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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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부크럼출판사 #서평

뭐지, 이 거북함은? 전혀 다른 기대를 품고 첫 장을 펼쳤던 탓인지 순간순간 훅 들어오는 적나라한 문장들에 ‘내가 지금 정영욱 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위로와 힐링이라 여기기엔 한 사람의 연애사를 너무 깊이 들여다본 것 같고, 뭔가 모를 찝찝함이 마음을 떠나지 않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결이 고운 문장을 만나다가 지나간 관계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상대를 해석하는 시선은 강하기만 해서 순간 마음이 멈칫했다.

이 책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비교적 솔직한 고백이며, 회상의 기록이라기엔 깊이 들어와 박혔다. 사랑을 미화하지도 않았고, 사랑 그 이면에 남겨진 감정들의 잔해들이 우리 삶에 남아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내 사랑은 책임과 시간의 무게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쉽게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과 관계의 깊이를 먼저 만나기 전에 감각이 먼저 도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밀도 있게 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다. 사랑의 육체적 기억이 그저 소비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본 독자라면 알게 될 테니까.

읽는 내내 나는 화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 사람을 사랑했던 ‘여자’의 눈으로 돌아가 바라보게 했다. 한 사람의 서사가 혹여나 다른 이의 사생활을 침범했다고 여기지 않길 염려하면서. 글이란 것이 그렇다. 글로 옮겨 오는 모든 것은 문학적인 표현이기 전에 존중을 담아야할 대상이라고. 사랑은 나의 것이었다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의 장면 장면은 ‘우리’가 된다. 어디까지 사랑을 쓸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 되묻게 된다.

사랑을 결핍으로, 육체적 친밀함을 그 결핍을 채우는 행위로만 볼 수 있을까. 온전히 자기 만족에 기인한 것이라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일까. 저자는 ‘사랑은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랑을 결핍과 갈증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독자에게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독자를 만난다면 관계 속에서 느꼈을 허기와 고독은 책임과 선택, 지속의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수단이 육체적 친밀함으로 이어진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고, 기억은 각자의 몫이며, 함께 한 시간은 공유된 기억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얼굴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외로움의 파생물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사랑을 어떻게 써야 할까. 상대를 결핍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미 기울어진 사랑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고백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책임의 문제라고 본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구원은 애틋했고, 따스했다. ‘포용’

위로의 언어를 기대한 독자를 위한 반전을 숨겨둔 책이 바로 <구원에게>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야만 이 책의 표지부터 이해가 된다. 사랑을 본능의 언어로 풀어내 감정을 씹고 삼키는 행위에 비교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또한 사랑을 피부의 촉감이나 냄새들과 같은 감각의 언어로 복원하기도 했다. 사랑의 언어는 한계가 없나보다. 구원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으니.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등장하는 무화과는 이 책의 무게 중심이 되어 버린다. 꽃이 밖으로 피지 않고 열매 속에서 피는 식물이다. 사랑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다. 이미 함께한 시간 속에서 피고 졌을 것이다. 이미 끝난 사랑에 대한 깊은 애도가 무화과로 점철된다.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피었다가 사라진 이야기. 나의 구원, 나의 사랑.

이 책은 그저 감상에 젖어 읽기에는 이해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결핍과 깊은 우울을 통과한 사랑의 언어는 섬세했고 처절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환희에 가깝다.

부크럼 출판사 @bookrum.official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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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15분 필사
세바시 지음 / 세상을바꾸는시간15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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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바꾸는15분필사 #세상을바꾸는시간15 #세바시필사책 #서평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강의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었다.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청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저마다의 15분은 스스로를 그리고 모두들 향한 간절한 염원이었고, 누군가 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속 명장면들이 한 권의 필사책으로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여느 필사책과는 느낌이 달랐다. 누군가의 따뜻하고 다정한 언어를 들으면서 마음에 새겨보는 듯했다. 붓펜의 끝을 세우는 동안 감정은 폭발하지 않았고, 문장을 쓰다 보면 오히려 마음의 호흡은 일정하게 정돈되었다. 단시간의 15분은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지만, 꾸준히 만나는 15분은 사람의 결을 바꾸고 삶의 궤도를 바꿔놓는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15분이라는 시간은 무엇이든 시작하기에도 좋고, 그 시간에 머물다 가기에도 무리가 없다. 부담이 없는 시간이기에 책을 펼치고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이 오가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는 한 꼭지를 타이핑 필사하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소수로 운영되고 있지만, 저마다 열심히 필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 꼭지를 타이핑 하는데 20분이면 끝나지만 저마다의 속도는 다르다. 필사 후 ‘생각 다시 쓰기’라는 것을 하는데 멤버의 글에서 ‘지금은 와인보다 필사’라는 문구에서 얼마나 울컥하던지. 꾸준히 필사를 독려한 보람이 밀려왔다. 필사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 세상은 나를 작가로 만든다. <나를 바꾸는 15분 필사>는 바로 이런 지점을 건드려준다. 필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깨달음’과 ‘오늘의 실천’이라는 공간을 두고 있어서 내 생각을 읽어내고 실제 삶으로 적용가능한 행동을 끌어낼 수 있었다. 생각에만 머물고 적지 않은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써야만 남고, 남은 게 있어야 다시 볼 수 있고, 무심히 다시 꺼낸 본 내 글에서 순간의 번뜩임도 만날 수 있다. 필사는 남의 글 그대로 옮겨 적는 일이기 전에 내 생각을 만나는 일이고, 내 안의 숨겨진 나를 찾아가는 멋진 여행이다.

사람의 말이 들리는 필사책이 바로 <나를 바꾸는 15분 필사>다. 한 편의 필사 문장 오른편 아래에 QR코드가 있다. QR코드를 찍으면 그와 관련된 세바시 강연으로 넘어간다. 글을 먼저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쪽으로 움직였다. 강연자의 호흡,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말고 말 중간중간 잠시 쉬어 가는 틈까지 귀로 먼저 만나고 눈과 손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달리 먹게 하는지. 강의를 듣고 필사하니 감정도, 생각도 저마다 깨어나는 접점이 있었다. 강연자의 목소리를 듣고 필사를 하니 문장 속에서 사람이 느껴졌다. 그 생각에 다시 울컥하기도 했다. 듣고, 보고, 쓰게 만드는 필사책이다. 사람의 말이 문장이 되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우연히 만난 오늘의 문장이 나를 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필사해 본 사람은 안다. 그러하기에 책을 찾고 문장을 따라 쓰고 싶어진다. 이 마음이 넘치면 내 생각이 문장이 된다. 이 책의 첫 필사 문장은 나라는 존재를 정의할 문장을 찾게 만든다.

인간의 정의는 사전에 적혀 있어요. 그런데 내 정의는 사전을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예요. ‘나민애는 누구지?’하는 정의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건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 맘에 꼭 맞는 어떤 구절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작은 문장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저는 그 문장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P20

‘15분’필사는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며,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 내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필사를 시작했고,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인간은 사전에 정의 되어 있지만, 나는 없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나는 한순간도 같은 나였던 적이 없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나라는 존재는 움직이는 동사였으며 내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었다. 어떤 경험이든, 어떤 감정이 오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글을 쓰며 사유를 확장해 나가는 존재가 바로 나였다. 필사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쓰지 않으면 몰랐을 그 무언인가를 끊임없이 보물찾기하듯 나아가게 한다. 나태주 시인의 따님, 나민애 교수가 말한 ‘내 마음에 꼭 맞는 이’는 필사하며 다른 이의 문장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단계를 지나 결국 내가 쓴 문장들이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으로 나를 거듭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을 수밖에 없었고, 필사할 수밖에 없는 힘이 이 책은 지니고 있었다. 더 나아가 내 생각이 글이 되는 순간의 짜릿함도 주는 시간이었다. 매일 이 책과 함께 하루를 연다면 이 한 권을 다 필사한 후의 나는 지금의 나로 머물러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세바시 15주년 기념으로 이 책이 출간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필사로 인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페이지 중간에 ‘더 깊은 질문’은 필사하면서 변해가는 나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세바시 @sebasi15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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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 도망친 곳에서 인생을 다시 짓다
패트릭 허치슨 지음, 유혜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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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작은숲속오두막으로 #패트릭하치슨지음 #유혜인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도시에서의 생활은 늘 분주하게 움직였고 바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환자의 호출벨이나 보호자의 목소리에 스위치가 켜져 있는 상태로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러다 피곤이 밀려들고 지친다고 느껴질 때 이 모든 소리 자체를 멈춰 버리고 질때도 있다.

향수병은 주기적으로 찾아든다. 나고자란 곳이 시골이기에 그 고즈넉한 정취를 잊을 수가 없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등을 붙이고 이불 포옥 덮여 쓰고 온종일 잠들고 싶다. 밖으로 나가면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고요한 세상을 깨운다. 하늘은 얼마나 청명한지. 새하얀 구름이 두둥실 미끄러져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풀냄새, 바람 소리, 어느 집에서 짖는 개 짖는 소리조차 정겹기만 하다. 텃밭에 심어놓은 녹두에 꽃이 필 때 그마저도 신기해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살피곤 했다. 시골은 잠시도 쉴 틈이 없지만 마음은 왠지 고요하고 느긋하다.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를 읽으면서 내 안의 고요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떨결에 오두막을 구입하고, 난생처음 오두막을 직접 고치며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도 작은 오두막 하나가 지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멀어져 풀벌레 울음소리 들으면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 새벽 달빛은 그 얼마나 푸르고 선명할까. 내가 사는 도시와는 다를 게다. 이 책은 한 남자의 삶이 오두막으로 인해 다시 지어지는 여정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을 사람들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가 숲속 오두막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았던 것처럼 저자 역시 자연 속 오두막과 함께하며 자기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소로는 철학적으로 사유의 깊이를 파고들게 하는 반면 허치슨은 말 그대로 생활인의 기록과 같은 느낌이다. 망치질과 톱질에 서툰 그가 하는 행동들은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 완벽하지 않다. 그 서툰 손길이 삶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가 오두막을 고쳐 나가는 일들이 마치 우리 삶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일과 닮았다. 엉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더 나은 형체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고, 살면서 끊임없이 버리고 고치고 채워 넣으면서 이끌어온 것 아닌가.

저자는 책상 앞에서 느낄 수 없는 몰입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회로 벗어나 자유롭게, 걸리는 것 없이 마음 놓고 몸을 움직여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이 필요한 것이다. 설사 그것이 비뚤어진 문짝을 고치고, 수로를 만드는 일일지라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저 하나씩 내 힘으로 일궈가는 보람과 성취는 남이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의 편리에서 멀어져 시간을 들여하는 일들은 절로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준다. 진정한 쉼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보니 산 속으로 찾아든 사람들의 삶은 보는 이에게 힐링이 되어 주었다. 대리 만족감이랄까.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산 속 물을 끌어다 쓰고, 나무로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모습들에서 아주 오랜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주 어릴 적에는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예전의 생활 방식이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들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자연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저럴 바에는 그냥 도시에 살지 왜 들어갔나 싶은 자연인도 있었다. 이 책 속의 저자는 오두막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오두막이 필요한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화목난로가 제대로 작동될 때 책을 읽는 나 역시 무척 기뻤고, 안도했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나. 되게 하면 되지.’

‘오두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됐는지를 생각하면, 지금의 결과들은 기적 같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한편으로는 10년, 20년, 30년 뒤 누군가가 사랑에 빠질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내기 이곳에 보탠 노력 또한 선명하게 보였다.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땀과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질 결과물로 바뀌었다.’ p356

병원 속에서의 생활은 내게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작은 실수가 누군가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짊어지고 갈 책임감은 감수해야 할 무거운 짐과 같았다. 자연 속에 잠시 나를 놓아두는 시간은 숨이 드나드는 통로와 같았다. 저자에게 오두막은 바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고립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의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낯설고 서툰 것들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도시에서 느꼈던 성취감과는 결이 다른 종류의 만족을 느껴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 역시 오두막을 짓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겹겹이 내 문장을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애써 줄지어 놓은 도미노를 쓰러뜨리듯 단숨에 써놓은 글 전체를 허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여정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숲속에 지어진 오두막이 없다. 그러나 오두막과 같은 새벽이란 시간은 있다. 하루의 소움에서 물러나 나를 깨우고 오롯한 나로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책은 ‘위로’이자 ‘힐링’이며 ‘만족’과 ‘희망’을 동시에 품게 했다. 겉으로 멀쩡한 모습의 우리가 실제로는 얼마나 지쳐가고 있었는지, 더 병들어 손을 쓸 수 없기 전에 무엇을 회복해야 할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웅진지식하우스 @woongjin_readers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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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위한 철학 - 나를 짓누르는 삶의 중력을 거슬러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
시몬 베유 지음, 한소희 엮음 / 구텐베르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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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하고싶지않은날을위한철학 #시몬베유지음 #한소희엮음 #구텐베르크

살다 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만나곤 한다. 특별히 어떤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아픈 것도 아닌데 그냥 모든 것을 놔버리고 멈춰 있고 싶다. 그런 날들은 여러 날 지속되기도 하는데 아무것도 이룬 일 없이 지나간 시간들에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남들보다 뒤처진 기분에 우울해지기도 했었다. 왜 나는 그 시간을 쉼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그 이상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을 위한 철학>이라는 책의 제목은 바로 이런 내 마음을 건드렸으며 한번 꼭 읽어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은 무한경젱 사회에서 오는 피곤과 지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상태에서 자아는 스스로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비난과 자책이 난무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공허가 깃들고 번아웃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베유는 이러한 상태를 치명적인 결합으로 보지 않고 외려 온전한 주의로 바라보라고 권한다. 에고의 개입이 멈춘 상태, 즉 고치려 들지 않고, 판단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한다. 지금, 바로 여기에 머물게 하는 것이 ‘주의’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하나의 노력이며, 아마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큰 노력일 것이다.’p151

탈창조는 작가로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했다. 베유의 탈창조는 스스로를 비워내는 것이었다. 문장을 더 유려하게 만들려는 욕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비워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 자신이 매개체가 되도록 비워내 영감이 나를 통해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필사를 통해 내 목소리는 잠시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욕망을 버리고 몰아의 상태에서 온전의 주의를 대상에 기울일 때 창조성이 드러난다. 나를 중심에 두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베유는 노동을 비하하거나 경멸하지 않았다. 인간이 현실과 가장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라고 보았다.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면서 ‘세상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보지 않았는가. 소외와 고통이 스며든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하며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던 것 같다. 노동은 나라는 사람을 한없이 낮아지게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는 원석에 빛을 더해주었다. 이 책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점검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징후와 증상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베유의 말처럼 뿌리 뽑힌 영혼일지 모른다. 어딘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이동하며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비교와 평가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공허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나를 알아주는 곳은 없는 것만 같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뿌리의 힘이 약해지면 나무를 지탱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만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은 나의 뿌리가 지치고 힘에 부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뿌리째 뽑혀 나가기 전에 우리는 자기 안의 영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아무리 많은 장식을 매달아도, 결코 살아날 수 없는 법이다.’ p228

책에서 말한 뿌리 내림의 노력들은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동네를 산책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것, 고전을 읽고 오래된 음악을 듣는 것, 웃어른들의 말씀에 경청하는 것, 공동체 속에 만난 이들에게 이해관계로 접근하기보다 존재 자체로 존중하며 이해로 다가갈 것. 고요히 머물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마련할 것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완전한 뿌리 내림은 될 수 없다 그러나 뿌린 내린 삶을 향한 작은 선택들이 중력의 세계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중심이 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다시 흔들릴 것이고, 언제든 무기력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아우성칠 것이다. 더 열심히 달려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그러나 그때마다 중력에 저항하는 선택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내면의 힘은 강해지고, 내가 지은 내면 속 집은 그 누구보다 웅장해져 있지 않을까. 그 안에서 진정한 쉼도 이루어질 것이라 믿게 하는 책이었다.

구텐베르크 출판사 @gutenberg.pub 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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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부자의 정석 - 10년 만에 순자산 30억 만드는 기적의 월급 굴리기
샘 도겐 지음, 이주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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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부자의정석 #샘도갠 #인플루엔셜 #서평

‘마침내 28세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사실 백만장자라는 임계점을 넘게 만든 한 방은 없었다. 그저 항상 최선을 다하고 합리적인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다.’ P15

‘월급’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르다. 직장에서 월급날이 되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든다. 누군가는 월급을 쥐꼬리만한 월급 받을라고 일하냐고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적은 월급이지만 알뜰살뜰 저축하거나 투자의 용도로 쓸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달 일정 금액의 돈을 받을 때 소비할 돈으로 보느냐 자산을 늘릴 자본으로 보는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며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목표로 하든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성공 확률은 줄어든다. 사람은 믿는만큼 행동하기 마련이다. 이 월급 받아서 어떻게 부자가 되냐고 투덜거리는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재테크야라며 투자에 회의적인 사람, 부자는 타고난 거라고 확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전략을 알려줘도 실행에 옮겨질 확률은 떨어질 것이다. 이점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제일 먼저 다루는 것이 돈에 대한 올바른 마인드 셋이다.

‘나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마인드 셋이 장착되면 시작이 두렵지 않고 행동부터 달라진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가려면 마인드가 중요하다. 적은 월급이라도 강력한 자본이라고 믿으면 된다. 느리더라도 시간은 내 편이다라고 믿는 것은 스스로를 끝까지 해내는 사람으로 만든다.

돈은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돈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라는 저울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조급해지고 자격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 손실이 났을 때조차 흔들림이 적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월급쟁이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성과 시간이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합리적인 투자를 하며 시간의 힘을 믿는 것이다. 방향이 틀리지 않으면 반드시 저자의 말대로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8단계의 부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 단계로 저자는 저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받은 월급에서 저축률을 30%까지 올리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저축률이 50%에 도달하면 1년 저축할 때마다 1년의 자유를 사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저축을 많이 할수록 종자돈이 마련되고, 경제적 자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 단계로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 할 것과 복리 효과로 자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퇴직연금, 투자 위험은 적으면서 이익은 큰 부동산, 임금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머니 파이프라인을 만들 수 있는 소규모 창업, 생활습관, 환경, 결혼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나누어서 이야기 하는 이유는 부로 가는 길은 단번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8단계는 부로 가는 지름길인 동시에 반드시 통과해야 할 구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기까지 희생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각고 끝에 자산은 저절로 굴러가고 있을 것이란 희망도 보인다.

이러한 지침에도 우리는 조바심과 불안으로 오래 기다리지 못한다. 한 방을 노리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하지만, 고위험 투자는 월급쟁이에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저자의 노하우를 지침 삼아서 합리적인 투자로 방향을 돌려본다면 불안은 덜고 지속성은 유지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에 필사로 종잣돈을 만들고, 매일 글 쓰는 습관으로 거듭나 책을 내고 그다음 책을 준비하며 책쓰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원리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든 해보지 않아서 어렵고 힘든 것이지 임계점을 넘기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투자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하지 않는다. 애써 일군 부를 어떻게 쓰고 남겨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부라는 이름 뒤에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되묻는 책이다. 부의 축적도 중요하지만, 세대를 위해 어떻게 부를 계승할 거냐는 부모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책임의 문제다. 돈을 물려주는 것 그 이상의 것, 즉 삶의 태도, 절제, 책임, 돈을 대하는 기준 등으로 확장된다. ‘돈을 불과 같이 다뤄야 한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플루엔셜 @influential_book 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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