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부인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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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나비 부인 살인 사건.

내게 요코미조 세이시 작가는 멀고도 가까운 그런 존재였다.

거의 읽어보지 못했지만 김전일을 통해 매번 소식을 전해듣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작가로 가장 처음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에 입덕한 후에는 카도카와에서 주최하는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의 32회 수상작인 가와이 간지의 데드맨과 34회 대상 최종 후보작이었던 시라이 도모유키의 명탐정의 제물을 통해 건너건너 간간히 그 이름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읽고 싶었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에 '신주로'를 비롯한 유리 린타로 시리즈가 시공사 출판사를 통해 새 옷을 입고 출간되었고 덕분에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되어 이번에 새로 출간된 나비 부인 살인 사건까지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책, 나비 부인 살인 사건이 좋았던 점은 표제작이자 책의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비 부인 살인 사건 외에도 추가로 두 편의 단편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점이었다.

두 작품 모두 유리 린타로 시리즈에 속하는 단편으로 '거미와 백합', '장미와 율금향'까지 읽고 나면 유리 린타로 월드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게 된다.

나비 부인 살인 사건은 소년탐정 김전일에 많은 영향을 끼친 긴다이치 쿄스케 시리즈의 전신 유리 린타로 시리즈답게 익숙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공연을 앞둔 오페라 극단 내에서 기이한 살인이 일어나며 이내 이 살인은 연쇄살인으로 발전한다. 하나의 살인에서 파생되듯 이어지는 또 다른 살인도 익숙하지만 콘트라베이스 케이스에서 악기 대신 발견되는 하라 사쿠라의 시신은 비쥬얼 적으로 큰 충격과 함께 연쇄살인의 서막을 연다.

나비 부인 살인 사건은 이미 해결된 사건을 추리 소설로 쓰기 위해 다시 한번 회상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되는데, 그 맛을 더 살리기 위해 옛추리소설의 감성을 제대로 살리는 독자를 향한 도전문구를 무려 두번이나 언급한다.

덕분에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책 옆에 노트를 두고 밤 10시 15분에 도쿄를 출발한 열차가 다음날 8시 7분에 오사카에 도착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정보들을 필기까지 해 가며 이 문제에 도전해보았다. 물론 실패했지만.

작 중 악보에 그려진 암호를 푸는 문제는 악보까지 그대로 인쇄되 독자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했다.

소설을 읽고 나면 묘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교묘한 계획 범죄가 많을 수록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부분이다. 얼핏 들으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인가 싶지만 유리 린타로의 말을 듣다보면 묘하게 설득 당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작품 답지 않게 반전이 무척 충격적이며 세련되었다고 느껴진 작품이었고, 사건 외 적으로도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내용도 함께 있어 선물처럼 즐길 수 있었던 소설이었던 것 같다.

사건의 동기보다는 알리바이와 같은 트릭 그 자체에 모든 것을 집중한, 정교하게 잘 쌓아올린 고전 추리 소설의 정석 그 자체였던 소설 '나비 부인 살인 사건'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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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즈
박소해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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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박소해 작가님의 허즈번즈.

내게는 고딕호러제주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게 된 박소해작가님의 장편, 초 장편소설이다.

확실히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쓰는 게 쉽지 않았겠다.', '굉장히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 같다' 였다.

어느 순간 부터인지 책을 읽다보면 작품의 내적 재미를 떠나 이 작품을 썼을 작가의 세계가 먼저 궁금해지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왠지모르게 매우 오랜시간 공을 들여 벽돌을 쌓듯이 써내려갔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면 거의 읽지 않는 굉장히 한 쪽에 치우쳐진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은 마치 미스터리 소설인것 처럼 나를 유혹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 이상의 깊이를 지닌 역사, 오컬트 그리고 로맨스 소설이었다. 역사와 로맨스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여기에 오컬트라니 싶을 수 있겠지만 막상 읽어보면 무척 잘 읽히고 또 재밌다.

분명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 어느새 읽다보면 조금씩 얇아지며 이 소설이 끝나간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게 되는 걸 보면 확실히 이 작품은 재미있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핵폭탄이 투하되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재조일본인들이 황급히 떠나며 남은 적산가옥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주인공 권수향이 제주도에서 신내림을 받아 실제로 미래를 예지하고 귀신과 통할 수 있는 무당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이 요소를 적산가옥 나가스 저택에 남아있는 유령과 연관지으며 몰입감을 더한다.


수향은 굶주린 부모에 의해 식량과 맞바꾸듯 팔려가듯이 혼인을 치르게 되고 대를 이을 손을 원하는 시아버지의 욕심에 따라 그의 아들 영우와 정기적으로 잠자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내 함께 하는 요일마다 남편이 다른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사실 나를 이 소설로 끌어들였던 소구포인트였던 매번 달라지는 남편의 정체는 이 작품내에서 크게 신비스럽거나 미스터리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영특한 수향은 금방 그 이유를 밝혀내고 오히려 역으로 이를 이용하기까지 하는데, 스포일러가 될 까 언급은 조심스럽지만 작품의 초중반부에 그리고 큰 분량을 할애하지 않고 허즈번즈에 대한 비밀은 금새 밝혀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 미스터리 포인트를 지나 더 흥미롭게 이어져간다.


사실 수향이란 케릭터 자체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광복을 맞아 해방은 남자들의 것이라며 자신은 여전히 해방되지 못했다는 독백은 일제시대의 참혹함을 겪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어리석음처럼 느껴졌고 적산가옥을 얻게 되 기뻐하는 부모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점은 철부지의 투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허즈번즈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는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잘못된 복수의 방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주적을 용서하다니 싶어 조금은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바라보니 나름의 이유가 느껴지며 조금씩 수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공범처럼 느껴졌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해묵은 원한을 가지고 있던 누적된 원한의 주적처럼 느껴졌고 또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을 남겨두는 편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적산가옥에 대한 시선은 해방의 기쁨은 모르지만 그래도 조국의 원한을 담은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타인의 큰 상처보다 자신의 티눈이 더 신경쓰인다는 말처럼 제주에서 직접적으로 일제치하의 탄압을 느껴보지 못한 수향에게 광복은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가장 뛰어났던 점은 책을 보며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머리속에서 이미지를 시각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80년을 거슬러 당시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해 작품에 몰입감을 한 껏 끌어올리는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바로 행방직후 사람들이 일장기 위에 검은 먹으로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올드랭사인의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왜 박소해작가를 시각화에 강한 이야기꾼이라고 부르는지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면이었다. 나는 책을 읽다 잠시 멈추고 유투브를 켜 올드랭사인 애국가를 검색해 직접 들어보기까지 했다.


두꺼운 분량에 망설일 수 있지만 읽다보면 두꺼워서 아직 남은 이야기가 많아 다행이다 싶어지는 시대의 아픔과 당시를 살아가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거기에 도파민 펑펑 터져나가는 자극적인 이야기까지 더한 재미있는 소설 허즈번즈를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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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V의 투숙객 그늘 단편선 1
양지윤 지음 / 그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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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 작가의 단편소설집 호텔 V의 투숙객을 읽었다.

작가의 말을 포함해 117페이지의 얇은 분량에 세개의 단편이 꼭꼭 눌러담아져있었던 이 단편소설집은 왠만한 벽돌책보다 읽으며 생각할거리들이 많았고 읽은 후 남는 여운이 깊었다.

나는 양지윤 작가를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기이하게도 이 책을 읽고나니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지만 그보다 작가 그 자체에 더 호기심이 생겨났다.

호텔 V의 투숙객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우리의 시간'과 '광인과 나'까지 총 세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표제작인 '호텔 V의 투숙객'이었다.

평소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해 추리소설이라면 동서양을 가리지않고 마구 읽어대던 나에게 이 작품은 낡았지만 오히려 고풍스러운 호텔 V에서 일주일씩 연장하며 오랜 기간 묵고 있는 기이한 투숙객의 사연이라는 왠지 모르게 신비롭고 어딘가 음습해보이는 이 이야기는 몹시 흥미로운 작품처럼 느껴졌다.

물론 지금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미스터리 소설이 전혀 아님을 알고 있다.

비밀스러운 사연을 가졌을 것 같은 여인도, 호텔 V에서는 조금 특이하지만 결국은 그냥 머물렀다 갈 한 명의 투숙객에 불과하다.

여인이 매 번 방 문 앞에 걸어 놓는 'Do not disturb'만큼은 조금 독특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호텔의 청소부, 종업원 그리고 지배인까지 여인의 주변을 스쳐지나가듯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나면 결국 이 단편소설은 호텔을 거쳐 지나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다 읽는 순간까지 이야미스의 끈을 놓지 못했지만 어찌되었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남는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이를 넘어서 좁은 해변가에 자리잡은 낡은 호텔을 담은 그 풍경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진다.

특히 여운이 남는 부분을 소개하자면.


직원들이 매일 보는 바다가 지겹지도 않냐고 물었다.

"세상에 같은 바다는 없어요."

그녀가 대꾸했다. 그건 틀린 말이다. 바다는 이론상 똑같다. 육지는 끊어져 있어도 바다는 끊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23p 호텔 V의 투숙객 중에서.


내가 보기에 인생이란 포악한 고양이 한 마리로 뒤집어지는 텃밭처럼 만만한게 아니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63p 우리의 시간 중에서.


한편 한편, 한 페이지씩 아껴가며 음미하게 되는 작품들을 꼭꼭 눌러담은 단편소설집 호텔 V의 투숙객의 여운을 연말을 맞아 모두와 공유하고 싶어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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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토호 - 모두가 사라진다
니이나 사토시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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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호러명가 북로드에서 출간 된 니이나 사토시의 공포미스터리소설 아사토호 - 모두가 사라진다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니이나 사토시의 작품이다.

1992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와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 수사과정을 수료했다는 내가 좋아하는 두가지 요소, 똑똑하며 젊다는 점을 모두 충족시키는 작가였기 때문에 특히나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모든 면에서 기대 그 이상이었다.

공포소설로서의 재미라고 할 수 있는 생생한 장면의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했고,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소재로 사용되는 모노가타리 역시 문학연구 수사과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전문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잘 표현되어 이야기에 전문성과 깊이감을 더해주었다. 심지어 호러 미스터리라는 표현에 걸맞게 반전이 주는 재미요소까지 확실하게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읽으며 피부로 와 닿았던 점은 작품의 주제의식이었다. 보통 호러소설이라고 하면 장르적 재미로 승부를 보는 경향이 많은데 이 작품은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전달하고자하는 메세지가 분명해 작품을 읽으며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작 중 주인공 나쓰히는 소꿉친구 아키토와 자매 아오바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던 중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오바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 사건 이후 아키토와 나쓰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아오바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둘의 기억 속에서만 아오바가 존재하게 된 것. 세계선을 이탈한 아오바를 꼭 찾아내겠다는 아키토의 약속은 시간속에 희미해지며 나쓰히는 대학생이 되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나쓰히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서 묘하게 익숙한 실종사건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아오바를 둘러싼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아키토와 함께 아사토호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작 중 모든 사건에 조금씩 발을 걸치고 있는 아사토호라는 소재 역시 훌륭하게 표현되었는데, 산일된 모노가타리의 일종으로 전문적이면서도 일본의 옛스러운, 적막하면서도 소름끼치는 옛 분위기의 공포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읽으며 역시 와세다 문학연구수사과정!이라며 연신 감탄했을 정도.


니이나 사토시의 호러미스터리소설 아사토호는 결국 원인과 결과,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통해 결과가 정해진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미 정해진 결과에 뒤늦게 이유를 가져다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심오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떠나서 공포소설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게 읽힌다.


읽는 내내 소름끼치게 무섭지만 한켠으로는 왠지모를 아련함을, 그리고 일본 특유의 신비스러움을 모두 담은 작품 아사토호를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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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정명섭 외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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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정명섭 외 3인 지음 한끼 출간


이번에 읽은 책은 네 편의 단편 작품으로 이루어진 앤솔러지로 메가 시티 서울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서울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이 책에 끌리게 되었고 다음으로 매력적인 앤솔러지의 표지 디자인에 반해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첫번째 작품인 정명섭 작가의 작품 '사라진 소년'부터가 40년 전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러한 앤솔러지의 컨셉에 맞게 독특한 레트로풍의 디자인으로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북테리어용으로 책장 한 켠에 고이 소장할만큼 마음에 쏙 드는 매력적인 표지였다.


미스-터리, 인터-뷰 와 같은 옛 느낌 물씬 풍기는 표기부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한자 병용까지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에 감탄을 하며 작품을 하나씩 펼쳐보았다.


그 중에도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아 보자면 가장 익숙한 작가인 정명섭 작가님의 작품이자 사회파 추리소설처럼 느껴졌던 사라진 소년이었다.


사실 이 앤솔러지에 참여한 네 분의 작가님들 중에 가장 익숙한 작가였기도 했으며, 다른 앤솔러지 푸른 수염의 딸들과 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를 비롯해 특히 재미있게 봤던 킬러 소설 미스터 쉐도우 덕분에 더 많은 기대를 하며 펼친 작품이기도 했다.


1987년 개웅산에서 네명의 소년이 실미도 사건으로 총살당한 군인들의 무덤을 찾아 산을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해 40년이 지난 현재로 돌아와 네 명의 소년 중 한명이 40년 전 그 날 실종된 친구의 편지를 받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서울 속 실미도 사건이라는 소재와 일상의 거리감이었다. 이 작품에서 실미도 사건은 소재 속 소재로 그렇게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작품 속 가장 중요한 사건은 현재의 협박이며 그 다음이 40년 전 그날 사라진 초등학생 사건이며 마지막으로 실미도 사건이 파이를 차지한다. 결국 실미도 사건은 이 단편 작품 내에서 중요한 듯 비중이 크지 않게 다뤄진다. 실제 서울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역사적 사실로서의 실미도 사건 역시 딱 그정도의 거리처럼 느껴져서 더 울림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거창하게 뭘 하자는 것 보다 이름이라도 기억하자는 메세지와도 특히 잘 어울렸던 것 같고.


그 외에도 10년 째 한국에서 거주중인 외국인의 입장을 잘 살려 써내려간 사라진 여인과 재개발 광풍을 다룬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서 익숙한 지역인, 그래서 더더욱 생활감을 느낄 수 있는 개봉, 연희동, 혜화와 신촌 등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익숙한 곳에 얼마나 알지 못하던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숙하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었는데, 실제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역과 더 가까운 독자라면 얼마나 더 큰 감흥을 얻을 수 있을지 많이 부러워하며 이 책을 한번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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