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인간적인 능력 - 경험 빈곤 시대,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12가지 능력
그레이엄 리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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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인간적인능력 #그레이엄리 #안진이옮김 #더퀘스트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던져본 질문은 ‘인간다움의 본질이란 무엇일까?’였다.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왜 우리는 다시 ‘인간다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I가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고 의료기기는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보험 약관 속 로봇수술에 관한 항목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SNS, 메신저, 유튜브를 통해 우리는 쉽게 연결되고 정보는 넘쳐난다. 세상의 편리에 익숙해져가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우리는 사유라는 것을 하고 있는 존재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기술의 편리함 속에 익숙해진 나머지 판단을 기계에 맡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흐려지고 있다. 우리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을 우리도 모르게 기계에게 넘겨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과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다움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능성을 모색하게 한다.

우리 인간은 타고나기를 무엇인가를 습득하고 갈고 닦아 탁월함에 이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인류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한계를 넘어선 문명의 발전을 이뤄왔다는 사실에 경이를 표하게 된다. 지금과 같은 첨단 기술이 아니었어도 인간은 정교하고 불가사의한 업적을 이뤄냈다. 치밀한 사유의 세계라든가,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 예술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깊이 닿아보면 인간이 본래 지닌 능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할 수 있다. 인간의 가능성과 능력이 확장된 결과물이 기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AI와 첨단 기술 시대 속에서도 무심히 일어가는 인간 고유의 능력 즉 길찾기/ 움직이기/ 대화하기/ 혼자있기/ 읽기/ 쓰기/ 그리기/ 만들기/ 기억하기/ 꿈꾸기/ 생각하기/ 시간인식 이렇게 12가지를 짚어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은 길찾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첫 장은 길찾기, 즉 GPS와 네비게인션 의존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는 폴리네시아의 항해술을 서두로 문제이식을 일깨운다. 태양과 별 그리고 해류과 파도의 흐름을 읽으며 드넓은 바다를 건너던 이들의 감각은 인간이 지닌 능력이 얼마나 정교하고 뛰어난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언젠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코쿤의 휴대폰 없이 살기편이 생각났다. 네이게이션을 켜지 않고 아버지 집까지 가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평소 같으면 무난히 갔을 길을 바짝 긴장한 상태로, 추월 한번 없이 온 정신을 집중해 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면서 이정표를 보면서 가는 게 살면서 처음이라고까지 말했던 장면은 뇌리에 깊이 남았다.

GPS와 네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해 목적지까지 스스로 갈 수 있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릴 적 삼촌과 함께 설악산으로 가족 여행을 갔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 속의 삼촌은 지도를 꺼내 들고 있었고, 길을 가다가 헷갈릴 때면 잠시 정차 후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과정에서 낯선 이들과 통성명을 하며 도움을 받기도 했었다. 나는 차 안에 앉아 있으면서 저렇게 말만 듣고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 이었다. 지금은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네비게이션은 미리 가야 할 목적지를 찍으면 도착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얼마 정도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서 좌회전과 우회전을 해야 하는지, 어디쯤에 유턴 자리가 있는지 미리 알려준다.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에 반응하며 갈 뿐이다. 책에서 말했듯이 이런 편리함에 의존하다보면 공간을 인지하고 방향을 감각하는 능력이 점차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회복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 놓았으니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한 번쯤 코쿤처럼 전자기기로부터 멀어져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이어 내가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읽기’와 ‘쓰기’ 그리고 ‘생각하기’였다. 지금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깊이 들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장은 몰입해 읽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겁색하고 캡쳐하기도 하고 어렵지 않게 저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사유를 거쳐 기록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책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존 디가 남긴 여백주석, 손가락 주석, 비망록에 관한 이야기였다. 특히나 비망록관한 이야기는 마음을 사로 잡았다. 글 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이기에 비망록은 메모이기 전에 나의 생각을 좀 더 입체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쓸 때 유용한 글감 창고가 되고 사유의 뿌리가 될 공간으로 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에머슨도 비망록을 글쓰기의 아이디어 창고로 활용했다고 한다. 쓰지 않으면 사라졌을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습관덕분에 그의 사상과 남겨진 문장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니 더더욱 신뢰가 간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는 기억을 저장하기 위한 기록을 넘어서고 있었다. 인체를 해부한 스케치와 건축 설계도, 철학적인 단상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허물고 자유롭게 넘나든 시각적 사유의 장이었다. 나는 타이핑 필사와 손필사를 함께 하고 있다. 그 이유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사유를 통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에 꼭 필요한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고 그 능력을 어떻게 키워가야 할지 그 대안까지 말해 주고 있어서 독자로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더퀘스트 출판사 @thequest_book 오케스트라 3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이토록인간적인능력 #그레이엄리 #안진이옮김 #더퀘스트 #서평 #도서협찬 #책리뷰 #책추천 #북스타그램 #오케스트라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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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 - 고전의 샘에서 길어 올린 품격의 언어
김이섭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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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두렵지않은어른이된다는 것 #김이섭지음 #스노우폭스북스 #서평


사람들과의 대화가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을 살면서 말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마음을 복구할 수 없는 폐허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애초에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의 무게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쉽게 던지고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나 보다. 여전히 말은 어렵고, 내 마음을 통과해 다른 이의 마음에 닿기까지 힘겹기만 하다. 누군가의 말에 날이 세워지고, 침묵을 하게 된다. 상처받기 쉽게 깨지기 쉬운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책을 통해 나를 조금씩 단련하는 법을 배워가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받지 않는 어른은 없다. 단, 그 상처를 끌어안고도 내 안의 말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에게서 나는 기운도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반복된 삶에서 품격은 배어납니다.’ P195

이 문장은 나를 멈춰 세웠다. 말을 잘하고 싶은데 급급한 나머지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사는사람인지 깊이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말은 입술을 벗어나면 다시 주워 담지 못 한다. 그러나 자기 안에 품은 것들은 순간의 산물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거쳐온 반복된 생각과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밖으론 나오는 것들은 내 안에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쉽게 약속하지도 말고, 쉽게 미래를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테니. 기다림이 무너진 순간 신뢰는 깨지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의 패턴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곤 한다.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한 말로 발을 묶어 두고,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한결같은 사람인양 오히려 기다림에 지친 사람이 결국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다.

“말이면 다야?”라는 말을 예전에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말은 말로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상대를 억울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말임을 뒤늦게 알았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은 비슷한 기운을 품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태도에서 드러나고 행동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꾸며낼 수 없다. 원래 그 사람이 품고 살아온 것들임을 간과했다.

이 책이 나를 건드린 것은 바로 내 안의 언어와 생각을 조심하라는 메시지였다. 마음 속에서는 이미 쉽게 판단하고, 쉽게 단정짓고, 쉽게 기대한 나의 생각들, 말은 곧 그 사람의 머릿속 생각 그림자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말을 고치려 하기 전에 내 안의 언어부터 돌아봐야 겠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할 일이라면 더 신중했어야 하고, 책임질 수 없다면 처음부터 입밖으로 내지 말아야 한다. 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은 말의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안의 생각을 함부로 방치하지 않는 태도를 기르는 사람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 안의 정리되지 않은 많은 생각들이 말을 두렵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말을 줄이기보다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말을 하면서 상대도 그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자기 안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언어를 마구잡이로 밖으로 쏟아내니 사달이 나는 것이다. 말은 입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착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말은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말은 설득이 아니라 변명이며, 책임질 수 없는말은 약속이 아니라 던져본 미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내 언어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지게 한 책이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은 말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은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스노우폭스북스 @snowfoxbooks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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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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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부크럼출판사 #서평

뭐지, 이 거북함은? 전혀 다른 기대를 품고 첫 장을 펼쳤던 탓인지 순간순간 훅 들어오는 적나라한 문장들에 ‘내가 지금 정영욱 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위로와 힐링이라 여기기엔 한 사람의 연애사를 너무 깊이 들여다본 것 같고, 뭔가 모를 찝찝함이 마음을 떠나지 않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결이 고운 문장을 만나다가 지나간 관계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상대를 해석하는 시선은 강하기만 해서 순간 마음이 멈칫했다.

이 책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비교적 솔직한 고백이며, 회상의 기록이라기엔 깊이 들어와 박혔다. 사랑을 미화하지도 않았고, 사랑 그 이면에 남겨진 감정들의 잔해들이 우리 삶에 남아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내 사랑은 책임과 시간의 무게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쉽게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과 관계의 깊이를 먼저 만나기 전에 감각이 먼저 도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밀도 있게 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다. 사랑의 육체적 기억이 그저 소비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본 독자라면 알게 될 테니까.

읽는 내내 나는 화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 사람을 사랑했던 ‘여자’의 눈으로 돌아가 바라보게 했다. 한 사람의 서사가 혹여나 다른 이의 사생활을 침범했다고 여기지 않길 염려하면서. 글이란 것이 그렇다. 글로 옮겨 오는 모든 것은 문학적인 표현이기 전에 존중을 담아야할 대상이라고. 사랑은 나의 것이었다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의 장면 장면은 ‘우리’가 된다. 어디까지 사랑을 쓸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 되묻게 된다.

사랑을 결핍으로, 육체적 친밀함을 그 결핍을 채우는 행위로만 볼 수 있을까. 온전히 자기 만족에 기인한 것이라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일까. 저자는 ‘사랑은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랑을 결핍과 갈증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독자에게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독자를 만난다면 관계 속에서 느꼈을 허기와 고독은 책임과 선택, 지속의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수단이 육체적 친밀함으로 이어진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고, 기억은 각자의 몫이며, 함께 한 시간은 공유된 기억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얼굴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외로움의 파생물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사랑을 어떻게 써야 할까. 상대를 결핍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미 기울어진 사랑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고백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책임의 문제라고 본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구원은 애틋했고, 따스했다. ‘포용’

위로의 언어를 기대한 독자를 위한 반전을 숨겨둔 책이 바로 <구원에게>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야만 이 책의 표지부터 이해가 된다. 사랑을 본능의 언어로 풀어내 감정을 씹고 삼키는 행위에 비교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또한 사랑을 피부의 촉감이나 냄새들과 같은 감각의 언어로 복원하기도 했다. 사랑의 언어는 한계가 없나보다. 구원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으니.

마지막 장에 이르러 등장하는 무화과는 이 책의 무게 중심이 되어 버린다. 꽃이 밖으로 피지 않고 열매 속에서 피는 식물이다. 사랑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 아니다. 이미 함께한 시간 속에서 피고 졌을 것이다. 이미 끝난 사랑에 대한 깊은 애도가 무화과로 점철된다.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피었다가 사라진 이야기. 나의 구원, 나의 사랑.

이 책은 그저 감상에 젖어 읽기에는 이해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결핍과 깊은 우울을 통과한 사랑의 언어는 섬세했고 처절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환희에 가깝다.

부크럼 출판사 @bookrum.official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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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15분 필사
세바시 지음 / 세상을바꾸는시간15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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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바꾸는15분필사 #세상을바꾸는시간15 #세바시필사책 #서평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강의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었다.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청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저마다의 15분은 스스로를 그리고 모두들 향한 간절한 염원이었고, 누군가 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속 명장면들이 한 권의 필사책으로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여느 필사책과는 느낌이 달랐다. 누군가의 따뜻하고 다정한 언어를 들으면서 마음에 새겨보는 듯했다. 붓펜의 끝을 세우는 동안 감정은 폭발하지 않았고, 문장을 쓰다 보면 오히려 마음의 호흡은 일정하게 정돈되었다. 단시간의 15분은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지만, 꾸준히 만나는 15분은 사람의 결을 바꾸고 삶의 궤도를 바꿔놓는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15분이라는 시간은 무엇이든 시작하기에도 좋고, 그 시간에 머물다 가기에도 무리가 없다. 부담이 없는 시간이기에 책을 펼치고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이 오가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는 한 꼭지를 타이핑 필사하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소수로 운영되고 있지만, 저마다 열심히 필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 꼭지를 타이핑 하는데 20분이면 끝나지만 저마다의 속도는 다르다. 필사 후 ‘생각 다시 쓰기’라는 것을 하는데 멤버의 글에서 ‘지금은 와인보다 필사’라는 문구에서 얼마나 울컥하던지. 꾸준히 필사를 독려한 보람이 밀려왔다. 필사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 세상은 나를 작가로 만든다. <나를 바꾸는 15분 필사>는 바로 이런 지점을 건드려준다. 필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깨달음’과 ‘오늘의 실천’이라는 공간을 두고 있어서 내 생각을 읽어내고 실제 삶으로 적용가능한 행동을 끌어낼 수 있었다. 생각에만 머물고 적지 않은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써야만 남고, 남은 게 있어야 다시 볼 수 있고, 무심히 다시 꺼낸 본 내 글에서 순간의 번뜩임도 만날 수 있다. 필사는 남의 글 그대로 옮겨 적는 일이기 전에 내 생각을 만나는 일이고, 내 안의 숨겨진 나를 찾아가는 멋진 여행이다.

사람의 말이 들리는 필사책이 바로 <나를 바꾸는 15분 필사>다. 한 편의 필사 문장 오른편 아래에 QR코드가 있다. QR코드를 찍으면 그와 관련된 세바시 강연으로 넘어간다. 글을 먼저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쪽으로 움직였다. 강연자의 호흡,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말고 말 중간중간 잠시 쉬어 가는 틈까지 귀로 먼저 만나고 눈과 손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달리 먹게 하는지. 강의를 듣고 필사하니 감정도, 생각도 저마다 깨어나는 접점이 있었다. 강연자의 목소리를 듣고 필사를 하니 문장 속에서 사람이 느껴졌다. 그 생각에 다시 울컥하기도 했다. 듣고, 보고, 쓰게 만드는 필사책이다. 사람의 말이 문장이 되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우연히 만난 오늘의 문장이 나를 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필사해 본 사람은 안다. 그러하기에 책을 찾고 문장을 따라 쓰고 싶어진다. 이 마음이 넘치면 내 생각이 문장이 된다. 이 책의 첫 필사 문장은 나라는 존재를 정의할 문장을 찾게 만든다.

인간의 정의는 사전에 적혀 있어요. 그런데 내 정의는 사전을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예요. ‘나민애는 누구지?’하는 정의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건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 맘에 꼭 맞는 어떤 구절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작은 문장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저는 그 문장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P20

‘15분’필사는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며,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 내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필사를 시작했고,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인간은 사전에 정의 되어 있지만, 나는 없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나는 한순간도 같은 나였던 적이 없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나라는 존재는 움직이는 동사였으며 내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었다. 어떤 경험이든, 어떤 감정이 오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글을 쓰며 사유를 확장해 나가는 존재가 바로 나였다. 필사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쓰지 않으면 몰랐을 그 무언인가를 끊임없이 보물찾기하듯 나아가게 한다. 나태주 시인의 따님, 나민애 교수가 말한 ‘내 마음에 꼭 맞는 이’는 필사하며 다른 이의 문장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단계를 지나 결국 내가 쓴 문장들이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으로 나를 거듭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을 수밖에 없었고, 필사할 수밖에 없는 힘이 이 책은 지니고 있었다. 더 나아가 내 생각이 글이 되는 순간의 짜릿함도 주는 시간이었다. 매일 이 책과 함께 하루를 연다면 이 한 권을 다 필사한 후의 나는 지금의 나로 머물러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세바시 15주년 기념으로 이 책이 출간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필사로 인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페이지 중간에 ‘더 깊은 질문’은 필사하면서 변해가는 나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세바시 @sebasi15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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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 도망친 곳에서 인생을 다시 짓다
패트릭 허치슨 지음, 유혜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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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작은숲속오두막으로 #패트릭하치슨지음 #유혜인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도시에서의 생활은 늘 분주하게 움직였고 바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로서는 환자의 호출벨이나 보호자의 목소리에 스위치가 켜져 있는 상태로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러다 피곤이 밀려들고 지친다고 느껴질 때 이 모든 소리 자체를 멈춰 버리고 질때도 있다.

향수병은 주기적으로 찾아든다. 나고자란 곳이 시골이기에 그 고즈넉한 정취를 잊을 수가 없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등을 붙이고 이불 포옥 덮여 쓰고 온종일 잠들고 싶다. 밖으로 나가면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고요한 세상을 깨운다. 하늘은 얼마나 청명한지. 새하얀 구름이 두둥실 미끄러져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풀냄새, 바람 소리, 어느 집에서 짖는 개 짖는 소리조차 정겹기만 하다. 텃밭에 심어놓은 녹두에 꽃이 필 때 그마저도 신기해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살피곤 했다. 시골은 잠시도 쉴 틈이 없지만 마음은 왠지 고요하고 느긋하다.

<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를 읽으면서 내 안의 고요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떨결에 오두막을 구입하고, 난생처음 오두막을 직접 고치며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도 작은 오두막 하나가 지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멀어져 풀벌레 울음소리 들으면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인다. 새벽 달빛은 그 얼마나 푸르고 선명할까. 내가 사는 도시와는 다를 게다. 이 책은 한 남자의 삶이 오두막으로 인해 다시 지어지는 여정이나 다름없었다.

이 책을 사람들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그가 숲속 오두막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았던 것처럼 저자 역시 자연 속 오두막과 함께하며 자기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소로는 철학적으로 사유의 깊이를 파고들게 하는 반면 허치슨은 말 그대로 생활인의 기록과 같은 느낌이다. 망치질과 톱질에 서툰 그가 하는 행동들은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 완벽하지 않다. 그 서툰 손길이 삶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가 오두막을 고쳐 나가는 일들이 마치 우리 삶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일과 닮았다. 엉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더 나은 형체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고, 살면서 끊임없이 버리고 고치고 채워 넣으면서 이끌어온 것 아닌가.

저자는 책상 앞에서 느낄 수 없는 몰입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회로 벗어나 자유롭게, 걸리는 것 없이 마음 놓고 몸을 움직여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이 필요한 것이다. 설사 그것이 비뚤어진 문짝을 고치고, 수로를 만드는 일일지라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저 하나씩 내 힘으로 일궈가는 보람과 성취는 남이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의 편리에서 멀어져 시간을 들여하는 일들은 절로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준다. 진정한 쉼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보니 산 속으로 찾아든 사람들의 삶은 보는 이에게 힐링이 되어 주었다. 대리 만족감이랄까.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산 속 물을 끌어다 쓰고, 나무로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모습들에서 아주 오랜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주 어릴 적에는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예전의 생활 방식이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들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자연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저럴 바에는 그냥 도시에 살지 왜 들어갔나 싶은 자연인도 있었다. 이 책 속의 저자는 오두막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오두막이 필요한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화목난로가 제대로 작동될 때 책을 읽는 나 역시 무척 기뻤고, 안도했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나. 되게 하면 되지.’

‘오두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됐는지를 생각하면, 지금의 결과들은 기적 같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한편으로는 10년, 20년, 30년 뒤 누군가가 사랑에 빠질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내기 이곳에 보탠 노력 또한 선명하게 보였다.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땀과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질 결과물로 바뀌었다.’ p356

병원 속에서의 생활은 내게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작은 실수가 누군가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짊어지고 갈 책임감은 감수해야 할 무거운 짐과 같았다. 자연 속에 잠시 나를 놓아두는 시간은 숨이 드나드는 통로와 같았다. 저자에게 오두막은 바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고립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의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낯설고 서툰 것들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도시에서 느꼈던 성취감과는 결이 다른 종류의 만족을 느껴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 역시 오두막을 짓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겹겹이 내 문장을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애써 줄지어 놓은 도미노를 쓰러뜨리듯 단숨에 써놓은 글 전체를 허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여정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숲속에 지어진 오두막이 없다. 그러나 오두막과 같은 새벽이란 시간은 있다. 하루의 소움에서 물러나 나를 깨우고 오롯한 나로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 책은 ‘위로’이자 ‘힐링’이며 ‘만족’과 ‘희망’을 동시에 품게 했다. 겉으로 멀쩡한 모습의 우리가 실제로는 얼마나 지쳐가고 있었는지, 더 병들어 손을 쓸 수 없기 전에 무엇을 회복해야 할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웅진지식하우스 @woongjin_readers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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