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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아포칼립스
연상호.전건우 지음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6년 3월
평점 :
메디컬좀비소설 연상호 전건우 지음 닥터아포칼립스 와우포인트퍼블리싱 은행나무출간 서평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연상호와 전건우 두 작가의 이름을 보고 두 편의 좀비 아포칼립스를 담은 앤솔러지 작품일 것이라 예상했다. 각각의 개성이 강한 두 창작자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보니 '닥터 아포칼립스'는 예상과 달리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장편소설이었다. 이 점에서 약간의 의외성이 있었지만, 동시에 두 작가의 협업이 어떻게 하나의 세계관으로 완성되었는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으로 잘 알려진 연상호 감독이 집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더 큰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인간 군상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이번 작품에서도 어떻게 드러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좀비 바이러스의 기원 설정이었다. 단순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이나 실험 실패가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해 시베리아의 얼음이 녹으면서 그 속에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가 퍼져나간다는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와도 연결되며, 독자로 하여금 ‘이 이야기가 완전히 허구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섬뜩한 상상까지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가 서울 홍대 한복판에서 시작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익숙한 공간이 순식간에 재난의 현장으로 변하는 과정은 독자의 몰입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작품들이 장기간에 걸친 생존기와 사회 붕괴 과정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면, '닥터 아포칼립스'는 매우 짧은 시간에 집중한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소녀를 살리기 위한 수술이라는 긴박한 상황, 그리고 화이트아이(좀비)로 둘러쌓인 병원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이처럼 제한된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서사는 오히려 긴장감을 더욱 극대화시키며, 독자가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이 작품은 단순한 좀비 스릴러를 넘어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감염된 존재를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그리고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 과연 언제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는 독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닥터 아포칼립스'는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에 의존하는 작품이 아니라, 장르적 재미와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이라고 느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익숙한 좀비 장르에 새로운 설정과 전개 방식을 더해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연상호 감독 특유의 긴박한 연출 감각과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잘 살아 있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인물들의 선택과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어 더욱 인상 깊었다.
영화 부산행을 재미있게 본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