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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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키스의 변신과 순간의 오래된 소리

─배수아의 『바우키스의 말』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제목에서 등장하는 '바우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남편인 '필레몬'과 각각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우키스'가 보여주었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별의 순간을 배수아는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언어가 아닌 음악으로,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현실이 아닌 환상으로,

배수아가 그려낸 작별의 순간을 보면서 나는 그 순간의 오래된 소리를 상상해 보았다.

아득했고,

영원했다.

"그 순간이 다가오자 바우키스의 몸은 나무로 변했습니다. 내 음악은 그 바우키스의 변신의 순간에 그녀의 주변에

일어나고 있던 일들에 귀 기울이기입니다. 그 순간을 이루고 있던 오래된 소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한번 공명한 소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배수아, 『바우키스의 말』(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中

바우키스는 작별의 순간 뭐라고 인사를 건넸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몹시 궁금했다.

분명한 건 단 하나. "마침내 나뭇가지가 얼굴을 뒤덮기 시작한 최후의 순간, 일생 동안 내 입에서 살던 하나의 어휘가 해방되었다"는 사실.

나는 '배수아'라는 이름이 한국 문학에서 지니는 독보성에 대해서 늘 경외심을 품고 있었는데, 이번에 「바우키스의 말」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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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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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실재 사이, 그 어딘가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를 읽고

생각해보면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인간보다 비인간을 더 좋아했다. 내게 인간은 마음을 써야 하는 존재이고, 비인간은 마음을 주고 싶은 존재이다. 전자는 마음을 고갈시키지만 후자는 마음의 우물을 계속해서 기르게 만든다.

또,

생각해보면 대체로 그랬던 것도 같다. 나는 비인간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야기 속에서 만난 비인간은 한없이 이상적인, 허무맹랑한 나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길 바라는 내 꿈을. 세상 사람들이 타인의 절망과 허무를, 상실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길 바라는 그런 세상을.

김성중의 장편 소설 『화성의 아이』에는 탐사로봇과 신인류, 유령 개 등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삼백 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미래의 화성에 모여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함께 삶에서 오는 사랑과 상처를 공유하며 성장한다는 뜻이다.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는 환상과 실재 사이, 그 어딘가에서 신비로운 소재를 마구 끌어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경계의 벽이 부서지는 그 순간에 우리는 더 큰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이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 없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임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우물을 기르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화성의 아이'들이 열렬히도 보여준 자유롭고 신비한 사랑 이야기가 마침내 지구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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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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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채로 나아가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바닷가의 루시』를 읽고

유난히 길었던 여름을 보내면서 소설 클래스 하나를 신청해 들었다.

강좌명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모르는 채로 나아가기'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모르면서도, 모르는 채로 그냥 나아갔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만큼만 볼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이 다 처음인 현재에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온전히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모두 늘 록다운 상태에 있다는 생각.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저 헤쳐나가려고 애쓸 뿐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바닷가의 루시』, 中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바닷가의 루시』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었던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인 『내 이름은 루시 바턴』과 『오, 윌리엄!』에서도 등장했던 '루시 바턴'은 바이러스를 피해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떠난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것들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루시의 삶은 이전과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간다. 그 시절, 우리 모두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건은 벌어졌고, 상황은 펼쳐졌다. 소설 속에서 '루시'가 그러했듯이 우리는 여전히 모르지만, 여전히 나아간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가 퍼지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고,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혐오와 차별, 분열과 혼란의 시대에서

삶이라는 미지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고 계속 소환해내야 하는 것은

서로를 연결시켜 줄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무언가가 어쩌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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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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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멜로디와 빛으로 물든 지구의 태엽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를 읽고

누군가는 비웃을지라도,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다시,
믿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란 것을,
권은에게 증여된 카메라가 이 세상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작가의 말 中


앞서 '사람을 살리는 일의 위대함'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냈던 조해진의 단편 「빛의 호위」가 『빛과 멜로디』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로 되돌아왔다.

『환한 숨』에서도 그랬고, 『로기완을 만났다』에서도 그랬듯이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여러 번 밑줄을 그었는데, 한 생명에 깃든 무수한 생애와 현재를 사랑과 애정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는 권은과 기자로 일하는 승준은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소설은 현재의 시점에서 그들의 과거를 하나씩 비추면서 현재 변화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한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승준은 러시아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성 나스타를 인터뷰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영국에 머물고 있는 권은과 다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펼쳐지는 그들의 아득한 사연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가 되고, 승준이 권은에게 건넸던 카메라와 권은과 나스차가 나누어 가졌던 애절한 감정을 환기시킨다.

삶에서 죽음을 발견하고, 죽음에서 삶을 발견하게 되는 역설적인 그들의 취재 과정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멜로디와 빛으로 물든 지구의 태엽을 지금─여기로 불러온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현재 우리 삶의 꼭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여, 때로는 빛처럼 삶을 비추고 때로는 멜로디처럼 삶을 흐르게 하는 조해진의 소설이 바로 여기에 도달한 것이다.

문학이 우리 삶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기대를 조해진의 소설은 늘 상기시켜준다. 『빛과 멜로디』가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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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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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

─김멜라의 『환희의 책』을 읽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이 책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의 언어가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이 총체적으로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더 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멜라의 『환희의 책』에서는 세 마리의 곤충(톡토기, 거미, 모기)이 등장한다. 그들은 두 레즈비언(호랑과 버들)을 관찰하며 자신들의 삶을 연구한다. 나는 이 책을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는데, 어쩌면 다른 한 존재를 제대로 바라보는 일은 다른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저녁놀」과 「제 꿈 꾸세요」, 「이응 이응」에서도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들며 삶과 자연, 죽음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갔던 작가는 새로운 형식적 실험을 통해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그것은 아마 김멜라가 선사하는 또 다른 방식의 '환희'일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의 비인간-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읽게 되었다.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이 몇 있었고, 그 작품들을 보며 생각보다 내가 훨씬 더 편협한 시선으로 인간들을 바라보며 '인간애'를 잃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비인간-화자가 등장하는 김멜라의 작품을 읽은 뒤에 나는 친구들 앞에서도 여러 번 그 소설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도 했는데, 몇 번을 읽어봐도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다.

내게 김멜라의 소설은 단호하게 읽힌다. 정확히 바라보고 분명하게 세계를 이해해 보려는 그 단호함에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을 빼앗겼다. 『환희의 책』이 바로 그렇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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