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기세 - 지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용기
서울라이터 박윤진 지음 / 윌북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정한기세 #서울라이터 #박윤진 #윌북 #도서협찬 #서평 #신간도서 #책추천 #북스타그램 #카피라이터

‘이 책 소장하고 싶다’라고 느끼게 한 책입니다. 단지 손석희님의 ‘20년쯤 전에는 내가 그를 가르쳤는데 지금은 그가 나를 가르친다’라는 이 한 줄 문장 때문에 이 책이 눈길이 간 책이다. 예리한 눈을 가진 그가 저자 박윤진님의 책 추천사를 썼다는 건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 속의 글 자체가 ‘다정한 기세’였다. 힘을 주지 않았으나 목소리가 분명하고, 독자와 공감하기에 한없이 부드러웠다. 읽는 내내 기억하고 싶은 글들이 많아서 벅찰 만큼 이 책은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 말해주고 있었다. ‘다정함’과 ‘기세’는 사람과 일을 대하는 태도였으며 자신을 향한 믿음이었다. 나도 이런 기세로 지금 하는 일에 책임을 다하며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카피는 문장이 아니라 인상을 남긴다.’라는 문장이 눈에 담기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단번에 뇌리에 눌러앉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카피에만 해당하는 그런 문장이 아니라 글을 쓰는 나에게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20년이 넘게 간호사로 일하며 필사와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의 삶은 하나의 정보가 아니었다. 내 삶 그 자체였고 그 삶을 건너온 문장 하나하나가 독자에게 인상을 남기는 일이었다. 문장에서 과감히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힘이 필요했다. 불필요한 단어를 눈물을 머금고 제거한 후 남은 엑기스, 그것이 바로 문장의 인상이었다. 내가 쓴 한 줄 문장은 피로 쓴 것과 같아서 칼로 무자듯이 잘라내기가 참 힘들다는 것을 글을 쓰고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도 기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 속 중간중간 들어간 광모 카피 문구들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정제된 물처럼 맑았다. 이 책을 통해 보게 되니 익숙한 카피 문구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해갈된 문장들이었다. ‘와, 어떻게 이런 문장을!’이라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거 아니?/ 파도에 맞아본 돌멩이가 더 찬란하게 빛나는 거야/ 조금씩 오르다 보면 찾아올 거야/ 네 이름으로 세상을 뒤덮을 그날이/ 맑고 깨끗한 청춘은 별이다/ 칠성사이다’

칠성사이다가 갑자기 당겼다. 그 톡 쏘는 청량함이 청춘을 닮았다.

저자는 카피를 쓰는 일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직업이 여러 개인 삶’ 편에서 ‘본업으로 급여를 받고 부업으로 즐거움을 번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며 지금 나의 심정이 그대로 반영된 듯했다.

세상에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널려 있다는 것을 글을 쓰고 알게 되었다. 본업은 간호사를 하고 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피곤함도 잊고 매달려있는 것을 보면 나도 나다 싶다. 뭐랄까. 지쳐 있다가도 글이 쓰고 싶어서 기운 차려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 인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덩달아 직장 생활에 대한 무게도 덜어진다. 하나의 일에 매달려있으면 고착되기 마련인데 즐기면서 하는 일이 있으니 방전된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느낌이다. 즐거움은 또 다른 일감을 불러와 새로운 경험을 낳기도 한다.

이 책은 ‘직장인’과 ‘직업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나는 직장인과 직업인 그 사이에 있는 회색인간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완전한 직업인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런 삶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면 내게 남는 것은 무료한 시간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정한 기세>는 지금의 나에게 꼭 물어야 할 질문들을 품고 있는 책이었다. 앞으로의 삶은 한 가지 일만 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란 시간을 나는 미래를 위한 연습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미래가 와도 남을 탓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 몸과 정신이 균형 잡힌 삶이어야 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저자의 말처럼 무엇이든 지나침은 경계해야 하니까.

이 책은 일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까지 생각하게 했다. ‘결국 하는 일에 의해 사람은 만들어진다’라는 한 줄 문장이 내게 남았다. 인격은 일에서 만들어진다. 이 책을 읽으니 힘이 난다.

책읽는 쥬리 @happiness_jury 님께서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윌북 @willbooks_pub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은 모르실 거야 - INFJ 앤솔러지
순정 외 지음 / 책편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모르실거야 #책편사 #엔솔로지 #순정이해소원이택민정재이외10명 #MBTI #INFJ #인프제

‘INFJ’
후배가 나에게 MBTI가 뭐냐고 물었다. “그게 뭔데?” “헐~요즘 그거 모르면 상대도 안 해주는 걸 모른다는 말이에요? 큰 일날 사람이네.”그렇게 후배가 건네주는 테스트를 열심히 치른 결과가 인프제다.

사실 나는 사람을 MBTI 로 나눌지 모른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후배나 동료는 바로 맞춘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곤한다. 미스테리 중 하나다. 여전히 나에겐. 그냥 나랑 비슷하면 인프제려니 하고 지낸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읽고 싶었던 이유는 나를 더 잘알기 위해서였다.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나도 명확히 정의 내리기 힘들 때가 있다. 이 책을 딱 펼치는 순간부터 웃음만 나왔다. 어쩌면 이렇게 나와 판박이 같은지. 마치 나를 가까이에서 지쳐보고 있었던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다이어리를 쓸 때 내가 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었던 경험, 메일을 보내고도 다시 확인하는 습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리, 나 때문에 그런가 싶어 가슴앓이 하던 나, 첫 장에서 나오는 인프제는 영락없는 나였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나를 데리고 사느라 스스로가 더 힘든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도 세월에 장사없다고 그런 부분들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느슨해지고 있는 듯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것을 삶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딱 봐도 인프제인가보다. 직장 동료도, 내 딸아이도 가만히 이야기 나누다가 뜬끔없이 “샘, 인프제죠?” “엄마, 인프제지?” 순간 말문이 턱 막힌다. 어떻게 알았지...

딱 봐도 엄마는 인프제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단지 나 스스로를 조금 답답하다고 느낄 때도 많고,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사냐고 묻고 싶은 날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정재이 작가편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중에서 ‘중간자적 인프제, 회색지대에 갇힌 선의의 옹호자. 극점을 향하던 화살표가 가운데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내 성향의 채도와 선명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뜻일테다. 전보다 다채로워진 내 모습이 결국 알파벳 네 자리의 조합으로 국한되는 것 아쉽지만, 나는 나의 모서리가 둥글어졌다는 사실이 좋다.’p77은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이상한 데서 예민하다가 이상한 데서 물렁물렁한 사람’ 역시 나라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많이 품지만 아무나 내 세계에 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겉으로 조용한 바다같지만 내 안에서는 많은 질문들이 오가고 있다. 말보다 글로 남기는 것이 더 편하고 사람을 마음 결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 책은 인프제를 통해 다시 인프제인 나를 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완벽한 인프제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상황에 따라, 컨디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받아들이 수 있었다. 고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귀한 마음들이 가득한 책이 바로 <당신은 모르실거야>였다. 그 마음들 속에 내가 보였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기다리는 게 나다. 그날도 그랬다. k는 집에 도착하면 전화한다고 했다. 나도 아침 퇴근길이었기 때문에 통화가 가능했다. 각자 사는 나라는 다르지만,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을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가서 바로 씻었다. 혹여나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곁에 두면서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날 오전 시간을 울리지 않는 전화벨을 쳐다보면서 ‘아직 저녁 식사 중인가?’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핸드폰을 곁에 두고 잠이 들었다. 전화 한다고 했으니 할 것 같았다. 톡을 보내도 답이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말, 자기 일이 너무 바빠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피곤해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연락될지 몰라 기다리는 사람, 가끔 내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믿었기에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더는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약속이 반복해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기다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그날 이후 철저히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기다린 것일까.

‘사람을 잃는 일은 아프다. 하지만 그 상실 속에서 조금씩 나를 찾아간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다정함만으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걸 배우고 있다. 필요할 땐 누구보다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중략- 이제는 무언가를 잃는 두려움보다 나 자신을 잃는 두려움이 더 클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나를 잃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단절은, 나에게 또 다른 회복의 이름이다.’p167

오랜만에 나를 닮은 책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내가 왜 상처받았는지 나조차 몰랐던 이유를 찾게 하고, 내가 했던 결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토닥여준 책. 그 누구보다 더 솔직하게 나를 대신 보여준 이들의 글에서 한동안 내게 안식처가 되어 줘서 감사하다. 모든 것이 나일 수 없었지만, 그 속에 나를 닮은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위안이고 위로였다.

책편사 (책을 편식하는 사람들) @chaekpyunsa에서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완벽한장례식 #조현선 #장편소설 #서평 #도서협찬 #이별 #힐링소설 #힐링서스펜스 #책추천 #신간도서 #책스타그램

읽는 동안 훌쩍이다가 울고, 숨 고르기도 전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의 파도가 밀물과 썰물처럼 오갔던 책이다. 간호사로 일하며 남은 자와 떠난 자 모습이 공존하는 이별의 순간을 그동안 참 많이도 목격했었다. 일직선을 그리는 기계음과 함께 ‘몇 시 몇 분’ 사망선고가 내려지는 그 순간, 병실의 공기를 가득 채우는 것은 언제나 애도의 울음소리뿐이었다. 그 어떤 죽음 앞에서 가슴 아프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서로가 아직 못해 준 것이 많고, 아직 못다 한 말이 남았을 때 그저 ‘미안하다...미안하다,.’그 말만 되뇌이던 한 아이의 엄마 목소리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었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을 읽으며 그동안 마주했던 작은 생명들의 죽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 미안하지 않을 일을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예고없이 찾아오기에 혹여 그런 순간이 온다면 미련없이, 훌훌 털고 그들의 안녕을 빌며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더는 미루지 않고 살아가기’

이 책이 나에게 남은 메시지였다. 완벽한 장례식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희는 엄마를 일찍 여의고 아빠와 함께 산다. 어릴 적부터 남들은 볼 수 없는 존재를 보게 되고 그 능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그녀는 대학병원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매점을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어딘가 이상한 이들이 섞여 있다. 나희는 알아차린다. 그림자가 없는 손님들의 정체를. 이미 죽었지만 어직 떠나지 못하는 영혼. 그들은 나희의 심성을 알아차림 것인지 하나 둘 찾아와 그들이 죽음 끝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그것’을 부탁한다. 그것은 바로 느닷없이 닥친 죽음의 순간 미처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었다.

미용실 문 아래쪽 작은 문을 열어달라는 아줌마, 회사 사무실 책상 밑에 둔 쇼핑백을 전해달라는 아저씨, 핸드폰을 찾아달라는 남학생, 오랜 지병끝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부탁, 주인을 찾는 개의 영혼, 10년이 넘게 매점을 찾아오는 할머니의 정체까지. 여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장례식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들 중에는 산자도 아닌, 그렇다고 죽은 자도 아닌 ‘윤성우’라는 인물은 달랐다. 윤성우는 이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죽음과 함께 못다한 일이나 말들을 마무리하러 온 인물이 아니었다.죽음의 문턱을 넘고 다시 살아 돌아온 인물이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기적처럼 명료하게 깨어난 그의 존재는 나희와의 열린 결말을 암시한다. ‘깨어난 환자’가 ‘윤성우’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나희를 보며 ‘만남’의 끝을 쉽게 단정지어서도 안되겠구나 싶었다.

그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직 이름붙일 수 없는 상태의 그 어떤 삶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심장이 더는 뛰지 않는 상태 즉, 일직선을 그리는 그래프 하나로 너무 쉽게 죽음을 정이 내리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마음이나 의식도 그 순간 죽은 것이 맞을까.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이라 믿어왔만 역으로 남은 사람이 죽음 후에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여지’같은 게 아닐까. 누군가 떠나는 순간에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별을 경험하고 있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을 추모하며.

북로망스 @_book_romance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장편소설 #열린책들 #서평 #도서협찬 #


배우자의 죽음은 가장 높은 스트레스 지수를 나타낼 만큼 생애 큰 사건 중 하나이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구조와 일상, 정체성 전부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흔히들 시간이 해결해준다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깊이의 스트레스라고 배웠다. <바움가트너>는 바로 이런 깊은 상실감을 다루고 있었다.

첫 장면부터 뭔가 짠하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가 다 타들어 가는 것조차 모를 만큼 그는 현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재에서 거실로 가는 길에서야 냄새를 맡고 그제야 냄비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만큼 그의 마음은 지금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아내의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정신은 현재보다 기억 속을 배회한다.

바움가트너는 오래전 아내를 잃었다.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내의 부재는 그에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기억하고 여전히 그립다. 어떤 이에게 이미 지나간 일이고, 누군가에겐 오래된 상실로 보이지만 그에게 아내의 상실은 현재를 잠식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읽는 내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외로움과 쓸쓸함, 더 나아가 완숙미를 더한다. 배우자의 흔적을 살아가는 내내 되뇌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심장은 온전하기나 할까.

애나의 방에는 그녀가 쓰던 타자기와 연필, 펜, 문진, 암모나이트 화석 조각, 빨간 전화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상실 이후의 삶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과 마주하며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을 곱씹게 한다. 슬펐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이. 그걸 바라보는 바움가트너의 시선 하나하나는 얼마나 조용한지. 그 사실 자체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끊임없이 과거로 이동하곤 한다. 그 기억은 현재를 재구성하고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대신 증명해주는 것만 같다. 그저 상실을 안은 채 삶을 살아갈 뿐이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는 채워지지 않지만 삶은 계속 흐른다.

나는 이 책에서 글쓰기로 인한 자기 성찰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바움가트너는 기억을 끌어내 글로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배열한다. 자신이 쓴 글이 완전한 복원이 되지 않을지라도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사랑도, 자기 자신도, 기억하려 애쓰는 그 기억마저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전제적인 분위기는 느리게 흐른다. 감정은 보다 절제적이며 상실은 담담한 시선으로 옮겨간다. 그저 머물러있음으로 지금을 견딜 뿐이다. 글을 쓰는 나이기에 글은 기억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는 아직도 생각할 수 있고 또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쓸 수 있고, 이제는 문장을 마루리 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결과는 대체로 같다. 좋다.’ p134

상실과 노화 속에서도 여전히 생각할 수 있고, 여전히 쓸 수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을 때 S.T.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 P245

폴 오스터의 마지막 유작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니 이 마지막 문장은 더 깊이 다가온다. 그에게 해결된 것은 없었다. 상실의 고통도 글의 완성도. 그러나 그는 글을 계속 썼고 삶을 지속했다. 여전히 아프지만 작가로서 마지막까지 써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열린책들 @openbooks21에서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이탈리아 - 매혹적이고 낯선 이탈리아 명화의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지안.이정우 지음 / 더블북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관을빌려드립니다 #이탈리아 #이지안이정우 #도서협찬 #서평 #더블북 #예술 #미술관여행 #명화

이 책의 도입부에서 마주한 브레라 미술관의 나폴레옹 조각상에 대한 설명은 마치 예술 작품을 통해 역사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폴레옹이란 인물을 떠올리면 절대적 권력, 정복, 영웅 등과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예술가의 손을 통해 남겨진 그의 기억은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 것일까. 침략자? 아니면 영웅?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밀라노, 패션, 명품이 먼저 떠올라 패션의 도시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느낀 건, 이탈리아가 패션으로 유명한 것 또한 오랫동안 조각와 회화와 같은 예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깊이 들여다보며 이뤄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상을 통해 인체의 비율을 세밀히 살피고 그러한 노력은 의상의 재단이나 실루엣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듯하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 사람의 삶과 그 자신이 처한 사회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다는 것을 께달았다. 예술은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감상을 넘어 한 나라를 다시 읽게 한다. 작품들이 모여 있는 예술의 공간은 한 시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시도에 거침이 없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자기만의 세계를 캔퍼스 위에 옮겨 놓았다는 사실에 절로 경외심이 든다. 저자들이 작품에 대해, 그의 생애에 대해 살뜰히 살펴 이끌어 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작품 하나하나에 눈길이 머문다.

그 작품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지를 알고 보니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이름은 내게 생소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 하나하나가 작품을 친절하면서도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화가가 숨겨 놓은 디테일을 다시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조반니 세간티니라는 화가는 분할주의라는 신기법을 사용해 빛과 색을 표현했는데 그의 그림은 굉장히 아름답고 몽환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고,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을 줄까 궁금했다. 책으로 보는 이 감각을 훌쩍 넘어서는 웅장함이 왠지 가슴을 꽉 채울 것만 같았다.

반면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어두운 기운이 그림 속 축처진 어깨 위로 내려앉아 짖누르는 듯했고 눈동자 없는 눈은 공허하게 느껴졌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우리는 어쩌면 저마다의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피아첸차 편에서 만난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에 관한 이중 초상화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미술학도의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해 그림 아래에 또 다른 그림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의 경위와 도난 당했다가 다시 돌아온 기적같은 귀환까지 그 여정이 다이나믹하다. 반면 경제적인 여유조차 없었던 화가들이 그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붓을 다시 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졌다. 예술의 운명과 예술가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피렌체로 건너갔을 때 또 한 번 눈을 반짝이게 한 작품은 치마부에의 <산타 트리니타의 성모>였다. 실제 금을 얇게 두드려서 완성한 작품으로 그 당시는 천 캔퍼스가 없었기에 나무 패널 위에서 안료와 금을 함께 다뤄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환희로 가득 찬 천상 세계를 바라보는 듯하다. 금빛의 영롱함이 압도적이다.

우피치 미술관의 보티첼리의 <봄>은 환상적이다. 봄기운이 물씬 풍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의 기쁨이 화폭을 가득 채운다. 보자마자 ‘와’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저자의 해설을 읽기도 전에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봄이 와 꽃이 만발하는 듯했다. 예술이 전하는 밀도가 이런것이구나 싶다. 게다가 우리가 익힌 알고 있는 <비너스이 탄생>은 또 어떠한가. 수없이 마주한 그림이었지만 볼 때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신성함이 느껴진다.

로마와 나폴리에서 만난 작품들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책 한 권으로 이탈리아의 예술의 흐름을 따라 고전에서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뜻깊은 미술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시리즈가 있다는 것을 알고 ‘프랑스 편’과 ‘북유럽 편’을 구입하게 되었다. 예술의 세계는 들여다볼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더블북 @doublebook_pub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