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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르실 거야 - INFJ 앤솔러지
순정 외 지음 / 책편사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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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
후배가 나에게 MBTI가 뭐냐고 물었다. “그게 뭔데?” “헐~요즘 그거 모르면 상대도 안 해주는 걸 모른다는 말이에요? 큰 일날 사람이네.”그렇게 후배가 건네주는 테스트를 열심히 치른 결과가 인프제다.
사실 나는 사람을 MBTI 로 나눌지 모른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후배나 동료는 바로 맞춘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곤한다. 미스테리 중 하나다. 여전히 나에겐. 그냥 나랑 비슷하면 인프제려니 하고 지낸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읽고 싶었던 이유는 나를 더 잘알기 위해서였다.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나도 명확히 정의 내리기 힘들 때가 있다. 이 책을 딱 펼치는 순간부터 웃음만 나왔다. 어쩌면 이렇게 나와 판박이 같은지. 마치 나를 가까이에서 지쳐보고 있었던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다이어리를 쓸 때 내가 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었던 경험, 메일을 보내고도 다시 확인하는 습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리, 나 때문에 그런가 싶어 가슴앓이 하던 나, 첫 장에서 나오는 인프제는 영락없는 나였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나를 데리고 사느라 스스로가 더 힘든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도 세월에 장사없다고 그런 부분들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느슨해지고 있는 듯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것을 삶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딱 봐도 인프제인가보다. 직장 동료도, 내 딸아이도 가만히 이야기 나누다가 뜬끔없이 “샘, 인프제죠?” “엄마, 인프제지?” 순간 말문이 턱 막힌다. 어떻게 알았지...
딱 봐도 엄마는 인프제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단지 나 스스로를 조금 답답하다고 느낄 때도 많고,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사냐고 묻고 싶은 날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정재이 작가편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중에서 ‘중간자적 인프제, 회색지대에 갇힌 선의의 옹호자. 극점을 향하던 화살표가 가운데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내 성향의 채도와 선명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뜻일테다. 전보다 다채로워진 내 모습이 결국 알파벳 네 자리의 조합으로 국한되는 것 아쉽지만, 나는 나의 모서리가 둥글어졌다는 사실이 좋다.’p77은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이상한 데서 예민하다가 이상한 데서 물렁물렁한 사람’ 역시 나라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많이 품지만 아무나 내 세계에 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겉으로 조용한 바다같지만 내 안에서는 많은 질문들이 오가고 있다. 말보다 글로 남기는 것이 더 편하고 사람을 마음 결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 책은 인프제를 통해 다시 인프제인 나를 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완벽한 인프제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상황에 따라, 컨디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받아들이 수 있었다. 고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귀한 마음들이 가득한 책이 바로 <당신은 모르실거야>였다. 그 마음들 속에 내가 보였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기다리는 게 나다. 그날도 그랬다. k는 집에 도착하면 전화한다고 했다. 나도 아침 퇴근길이었기 때문에 통화가 가능했다. 각자 사는 나라는 다르지만,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을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가서 바로 씻었다. 혹여나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곁에 두면서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날 오전 시간을 울리지 않는 전화벨을 쳐다보면서 ‘아직 저녁 식사 중인가?’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핸드폰을 곁에 두고 잠이 들었다. 전화 한다고 했으니 할 것 같았다. 톡을 보내도 답이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말, 자기 일이 너무 바빠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피곤해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연락될지 몰라 기다리는 사람, 가끔 내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믿었기에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더는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약속이 반복해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기다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그날 이후 철저히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기다린 것일까.
‘사람을 잃는 일은 아프다. 하지만 그 상실 속에서 조금씩 나를 찾아간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다정함만으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걸 배우고 있다. 필요할 땐 누구보다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중략- 이제는 무언가를 잃는 두려움보다 나 자신을 잃는 두려움이 더 클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나를 잃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단절은, 나에게 또 다른 회복의 이름이다.’p167
오랜만에 나를 닮은 책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내가 왜 상처받았는지 나조차 몰랐던 이유를 찾게 하고, 내가 했던 결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토닥여준 책. 그 누구보다 더 솔직하게 나를 대신 보여준 이들의 글에서 한동안 내게 안식처가 되어 줘서 감사하다. 모든 것이 나일 수 없었지만, 그 속에 나를 닮은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위안이고 위로였다.
책편사 (책을 편식하는 사람들) @chaekpyunsa에서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