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원에게 #정영욱 #부크럼출판사 #서평

뭐지, 이 거북함은? 전혀 다른 기대를 품고 첫 장을 펼쳤던 탓인지 순간순간 훅 들어오는 적나라한 문장들에 ‘내가 지금 정영욱 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위로와 힐링이라 여기기엔 한 사람의 연애사를 너무 깊이 들여다본 것 같고, 뭔가 모를 찝찝함이 마음을 떠나지 않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결이 고운 문장을 만나다가 지나간 관계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상대를 해석하는 시선은 강하기만 해서 순간 마음이 멈칫했다.

이 책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비교적 솔직한 고백이며, 회상의 기록이라기엔 깊이 들어와 박혔다. 사랑을 미화하지도 않았고, 사랑 그 이면에 남겨진 감정들의 잔해들이 우리 삶에 남아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내 사랑은 책임과 시간의 무게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쉽게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과 관계의 깊이를 먼저 만나기 전에 감각이 먼저 도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밀도 있게 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다. 사랑의 육체적 기억이 그저 소비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본 독자라면 알게 될 테니까.

읽는 내내 나는 화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 사람을 사랑했던 ‘여자’의 눈으로 돌아가 바라보게 했다. 한 사람의 서사가 혹여나 다른 이의 사생활을 침범했다고 여기지 않길 염려하면서. 글이란 것이 그렇다. 글로 옮겨 오는 모든 것은 문학적인 표현이기 전에 존중을 담아야할 대상이라고. 사랑은 나의 것이었다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의 장면 장면은 ‘우리’가 된다. 어디까지 사랑을 쓸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 되묻게 된다.

사랑을 결핍으로, 육체적 친밀함을 그 결핍을 채우는 행위로만 볼 수 있을까. 온전히 자기 만족에 기인한 것이라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일까. 저자는 ‘사랑은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랑을 결핍과 갈증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독자에게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독자를 만난다면 관계 속에서 느꼈을 허기와 고독은 책임과 선택, 지속의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수단이 육체적 친밀함으로 이어진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고, 기억은 각자의 몫이며, 함께 한 시간은 공유된 기억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얼굴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외로움의 파생물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사랑을 어떻게 써야 할까. 상대를 결핍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미 기울어진 사랑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고백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책임의 문제라고 본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구원은 애틋했고, 따스했다. ‘포용’

위로의 언어를 기대한 독자를 위한 반전을 숨겨둔 책이 바로 <구원에게>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야만 이 책의 표지부터 이해가 된다. 사랑을 본능의 언어로 풀어내 감정을 씹고 삼키는 행위에 비교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또한 사랑을 피부의 촉감이나 냄새들과 같은 감각의 언어로 복원하기도 했다. 사랑의 언어는 한계가 없나보다. 구원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으니.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등장하는 무화과는 이 책의 무게 중심이 되어 버린다. 꽃이 밖으로 피지 않고 열매 속에서 피는 식물이다. 사랑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다. 이미 함께한 시간 속에서 피고 졌을 것이다. 이미 끝난 사랑에 대한 깊은 애도가 무화과로 점철된다.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피었다가 사라진 이야기. 나의 구원, 나의 사랑.

이 책은 그저 감상에 젖어 읽기에는 이해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결핍과 깊은 우울을 통과한 사랑의 언어는 섬세했고 처절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환희에 가깝다.

부크럼 출판사 @bookrum.official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