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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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신작 장편소설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단순히 ‘대리 출산’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빈곤과 계급, 그리고 여성의 몸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소비되고 거래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설이다.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냉정하고도 집요한 시선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며,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함과 질문을 동시에 남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메인 주제인 빈곤과 대리출산, 여성의 몸 문제뿐만 아니라 그 주변부에 배치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었다. 유흥가 문제, 다문화가정, 빈국과의 매매혼 같은 요소들이 이야기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케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중 주인공 리키가 대리모를 ‘선택’하는 과정뿐 아니라, 의뢰하는 부부 역시 리키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아내와 닮았다는 이유로 리키를 선택하는 장면은 이 관계가 단순한 계약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돈이 얽힌 대등한 비즈니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과 욕망, 그리고 빈부격차에 얽힌 권력이 관여된 매우 비대칭적인 관계임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나는 이 계약이 과연 공정한 거래인지, 아니면 가난을 볼모로 한 일종의 노예계약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작품은 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어, 오히려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물이 끓고 8분이면 완숙이 되는게 닭이 낳은 알의 본질이라면 여자 몸속에 있는 난자의 본질은 뭘까. 삶으면 몇 분 만에 단단해질까. 이소가이 씨, 난자의 본질도 한번 알려줘 봐요.


작품 속 상징적 장치들도 매우 인상 깊었다. 이소가이의 ‘삶은 계란의 본질’은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난자와 비유되어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사실 백프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색 자전거'는 가장 기억에 남는 상징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은색 자전거는 한정된 아파트의 자전거 주차공간에 갑작스럽게 등장해 나머지 자전거의 주인들을 곤란하게 만들며 마치 빌런처럼 묘사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은색자전거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애초에 주차 공간이 부족한 구조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보이는 많은 상황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작품 속 다양한 상징들은 한 번에 이해되기 어렵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고민하게 만들고, 독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한편 주인공 리키에 대한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 리키는 종종 무기력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인물로 보인다. 가난 때문에 대리모를 선택하는 것도 그렇지만, 계약 이후 규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런데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런 리키를 보며 ‘저러니까 그런 삶을 살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를 넘어, 내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불행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은 리키를 평가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런 평가를 내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이 소설은 인물들의 입체적인 변화가 돋보인다. 유코, 모토이, 리키 모두 초반과 후반의 모습이 크게 다르며, 평면적인 케릭터로 소비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은 성장하고, 어떤 인물은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며 독자의 예상을 벗어난다. 특히 리키의 마지막 선택은 이 작품의 핵심이자 가장 예상하지 못했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결국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질문을 남긴다. 선택은 과연 자유로운 것인가,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거래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명확한 답 없이 질문 그 자체로 남겨지며, 그래서 책장을 덮은 후에도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운이 남는 결말과 함께 이야기 뒤에 남겨진 그녀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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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사라졌다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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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가즈키 일본소설 친구가 사라졌다 서평 문예춘추사 출간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가네시로 가즈키라는 작가와 그의 대표작인 ‘좀비스 시리즈’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솔직히 초반에는 조금 따라가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친구가 사라졌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청춘 미스터리 장르의 느낌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이미 어느 정도 쌓여 있는 상태처럼 느껴져서, 내가 뭔가 놓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런 낯섦보다는 오히려 궁금증이 더 커졌다.


특히 미나가타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대학생 한량처럼 보이지만, 사건에 점점 깊이 들어가면서 보여주는 태도나 선택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사라진 친구를 찾는 과정도 그냥 미스터리 사건 해결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들이 얽혀 있어서 예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읽다 보니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빠르고 대사도 살아 있어서 지루할 틈은 거의 없었다. 뭔가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도 들었고, 장면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과연 뭘까?’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착한 일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선택 뒤에 따라오는 책임이나 위험까지도 포함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곳이 생각보다 밝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겉으로는 자유롭고 즐거워 보이지만, 그 안에 복잡한 인간관계나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 대학생활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궁금해졌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다 읽고 나니까 오히려 이 작품 자체보다도 미나가타의 과거가 더 궁금해졌다. 자연스럽게 좀비스 시리즈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처음에는 시리즈를 안 보고 읽어서 아쉽다고 느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더 흥미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가볍게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책이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이 작품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다 읽고 나면 한 번쯤 다시 떠올리게 되는 이야기였고,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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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 2 - 그 어깨를 감쌀 각오
가미시로 교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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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제목부터 라노벨느낌 물씬 풍기는 소설, 가미시로 교스케의 '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 2: 그 어깨를 감쌀 각오'.

24년 8월에 1권이 출간되었으니 딱 20개월만에 신작이 출간된 셈이다.

라이트노벨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제목에 얼핏보면 일본만화책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일러스트의 표지까지, 한 때 일본 만화와 라노벨에 빠져 살던 전(?) 오타쿠로써 가슴설레는 작품으로 심지어 30대가 된 이후에 최애 장르가 추리, 미스터리 소설로 바뀐 내게 딱 맞는 라노벨 풍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기까지 하다.


추리소설이면서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작품이 많지는 않겠지만 또 적다고 할 수도 없을텐데, 가미시로 교스케의 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2가 수많은 비슷한 분위기의 추리소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작품인 이유는 아케가미 린네의 '자명한 이치'에 있다.


아케가미 린네는 신의 계시라고 불릴 정도의 직관에 가까운 추리로 본인도 추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과정을 생략한 채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게 된다. 본인도 자신의 추리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여러번 곤란을 겪게 되고 결국 교실을 떠나 외톨이가 된다.

주인공 이로하는 린네를 다시 교실로 돌려놓기 위해 린네가 도달한 진상을 논리적으로 추리해 린네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 소설의 독특한 추리기법이 바로 이 역추리에 있다.


보통 추리소설이라면 사건이 벌어지고 단서를 하나씩 찾아 추리를 조금씩 완성시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는 방식이라면 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는 먼저 범인이 밝혀지고, 이에 해당하는 추리의 조각을 모으는 방식. 이번 신작인 2편에서는 심지어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에 범인을 맞추기까지 한다.


물론 1편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이번 2편은 개인적으로 더욱 내 취향에 가까웠는데, 1편이 세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집 느낌의 작품이었다면 이번 2편은 작은 에피소드 하나와 메인이 되는 큰 에피소드 하나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


거기에 학급에 숨겨진 배후가 있고 흑막이 교실에 계급을 부여해 마음대로 조종한다라는 미친 설정으로 독자의 도파민을 마구 터트린다. 거기에 추리소설이면서도 라노벨 느낌을 물씬 풍기는 19금 유머(24센티미터 남자...)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아름다운 일러스트(는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볼 때는 조금 조심해야 하긴 할 것 같았다.), 삼각관계에 짝사랑과 둔감남등 온갖 로코에 등장할 법한 요소들이 버무려져 있다.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 그 자체로도 굉장히 탄탄한 작품이었다는 것인데, 단면도와 객실배치도, 타임테이블까지 등장해 알리바이를 추리하는 정말 제대로 된 정통 추리소설의 요소도 가지고 있어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 종합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게 느껴졌다.


한없이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이 단 하나도 죽지 않는 일상 추리소설, 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2를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1편을 안봤으면 꼭 1편부터 보길 추천드린다.



추리소설과 로맨틱코미디 두 장르 모두 만족시킨 가미시로 교스케 작가의 내가 대답하는 너의 수수께끼 3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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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아오사키 유고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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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다 살다 이런 환상적인 라인업의 일본 추리소설 앤솔러지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만 모아놓은 앤솔러지이라니...

사실 나는 일본의 신본격 1세대 작가들 중에서는 우타노 쇼고나 노리즈키 린타로는 알아도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은 거의 접해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솔러지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만으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 대해 읽어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길 정도였다.


참여한 작가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부터 '엘리펀트헤드'까지 작품의 도덕성, 윤리관을 빼고 순수 고자극 도파민 넘버원을 꼽으라면 항상 내 마음속 고트 그 자체인 시라이 도모유키부터 결말의 반전이 주는 임팩트 하나로 나머지 단점들을 하나도 보이지 않게 만든 내 인생추리소설 '방주'의 유키 하루오까지...!


내 최애 두 작가의 작품이 한 권에 실린 것만 해도 놀라운데 나머지 작가들의 라인업도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문제의 작품 엘리펀트 헤드가 출간된 해, 엘리펀트 헤드를 제끼고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과 관련된 상을 휩쓴 '지뢰 글리코'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

기억술사라는 작품으로 처음 알았고 '꽃다발은 독'으로 믿고 보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오리가미 교야.

시인장-마안갑-흉인저로 이어지는 시리즈로 알게 되었고 이제는 '디스펠'이라는 충격적인 작품으로 오컬트호러소설로 내게는 제 2의 미쓰다 신조처럼 느껴지는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

거기에 '2021년도 입시'라는 제목의 추리소설이 수록되었던 내 인생 단편소설집 마트료시카의 밤의 저자 아쓰카와 다쓰미까지...


이런 화려한 라인업 덕분에 딱 한 명 처음 접하는 작가 이치호 미치의 작품마저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될 정도로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한 라인업의 작품집이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앤솔러지라는 주제에 걸맞게 수록된 작품들은 그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와 함께 전개된다. 그와 동시에 '블랙 미러'와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의 수수께끼'와 같은 작품에서는 시라이 도모유키나 유키 하루오 작가가 직접 작품속에 등장해 자신의 작가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작품을 빌어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리스가와 선생님은 창작물과 작가의 인격을 안이하게 연결 지을 생각은 없다고 하셨지만, 저는 지금 진심으로 이해했어요. 이런 사람이 그런 소설을 쓰는구나 하고. 아리스가와 선생님의 책을 좋아해서 뿌듯해요. 앞으로도 계속 읽을게요. by 이치호 미치


-그리고 '수사 선상의 노을' 정말 좋았어요. 외국에 있어서 전자책으로 읽었어요. 학생 아리스 다섯 번째 장편 좀 빨리 내주세요. 데뷔 35주년 축하드립니다. by 유키 하루오


-빨리 소설을 써 주세요,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by 이마무라 마사히로


그리고 이런 인사들을 보고 있으니 이제 나도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제대로 된 앤솔러지의 역할이 아닐까 싶으면서.


재능이 한창 물오른 일곱명의 젊은 천재작가들이 작가로서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추리배틀쇼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를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이런 라인업은 두번 보기 힘들테니 기회가 왔을 때 꼭 즐겨보시길!

언젠가는 이 앤솔러지에 참여했던 작가 한명 한명에게도 데뷔 35주년을 맞아 앤솔러지가 출간될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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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라이트와 유인등 에리사와 센 시리즈 1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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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다 도모야의 연작단편집 '서치라이트와 유인등'을 읽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추리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건이 나오고, 단서를 따라가고,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 그런 전형적인 구조를 예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까 느낌이 꽤 달랐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느린 편이라서 처음에는 조금 적응이 안 됐는데, 읽다 보니까 오히려 그게 이 작가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출간작인 매미 돌아오다를 읽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에리사와 센 시리즈는 이런 맛에 읽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에리사와 센’이라는 조금은 특이한 곤충탐정이 등장하는 연작단편집인데, 특이하게도 각 단편의 주인공은 에리사와 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그를 만나게 되는 인물들이 주인공처럼 표현 된다. 그래서 에리사와 센은 항상 사건 속에 있으면서도 사건의 해결을 주도하지는 않는다. 조용히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 사건의 핵심을 짚어낸다. 곤충을 좋아하는 탐정이라는 설정도 매미 돌아오다를 읽을때는 많이 낯설었는데, 이제는 그 설정이 캐릭터랑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관찰하는 방식이 정말 곤충을 보듯이 세세하고 집요해서, 작은 단서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총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서 표제작인 '서치라이트와 유인등'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화재와 표본'이랑 '나나후시의 밤'이 더 기억에 남았다. 두 작품 모두 기존의 에리사와 센 단편소설과는 그 느낌이 다르게 느껴져서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에리사와 센 특유의 여유롭고 따스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그런 단편들 속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 소설다운 섬뜩함이 살아있는 작품이라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이 책에서 가장 특이하다고 느낀 점은, 분명히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데도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다는 거였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강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면서 읽는 사람을 몰아붙이는 느낌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아니라 천천히 따라가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몸에 힘을 빼고 그냥 편하게 읽게 됐고, 어떤 부분에서는 사람이 죽는 추리소설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힐링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호버링 버터플라이'의 마지막 페이지는 사쿠라다 도모야 식 힐링 그 자체! 따스한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말장난이었다. 일본어 특유의 발음을 이용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보통 이런 건 각주로 설명이 붙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번역이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설명을 보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그 소나기’라는 표현을 ‘구사나기’로 착각하는 장면이나, ‘젠장’이랑 ‘주인장’의 발음이 비슷한 걸 이용한 부분 같은 게 기억에 남는다. 이런 요소들이 이야기 분위기를 더 가볍고 친근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쿠라다 도모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엄청 긴장감 넘치고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사람한테는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대신 편안하게 읽으면서 책장을 덮은 뒤 긴 여운에 빠져 이야기를 다시한번 돌이켜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분위기의 추리소설도 꽤 괜찮다고 느꼈고,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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