는 말처럼 제주에서 직접적으로 일제치하의 탄압을 느껴보지 못한 수향에게 광복은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가장 뛰어났던 점은 책을 보며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머리속에서 이미지를 시각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80년을 거슬러 당시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해 작품에 몰입감을 한 껏 끌어올리는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바로 행방직후 사람들이 일장기 위에 검은 먹으로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올드랭사인의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왜 박소해작가를 시각화에 강한 이야기꾼이라고 부르는지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면이었다. 나는 책을 읽다 잠시 멈추고 유투브를 켜 올드랭사인 애국가를 검색해 직접 들어보기까지 했다.
두꺼운 분량에 망설일 수 있지만 읽다보면 두꺼워서 아직 남은 이야기가 많아 다행이다 싶어지는 시대의 아픔과 당시를 살아가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거기에 도파민 펑펑 터져나가는 자극적인 이야기까지 더한 재미있는 소설 허즈번즈를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