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네후네 하야세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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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괴담이나 호러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방식은 단순하다.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 혹은 일상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데서 오는 전율이다. 네후네 하야세의 '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역시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호러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이들을 모집한다는 수상한 구인 광고, 월세 사흘을 앞두고 얼마 안되는 전 재산으로 도망친 청년,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와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기이한 입주 조건까지.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진짜 매력은 정형화된 공포의 틀을 깨부수고 서늘함과 따스함을 기묘하게 교차시키는 독특한 감각에 있다.


작품을 읽으며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단연 옆집 괴이에 대한 묘사다. 시커멓게 짓무른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긴 혀와 그 혀끝에 달린 눈알로 세상을 보는 존재라니. 그 글자만으로도 기괴하고 기분 나쁜 시각적 이미지가 고스란히 전달되지만 표지의 일러스트에서 표현되는 기괴함까지 더해져 이 괴이에 대한 상반된 두가지 느낌이 완벽하게 대비된다. 이 괴이에게서 묘한 힐링감을 느낄 수 있다니, 작가의 역량에 한번 더 감탄하게 된다.


작가 특유의 끈적끈적한 감각으로 표현된 공포 묘사는 대단히 뛰어나서, 읽는 내내 피부에 축축한 한기가 들러붙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특히 목이 180도 돌아간 여자가 등장하는 장면은 본격 호러 소설로서의 장르적 쾌감을 완벽하게 충족시킨다. 모르면 알라는 그 기괴한 멘트는 압도적인 외관에 더해져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더한다.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는 기이한 존재들은 그 자체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일상을 침식해 들어온다.


재미있는 점은 이 끔찍한 비주얼의 옆집 괴물을 대하는 주인공 다카히로의 태도이다. 그는 혀끝에 눈이 달린 괴물을 보면서도 그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밥솥보다 낫다'며 덤덤하게 반응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을 법한 상황에서 백번 양보해도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무덤덤함이다. 이 괴물 또한 겉모습과 달리 묘하게 반전 매력이 있다. 유튜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나도 전혀 모르고 있던 잘 알지 못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에 대해서까지 지식을 뽐낸다. 끔찍한 외형과 현대적인 지식의 괴리에서 오는 기묘한 유머는 독자로 하여금 공포감을 내려놓고 실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다카히로가 이토록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그의 비극적인 배경에 있다. 그에게는 옆집의 정체불명 괴물보다 훨씬 더 무서운 현실이 존재했다. 바로 '그 사람'이라 불리는 자신의 친어머니이다. 다카히로는 어머니라는 절대적인 공포를 피해 이 기괴한 아파트로 도망쳐온 존재다. 자식을 지켜주고 사랑해 주어야 할 가족이 오히려 괴이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되어 삶을 옥죄어 오는 현실. 작품은 다카히로의 주변을 맴도는 진짜 괴이들과, '그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현실적 공포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이 교차 연출을 통해 독자는 초자연적인 마물보다 인간의 비틀린 집착이 주는 공포가 얼마나 더 잔인하고 깊은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무서운 게 너무나 많아서 역설적으로 더는 무서울 게 없어져 버린 청년만이 이 아파트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정은 서글프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힐링 호러를 기대했다. 하지만 초반부의 압도적인 긴장감과 끈적한 공포 묘사를 마주했을 때는 전혀 힐링스럽지 않은, 그저 본격 호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의구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매일 밤 가공의 괴담을 들려주며 "무서웠어?"라고 묻는 괴물과 젤리를 나누어 먹고 젠가를 하는 일상. 역설적이게도 다카히로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받지 못한 온기를,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존재들이 가득한 아파트의 옆집 괴이에게서 받으며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괴물보다 잔혹한 세상에서 도망친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괴물의 교류는 묘한 따스함을 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 페이지의 끝에 도달했을 때 마주하는 '계속'이다. 소설은 명확한 닫힌 결말 대신 '계속'이라는 단어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이 마무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이 문장 하나가 주는 안도감은 상당하다. 그것은 다카히로가 앞으로도 그 기괴한 아파트에서 옆집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이라는 약속이자, 이 기묘하고도 매력적인 호러 세계관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미 속편이 출시되었다고 하니 조만간 국내에서도 다카히로와 이웃집 괴이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 '입주 조건'이 던지는 현대인의 고독과 부모의 가스라이팅 같은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은 뒤로하고 그냥 이 둘이 투닥거리며 건네는 괴담만으로도 이 작품은 훌륭한 호러 소설이다. 오컬트 호러 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 '입주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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