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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 도망친 곳에서 인생을 다시 짓다
패트릭 허치슨 지음, 유혜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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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생활은 늘 분주하게 움직였고 바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환자의 호출벨이나 보호자의 목소리에 스위치가 켜져 있는 상태로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러다 피곤이 밀려들고 지친다고 느껴질 때 이 모든 소리 자체를 멈춰 버리고 질때도 있다.
향수병은 주기적으로 찾아든다. 나고자란 곳이 시골이기에 그 고즈넉한 정취를 잊을 수가 없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등을 붙이고 이불 포옥 덮여 쓰고 온종일 잠들고 싶다. 밖으로 나가면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고요한 세상을 깨운다. 하늘은 얼마나 청명한지. 새하얀 구름이 두둥실 미끄러져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풀냄새, 바람 소리, 어느 집에서 짖는 개 짖는 소리조차 정겹기만 하다. 텃밭에 심어놓은 녹두에 꽃이 필 때 그마저도 신기해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살피곤 했다. 시골은 잠시도 쉴 틈이 없지만 마음은 왠지 고요하고 느긋하다.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를 읽으면서 내 안의 고요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떨결에 오두막을 구입하고, 난생처음 오두막을 직접 고치며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도 작은 오두막 하나가 지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멀어져 풀벌레 울음소리 들으면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 새벽 달빛은 그 얼마나 푸르고 선명할까. 내가 사는 도시와는 다를 게다. 이 책은 한 남자의 삶이 오두막으로 인해 다시 지어지는 여정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을 사람들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가 숲속 오두막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았던 것처럼 저자 역시 자연 속 오두막과 함께하며 자기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소로는 철학적으로 사유의 깊이를 파고들게 하는 반면 허치슨은 말 그대로 생활인의 기록과 같은 느낌이다. 망치질과 톱질에 서툰 그가 하는 행동들은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 완벽하지 않다. 그 서툰 손길이 삶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가 오두막을 고쳐 나가는 일들이 마치 우리 삶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일과 닮았다. 엉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더 나은 형체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고, 살면서 끊임없이 버리고 고치고 채워 넣으면서 이끌어온 것 아닌가.
저자는 책상 앞에서 느낄 수 없는 몰입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회로 벗어나 자유롭게, 걸리는 것 없이 마음 놓고 몸을 움직여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이 필요한 것이다. 설사 그것이 비뚤어진 문짝을 고치고, 수로를 만드는 일일지라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저 하나씩 내 힘으로 일궈가는 보람과 성취는 남이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의 편리에서 멀어져 시간을 들여하는 일들은 절로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준다. 진정한 쉼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보니 산 속으로 찾아든 사람들의 삶은 보는 이에게 힐링이 되어 주었다. 대리 만족감이랄까.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산 속 물을 끌어다 쓰고, 나무로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모습들에서 아주 오랜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주 어릴 적에는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예전의 생활 방식이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들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자연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저럴 바에는 그냥 도시에 살지 왜 들어갔나 싶은 자연인도 있었다. 이 책 속의 저자는 오두막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오두막이 필요한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화목난로가 제대로 작동될 때 책을 읽는 나 역시 무척 기뻤고, 안도했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나. 되게 하면 되지.’
‘오두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됐는지를 생각하면, 지금의 결과들은 기적 같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한편으로는 10년, 20년, 30년 뒤 누군가가 사랑에 빠질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내기 이곳에 보탠 노력 또한 선명하게 보였다.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땀과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질 결과물로 바뀌었다.’ p356
병원 속에서의 생활은 내게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작은 실수가 누군가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짊어지고 갈 책임감은 감수해야 할 무거운 짐과 같았다. 자연 속에 잠시 나를 놓아두는 시간은 숨이 드나드는 통로와 같았다. 저자에게 오두막은 바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고립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의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낯설고 서툰 것들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도시에서 느꼈던 성취감과는 결이 다른 종류의 만족을 느껴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 역시 오두막을 짓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겹겹이 내 문장을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애써 줄지어 놓은 도미노를 쓰러뜨리듯 단숨에 써놓은 글 전체를 허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여정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숲속에 지어진 오두막이 없다. 그러나 오두막과 같은 새벽이란 시간은 있다. 하루의 소움에서 물러나 나를 깨우고 오롯한 나로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책은 ‘위로’이자 ‘힐링’이며 ‘만족’과 ‘희망’을 동시에 품게 했다. 겉으로 멀쩡한 모습의 우리가 실제로는 얼마나 지쳐가고 있었는지, 더 병들어 손을 쓸 수 없기 전에 무엇을 회복해야 할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웅진지식하우스 @woongjin_readers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