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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 서평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문학동네 출간 서평
나는 무척 많은 공포영화와 스릴러 영화를 보며 성장했습니다.
그 때 본 영화들은 항상 이상한 가면을 쓴 연쇄살인마가 등장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말 그대로 사람을 썰어버리는 슬래셔 무비에 가까웠습니다.
연쇄살인마들은 차례차례 사람을 죽인 후 가장 연약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마지막 먹잇감으로 아껴놓다가 되려 역으로 당해버리거나 혹은 놓쳐버리게 됩니다.
이 소설,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은 영화 할로윈의 로리 스트로드, 스크림 시리자의 시드니 프레스콧, 13일의 금요일의 앨리스와 같은 파이널 걸의 영화가 끝난 후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파이널 걸, Final Girl은 공포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공포영화에서 미친 살인마는 괴짜, 운동광, 경찰을 다 해치우고 맨 마지막으로 한 소녀를 쫓습니다. 그 소녀는 이런 외딴 갬핑장에서 놀면 안된다고 친구들을 말렸던 인물이라고 소설은 말합니다.
사실 이 파이널 걸은 1980년대의 영화 연구자 캘러 J. 클로버가 가장 먼저 자신의 저서에서 이론화한 개념으로 최후의 생존자라는 개념에 더해 도덕적으로 순수하며 조심스러우며 친구들이 죽는 상황 속에서도 냉정하게 행동하며 지능적이며 상황파악이 빠르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영화가 진행될 수록 점점 강해져 후반부에는 살인마에 맞서 싸우거나 직접 죽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파이널 걸이 살아남으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그녀는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야하며 그 일의 트라우마는 평생 잊혀지지 않습니다. 소설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의 여섯 파이널 걸들은 이제 나이가 50에 가까워지고 있는 아주 오래된 생존자들입니다.
여섯 생존자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그 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니는 자급자족하는 낙향인이 되었고, 에이드리엔은 셀프헬프 활동에 빠져들었고, 메릴린은 결혼이란 구덩이에 머리를 묻어버리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고, 헤더는 약에 취했으며 줄리아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p48) 그리고 주인공 리넷은 항상 권총을 지니고 다니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신발을 확인하고 누군가가 미행하는지 끊임없이 체크하는, 마치 특수비밀요원이 된 것 처럼 자신의 주위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습관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의 여섯 생존자들은 또다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로부터 생명을 위협받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소설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의 가장 독특했던 점은 중간 중간 챕터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는 검은 페이지였습니다.
각종 슬래셔 무비에 관한 기록이나, 실제 생존자들의 인터뷰 등이 리얼하게 부록처럼 첨부되어 있는데, 소설의 중반까지는 실제로 작가가 조사한 실제자료인줄 알고 '팬핸들 정육점 갈고리'라는 영화가 실제로 있는지 검색까지 해보았을 정도였거든요.
"많이 아파?"
"다리에 총 맞은 거? 내가 하반신 마비라서 묻는 거야? 그러면 안 아플 것 같아? 이렇게 해보면 어때, 리넷. 너도 네가 사용하지 않는 부위에 총을 맞아보는 거야. 이를테면 머리라든가." 371p
"리넷 타킹턴이 누구에요?"
장난하나?
"파이널 걸이요."
"그런 파이널 걸도 있었어?" 275p
이 작품이 무엇보다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혔던 이유는 중간중간 피와 살점이 튀기는 무시무시한 분위기와 은근 잘 어울리는 블랙유머 덕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피와 살육과 블랙유머가 조화롭게 섞인 스릴러 슬래셔 소설인줄만 알고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이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장르의 재미까지 보여줍니다.
초반에 기억나는 문장이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죽고, 여자는 단지 여자라서 죽는다구요.
그러면서 결국 살아남는 것은 파이널 걸이며, 앞서 사망한 여러 경찰과 정원사, 운동선수 들은 대부분 남자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웃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한 아이러니로 시작해 이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결말까지, 슬래셔 무비의 학살자들의 멍청한 동기는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며 순수 재미만으로도 역대급이었던 소설, 그래디 헨드릭스의 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